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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May 21. 2023

찰스 다윈의 따뜻함으로 엮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

최재천 교수 '다윈의 사도들'로 깨닫고 가오갤3 보고 눈물 흘린 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인문, 사회, 과학 등에 관한 팟캐스트나 유튜브 방송을 듣는다. 편도 35분 달리는 자전거도로 위에서 허벅지 지근을 단련하면서 지적 단련도 함께하기 위함이다. 페달에 오르기 전에 오늘은 어떤 주제를 들을지 고심한다. 그 선택 하나가 주는 만족감이 자전거 안장에서 내려오는 기분을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그날 선택은 유시민 작가와 최재천 교수의 대담이었다. 최재천 교수가 찰스 다윈을 추종하는 전 세계 12명의 석학들을 만나 인터뷰한 뒤 인터뷰를 엮어 최근 출간한 '다윈의 사도들'이라는 책이 주제였다. 이 책을 바탕으로 한 찰스 다윈의 이론과 여기서 파생하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호주제 폐지를 두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과학적인 관점에서 호주제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의견서를 낸 경험을 페미니스트이자 철학자인 헬레나 크로닌 박사에게 소개하거나, 아내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교회를 다니게 된 썰을 '만들어진 신'으로 종교에 가장 회의적인 석학인 리처드 도킨스에게 풀었던 에피소드까지 최 교수는 책 안에 담았다. 200년이 넘었지만 다윈을 추종하는 다윈주의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다윈의 이론들이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다윈의 이론은 과학을 넘어 철학, 언어, 경제, 종교, 예술에 까지 끌어안았다.


최 교수는 다윈의 이론이 멋진 이유가 세 가지 있다고 한다. 누구나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함,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는 우아함 그리고 직관적 아름다움을 담은 따뜻함이었다. 그러나 자연 선택은 '약육강식'같은 의미로 오해되거나 '적자생존'처럼 미묘하게 본래 의미가 전도됐다. 가장 우월하거나 강한 형질을 나타내는 유전자가 있을 것이란 착각 아래 진화를 거치며 가장 우등한 생명체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다소 차가운 이론이라고 인식되기도 했다.



그날 아침엔 다윈 이론의 학술적 의미와 지성적 매력에 관해 들었는데, 희한하게 그날 저녁엔 다윈 이론이 인간에 어떤 의미를 주는지가 스르륵 녹아있는 대중문화콘텐츠를 봤다. 퇴근 후 근처 영화관서 흥행 가도가 좋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ume 3'를 본 것이다. 진화와 생물다양성을 다룬 두 텍스트를 하루동안 겪으니 퍽 신기했다.


3부작 시리즈를 종결하는 이 영화는 너굴맨 '로켓'이 주인공이다. 어떤 연유로 라쿤의 몸으로 말도 하고 고지능을 갖게 됐는지 배경이 드러나고 그와 결부된 갈등과 아픔을 관객에 소개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라는 빌런이 완벽한 사회와 생물을 만들기 위한 대의명분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했고 그 결과로 로켓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게 드러난다. 로켓이 자기보다 우월한 지적 능력을 갖게 되면서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돼 로켓의 뇌를 확보하려고 집착한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진화론에 기반을 둔 연구와 실험을 자행한다. 그러나 그가 바라보는 진화는 극단적 진보관이며 완벽함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진화라는 방법론을 동원했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생물이 진화를 거듭하면 더 나아지고 형질이 우수하게 발달하고 개선되면서 결국은 완벽함에 수렴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안에서 가장 뛰어난 지능을 갖췄다는 이유로 완고한 권력을 부려 다른 모든 동물에 횡포를 부리는 인간 군상을 대변하는 빌런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철저히 다윈의 자연 선택에 어긋난다. 다윈의 진화론은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행동과 전연 상관이 없다. 하나의 질문으로 다윈의 이론을 요약해 보자.


진화는 진보(progress)일까?


진화가 진보라는 관점은 유전학에서 첨예하게 논쟁이 됐던 주제다. 세대에 걸쳐 생물이 더 발전하고 우등해지는 건 일견 맞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보편적인 건 아니다. 유글레나(연두벌레)는 화석에서 발견되는 형질과 지금 발견되는 개체 간 차이가 없고, 세대에 걸쳐 오히려 과거의 형질로 되돌아가는 생물도 있다.


문제가 되는 가설은 이런 것이다. 일부 유전학자는 가장 적응 잘 된 유전자가 자연 선택되면서 유전되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가장 '우수한 유전자'만 후손에 전달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이런 가설은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에 틀렸다.


유전, 경쟁, 자연 선택과 함께 진화의 4가지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는 변이다. 그러나 앞선 가설처럼 세대에 걸쳐 '열등한 유전자'는 하나둘 사라지고 '우수한 유전자'만 살아남는다면 개체 안에서 변이는 자연히 사라진다. 똑같이 '우수한 유전자'만 가진 개체들 사이에서 변이의 발생은 적어지다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변이가 없다면 진화도 없다. 게다가 이 가설엔 환경의 변화라는 변인을 고려하지도 않았다. 환경이 바뀌면 우수함의 기준은 달라진다. 애당초 모든 환경에서 우월하다고 부를 만한 유전자는 없다.


따라서 진화를 진보적 관점으로 보는 건 명백한 오류에 빠지기 쉽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라고 말했다. 하이 에볼루셔너리는 틀렸다.



다윈의 이론은 이렇듯 따뜻한 면이 있다. 최 교수는 '종의 기원'을 읽어보면 교과서나 인문과학서적에서 받을 수 있는 이미지와 달리 따뜻함이 물씬 묻어있다고 강조한다.


가오갤3에는 그런 따뜻함이 묻어났다. 토끼, 수달, 바다코끼리, 원숭이, 거북이와 함께 로켓은 '89P13'라는 번호로 불리는 유전자 실험체였다. 다른 동물들은 잔인하게 몸 일부가 기계로 대체되거나 장치가 삽입됐다. 동물들은 열등한 생명체였고 더 우월한 생물체가 되어야 한다는 하이 에볼루셔너리의 의지 아래 해도 되는 실험이었다. 인간보다 열등하기에 인간을 대신해 소련 인공위성에 태워 실험대상이 됐던 개 '라이카'는 염력을 쓰는 '코스모'로 환생했다. '더 나음'과 '유익함'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동물실험은 현실 인류 문명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자연에서 진화를 거쳐 다양해진 온갖 생물들 중 인간만이 우월함이란 착각 속에 다른 동물을 정복하고 착취하고 있다. 자신처럼 미국에서 온 새끼 라쿤의 눈망울을 바라보면서 깨달음과 용기를 얻은 로켓은 파괴되는 함선에서 우월한 고등생물(인간)만 탈출하게 하는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동물을 데리고 탈출한다.



다윈이 주는 교훈은 우리를 철저하게 겸허하게 해주는 것에 있다고 최 교수는 소개한다. 나는 다윈이 우리에게 위로도 준다고 본다. 지구에서 자연 선택과 경쟁이란 아득한 여정 속에서 함께 번성하거나 위협에도 처하면서 그래도 수많은 생물들과 함께하는 홀로 외롭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해 줬으니 말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악의 무리로부터 은하계 수호를 맡았다면 인류는 생물다양성 수호를 위한 가디언즈가 되는 건 어떨까.


'가오갤3'을 보고 눈물 흘린 관객들의 후일담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구상 최고 고등 동물들은 왜 영화관을 나서며 감정이 요동쳤던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종의 기원'의 마지막 장으로 갈음한다. 서울대 장대익 교수가 옮긴 버전이다.


수많은 종류의 식물들이 자라나고 있고, 덤불에서 노래하는 새들과 여기저기를 날아다니는 곤충들 그리고 축축한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벌레들로 가득 차 있는 뒤얽힌 둑(entangled bank)을 지긋이 관찰해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또한 서로 너무나도 다르고,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는, 정교하게 구성된 이런 형태들이 모두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칙에 의해 탄생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법칙들은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번식을 동반한 성장, 번식과 거의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는 대물림, 외부적 생활 조건의 직간접적인 작용과 사용 및 불용에 의한 가변성, 생존 투쟁을 초래하는 높은 개체 증가율, 자연 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형질 분기와 덜 개량된 형태들의 멸절을 포함한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대상인 고등 동물은 이 법칙들의 직접적 결과물로서 자연의 전쟁 및 기근과 죽음으로부터 탄생한 것들이다. 처음에 몇몇 또는 하나의 형태로 숨결이 불어넣어진 생명이 불변의 중력 법칙에 따라 이 행성이 회전하는 동안 여러 가지 힘을 통해 그토록 단순한 시작에서부터 가장 아름답고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는 형태로 전개되어 왔고 지금도 전개되고 있다는, 생명에 대한 이러한 시각에는 장엄함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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