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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Jul 02. 2023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와 집의 의미

영화 비평과 함께 추모를 전하다

별 다섯 개 영화

‘스파이더맨: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원제 ‘Across The Spider-verse)’는 소위 말하는 히어로물과는 다르다. 한 영웅이 모두를 구하는 클리셰는 없다. 다만 온 우주를 구하는 것만큼 진지하게 집을 지킨다. 뉴욕 브루클린부터 크게는 지구와 인류를 지키자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공공선적인 접근에 지친 관객들에게 집과 가족을 지키자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명료해진 소니 픽처스의 내러티브는 한편으로 반갑다.


마일스가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안정을 취하는 모습은 1편과 2편에서 모두 나온다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엔 수많은 유니버스가 등장하지만 혼동되고 않도록 층위를 간단히 했다. 집과 바깥이다. 사랑하는 부모님이 있는 집을 떠난 마일스 모랄레스가 어느 유니버스를 가서 악당을 물리치고 사람들을 만나든, 이는 어쨌든 외출로 퉁칠 수 있다. 마일스는 온갖 유니버스에서 우여곡절을 겪고도 결국 사랑하는 존재를 지키려 무슨 수로 써서라도 귀가해야 한다.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내용은 이처럼 간단하다. 영화적 배경은 다중 우주적 광대한 규모에서 쉴 새 없이 온갖 갈등이 다발하지만, 관객이 인식하기엔 결국 집 안팎으로 나뉘고, 외출과 귀가라는 행위로 이야기 전개가 박음질된다. 마일스는 역경을 뚫고 집에 돌아와 “I made it. I’m home(해냈다. 집에 왔어.)”라고 읊조린다.


우주적 복잡성을 인간적 보편성으로 기가 막히게 치환하면서도 영화는 핍진성도 놓치지 않았다. 다민족, 다문화적 다양성과 가치도 영화 내내 펄떡펄떡 숨 쉰다. 손흥민, 뱅크시, 히스패닉, BLM, LGBT가 뒤섞인다. 그 바탕에 르네상스, 추상화, 인상주의, 초현실주의, 그래픽 노블 등 온갖 창의적인 작화와 상상력이 버무려지면서 극찬받지 마지않을 영화가 됐다. (그러나 이 과정서 애니메이터를 노동 착취했다는 논란은 다소 아쉽다)


집이 소중한 건 가족이 있다는 당연함 때문이다


집의 의미

집의 소중함과 편안함을 말해서 뭐하나. 누구나 아침에 집을 나와 바깥에서 아무리 즐거운 일이 있거나 대단히 슬픈 일이 있어도 결국 집에 들어간다. 여행이나 외박이어도 우린 항상 귀가한다. 귀가는 보편적이지만 인간으로서 지니는 본능이자 특권이다. 그러나 가슴 부푼 보람을 안아들거나 누더기가 된 마음을 들고도 집에 갈 수 없는 사람도 있다.


얼마 전 소셜미디어에서 아는 사람의 부고를 들었다. 그분은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 탈북자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청년이 되어 집에 아버지를 두고 탈북해 중국에서 머물다가 한국으로 와서 대학을 다녔고, 어엿한 여성 청년 창업가로 발돋움했다. 불우했던 시절과 탈북을 결심하고 한국에서 도전하기까지의 스토리텔링으로 여러 관심을 받고 차별화된 사업 아이템으로 희망찬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한국에서 북한에 있는 집으로 생활비를 꼬박꼬박 보내던 중 2016년 아버지의 부고를 2년이나 뒤늦게 들었다. 송금책이 아버지 소식을 전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워할 수도 있었고, 떠올릴 수 있는 집, 동시에 현실에서는 돌아갈 수 없는 집. 스파이더맨이 다른 유니버스로 건너가는 것보다도 비현실적인 그리운 집이었다. 그런 집조차도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소멸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 생활도 낙관적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스타트업 세계의 ‘죽음의 계곡’을 넘지 못하고 사업은 휘청였다. 경제적인 위기에 정서적, 사회적 어려움까지 더해지면서 33살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에겐 남한이 집이 되지 못했다.


그분을 모임에서 처음 만났을 때 알려줬던 게임이 있다. ‘사사끼’라는 북한의 보드게임이었다. 4명이 트럼프 카드로 할 수 있으며 정해진 족보와 규칙에 따라 카드를 다 내려놓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다. 북한에서는 모두가 집에서 편히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놀이다. 술로 두뇌는 물러지면서, 한편으로 빠른 두뇌 회전을 해가며 사사끼로 밤을 새워가며 놀았다.


사사끼는 개인전처럼 보이지만 사실 2:2 팀 게임이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고 주어진 패를 보고 서로 자기 팀원이 누구인지 가늠해야 한다. 팀이 이기려면, 두 플레이어가 각각 1등-2등이 되거나 1등-3등이 돼야 한다. 한 명이라도 4등이 되면 그 게임은 나가리가 된다. 적절히 다른 팀원을 밀어주거나  카드를 내려놓을 수 있게 선 플레이어를 잡을 수 있게 수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 혼자 맹활약해서 팀 모두를 승리하게 할 수 없다.


한국 사회가 탈북민들에게 진정한 집을 제공할 수 있을까.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세계도 사사끼와 같다. 우리 모두 행복하려면 누군가가 낙오되지 않아야 한다. 같은 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서적으로 홀로 놓이지 않게 해야 한다.


세 식구가 자유로운 나라에서 다같이 행복하고 건강하게 한 집에 사는 그 어떤 유니버스가 있길 간곡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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