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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Aug 04. 2023

What’s your ETA?

낭비하지 마, 네 시간은 은행. 이 글 읽지 말고 시간 아껴.

'아이폰 대신 DSLR로 찍고 4K로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거야..

뉴진스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멤버는 해린이다. 해린은 2006년생이다. 16세 나이로 데뷔해 2023년 17세 나이로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하고 역동적인 아이돌인 동시에 아이콘이 되었다. 구찌, 나이키, 맥도널드, 코카콜라에 이어 뮤직비디오를 통해 애플 아이폰의 광고 모델이 됐다. 자본주의의 첨병 기업들이 열심히 돈을 들여 만든 좋은 광고물은 되레 뉴진스를 광고해 주는 듯했다. 최초의 아이폰도 2006년 개발이 완료돼 이듬해 일찍 전 세계에 공개됐다. 둘 모두 데뷔부터 시장을 흔들고 트렌드를 주도했다. 


그간 박찬욱, 박재범, 김하온 등 문화예술가와 애플 사이 많은 광고성 콜라보 콘텐츠가 나왔지만, 논란은 없었다. 그러나 크고 작은 잡음이 들리는 건 뉴진스뿐이다. 그만큼 시장영향력과 대중문화 지배력이 상당하는 것을 방증한다.


깐느팍, 제이팍, 김하온(직업은 traveler, 취미는 tai chi meditation 독서 영화시청) 분발하자!


(참고로 뉴진스 얘기 끝)



얼마 전 차를 타고 우연히 서울 금천구 시흥동을 지날 일이 있었다. 교차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는데, 건너편에 시장 간판이 크게 있었는다. ‘은행나무 시장’이라고 쓰여있었다. 초록색 이정표엔 여기가 은행나무 사거리라고 적혀있었다. 초록불을 기다리며 의식의 흐름은 ‘주변에 은행나무가 많은 동네인가보네’로 흘러갔고 노변에 은행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찾았다. 생각보다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아 실망하던 차에 교차로 저 멀리 차도 안에 우뚝 서 있는 고목이 보였다. 직감적으로 그 나무가 이 시장과 사거리의 주인공임을 알았다. 고목은 풍채가 크고 거대했지만 볼품 있는 편은 아니었다. 궁금증이 남았지만 신호를 받고 고목을 스쳐 지나갔다. 


목발에 깁스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정정한 은행나무. 가을엔 어떤 장관이 펼쳐질까 궁금하다.


그날 운이 좋았다. 돌아오는 길에 고목이 있는 길목에 다시 들를 수 있었다. 아까처럼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다. 교차로에서 마침 신호에 걸렸고 이번에는 궁금했던 나무 바로 옆에 차를 댈 수 있었다. 고목은 2차선 도로를 가르며 그 가운데 서있었다. 아니, 차도가 나무를 피해 양갈래로 나뉘어 깔렸다. 가까이서 보니 나무 옆엔 무엇을 기념하는 비석과 표지석이 여러 개 있었다. 긴 세월과 함께 다양한 세대 인간들과 교류하며 획득한 증표였다. 은행나무가 한 것은 그 자리에 900년 가까이 서 있었을 뿐이다. 그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고목이 품고 있을까.


길이 놓이거나 건물을 지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수풀과 관목은 베어지고 뜯긴다. 우리가 만나는 거의 모든 수목은 그 지위를 얻기도 전에, 불과 몇십 해를 넘기지 못하고 베어지거나 불에 탄다. 그러나 이 은행나무처럼 신작로를 갈라놓기도 하는 귀목도 있다. 나무는 몇 살이 되면 이런 지위를 얻는 걸까. 어쨌거나 이 은행나무는 고려시대에 뿌리를 뻗고 세월을 견디다보니 시간이 되었고 마침내 나를 만났다.




왜 만 년일까. 중경삼림 리마스터링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만약 기억을 통조림이라고 친다면 영원히 유통기한이 없었으면 좋겠다.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그놈의 만 년은 주성치의 서유기에서도 중요히 극의 핵심을 꿰뚫는 대사로 패러디된다. 전자는 여운을 남기는데 후자는 눈물을 남긴다. 

그런데 왜 하필 만 년일까. 어떻게 보면 만 년은 짧지 아니한가. 크게 지를 거면 더 까마득한 기간을 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시흥동 은행나무의 일생을 보면 솔직히 만 년은 길긴 하다. 은행나무가 처음으로 이파리를 노랗게 물들였을 900년 전으로 타임머신을 돌리면 고작 고려시대에 칼잡이들이 칼을 갈아 열심히 정권 싸움을 했을 때인 것에 반해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그땐 돌을 갈아 열심히 싸웠던 신석기 시대니까 말이다. "만 년 동안 사랑해"는 적어도 인간이 문명을 이룩해 온 시간 이상만큼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이 정도면 로맨틱하다고 해도 된다.


아무튼 중경삼림에서 하지무가 바랐던 유통기한 만 년을 기꺼이 쳐준다고 하면 그 기한은 11994년 5월 1일에 만료된다. 


이 대사를 잘못 번역된 문장으로 적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잘못된 번역본을 내가 봐도 헷갈려서 용서합니다.




외행성들과 태양계 바깥을 탐사하기 위해 발사된 45살짜리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가 사고로 영영 인류와 작별할 뻔했다. 인간들이 잘못된 명령으로 지구와 교신하는 안테나가 2도 틀어지게 되면서였다. 말실수한 연인으로 삐진 사람처럼 불혹이 넘은 우주선은 연락이 두절됐다. 다행인 것은 안테나가 자동 재조정이 되는 10월까지만 기다리면 다시 교신할 수 있다고 하는 위로였다. 연락 두절 2주 만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보이저 2호 ‘심장박동’ 같은 미세 신호를 포착하면 통신이 닿았다는 뉴스였다. 

먼저 발사된 보이저 2호


보이저 1, 2호는 1977년 2주 간격을 두고 동생-형 순서로 발사됐다. 2호는 여정의 중간 지점에서 천왕선과 해왕성의 진짜 모습을 인류에게 처음으로 제공했고 1호는 칼 세이건의 제안 덕분에 지구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유명한 ‘창백한 푸른 점’이란 지구 셀카를 찍어 보내줬다. 그야말로 인생한컷. 

보이저 1호 발사 장면. 2회차로 찍어서 그런지 더 잘 보이저?


그리고 1호는 발사 35년 만인 2012년 8월 25일, 2호는 그 후로 6년 뒤 2018년 12월 18일 태양계를 벗어나 여전히 성간우주(Interstellar) 멀리 항해하고 있다. 늦게 발사된 보이저 1호는 좀 더 곧은 코스를 밟아 지구로부터 약 239억 2000만 km 벗어나있고, 보이저 2호는 약 199억 5000만 km 벗어났다. 보이저 쌍둥이와 단순한 통신 하나를 주고받는 데 각각 22시간, 18시간이 걸린다. 쌍둥이는 필요가 없어진 부품 설비 가동을 멈춰 초절전을 하며 설계 수명 이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잘해도 플루토늄 전지가 수명을 다하는 2025~2030년이면 통신이 두절된다. 그럼에도 쌍둥이는 멈추기 전까지 우주를 항해하겠지만.


보이저 쌍둥이에 탑재된 칩 성능은 우리가 쓰는 전자계산기에 들어간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1세대 아이폰을 보이저의 하드웨어와 비교하면 아이폰이 CPU는 2000배 빠르고, 메모리는 6만 배 크다. 통신속도는 400배 정도 차이 난다. 뉴진스가 들고 뮤직비디오를 촬영한 최신 아이폰과 비교하면 그 성능 차이는 천지개벽 수준 아니, 빅뱅이 일어나기 전과 후 차이라고 해야겠다.


전자계산기 성능으로 자동 항해, 자세 제어, 에러 수정, 스케줄 관리, 촬영, 기록 통신 관측 다 해냈다. 나는 이것보다 몇 천 배 좋은 폰으로 포켓몬을 잡고 고양이 사진 찍음.


보이저 쌍둥이는 동력이 다 떨어지더라도 외계인이 탐사선을 포획한다거나 하거나 큰 중력장에 걸리는 등 ‘특별한’ 저항만 없다면 여정을 계속한다. 외계인이 포착하더라도 칼 세이건은 이를 대비해 ‘골든 레코드’를 넣어뒀다. 외계인들은 인간들이 기록한 문자, 음성, 그림을 보고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을 테다. 아무튼 쌍둥이들은 창조자들과의 통신이 끊겨도 형과 동생은 각각 시속 6만 1000km, 5만 5000km로 계속 나아갈 것이다. 이대로라면 다음 유의미한 목적지도 눈에 띈다. 보이저 1호는 앞으로 1만 6700년 후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센타우리(지구서 4.2광년 거리)를 지난다. 하지무의 기억의 통조림 기한이 6700년 정도 지난 때다. 기억해라, 하지무.



약 4만 년 정도가 지난다면 보이저 1호는 기린자리 방향으로 17광년 거리 떨어진 글리제 445 항성계를 근접해서 지나갈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으로 340만 년 후에는 보이저 1호는 태양으로부터 520광년 떨어진 가이아 DR2 2091429484365218432 별을 1.27광년 이내까지 접근할 수 있다. 2호는 약 4만 2천 년 후 로스 248이란 항성을 1.7광년 떨어진 곳을 지난다. 거기서 25만 4000년을 더 항해하면 시리우스에서 4.6광년 떨어진 지점까지 접근한다. 밤하늘 머리를 들어 뱀주인자리를 찾으면, 보이저 1호는 거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보이저 2호는 공작자리를 향해 뻗어가고 있다.

보이저 1호의 경로. 소용돌이를 그리며 멈추는 게 아니라 그 별자리로 무한히 나아가는 것이다.
보이저 2호의 경로.
잘 있어 태양계 놈들아!



그래서 ETA는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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