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포트에서 김창완밴드가 전한 청춘의 의미
청춘이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이 그 시절의 방종을 변호하거나 미성숙을 합리화할 때나 쓰는 모호한 의미를 가진 단어이기도 하고, 나이 지극한 분들이 시대정신에서 탈락한 채로 손아랫사람들과 어울리고자 할 때 자신을 형용할 때도 쓰는 단어다.
무엇보다 청춘이란 단어의 뿌리가 불분명하다는 점이었다. 조선시대엔 ‘청년(靑年)’, ‘청춘(靑春)’, ‘소년(少年)’, ‘연소(年少)’가 같은 의미로 혼용돼 사용됐다. 조선말까지만 해도 인간은 혼인을 기준으로 성인과 청년으로 나뉘었다. 춘향전의 이팔청춘은 16세를 말하는 걸 보면 말 다했다. 근대까지도 청년과 청춘 같은 단어는 "객관적이고 사회학적인 구분이 아니라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사용됐다. 우리가 쉽게 쓰는 단어인 청춘은 그다지 역사가 깊지 않으며 고작 1920년대에 들어서야 우리가 아는 그 의미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청춘이란 단어를 쓰는 걸 염려하고 염증이 있던 차 펜타포트에서 청춘이라는 개념을 다시 깨쳤다. 3일 차 헤드라이너이자 페스티벌의 엔딩을 장식한 김창완밴드의 무대에서였다.
세 형제가 함께 꾸린 '산울림'이란 밴드로 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과 록 씬에서 전설이 되었고, 빼어난 연기로 안방극장에서 국민 연기자로 활동했다. 라디오 DJ로도 거대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올해 나이 69세, 김창완은 펜타포트 공연에서 청춘을 정립했다.
역대급 무더위가 이어지는 여름밤, 그는 여름으로 청춘을 소환했다.
여러분, 공지사항이 있습니다. 내일모레가 입추예요. 우리에겐 시간이 없어요. 여름을 잡고 싶진 않습니까? 우리에겐 잡을 청춘도 있잖아요. 자, 여름사냥을 가겠습니다.
신나게 열대야를 불태우는 신나는 무대를 선사하고 나서 김창완은 잔잔한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했다.
록 페스티벌에 오는 건 정말 젊은 날의 청춘, 자기 자신에게 뜻깊은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추억의 한 자락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인생에 '청춘 인증'이라는 스탬프를 찍는다고나 할까. 자기를 진짜 위로하고 너를 사랑하는 그런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춘과 청춘이 어울리고, 세대와 세대가 또 이웃 나라와 먼 나라의 젊은이까지 함께 우정을 나누는 그런 무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페스티벌에 초대돼 정말 기쁘고 만나서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
세상깨나 살아본 든사람으로서, 여러 분야서 정점을 경험해 본 난사람으로서 한 말은 한 단어도 없었다. 청춘에 얽힌 클리셰도, 흔히 들을 법한 충고나 조언도 없었다. 그 말은 김창완을 보러 추억팔이를 하러 무대를 찾아온 중장년부터, 그의 음악은 아직은 낯선 20~30대까지, 산울림 음악의 감성을 이해하는 한국인과 이것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는 외국인까지 하나로 엮었다. 동시에 모든 이에게 영감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헌사였다.
이 말과 열정 넘치는 무대에 감복하며 나는 시나브로 청춘이 무엇인지 머릿속에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이런 깨달음을 전해주는 김창완도 여전히 청춘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역설적이게 혼란스러워졌다. 대관절 청춘이란 무엇이지? 나긋나긋하고 부드럽게 청춘에 관한 멘트를 전하다가도 '개구쟁이'를 부르며 강력한 스크리밍까지 지르는 그의 나이는 69세다. 나는 감히 그도 청춘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그렇담 나이는 청춘과 어떤 상관 관계를 부여해야할까.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다. 청춘을 꼭 정의해야 할까.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언론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고분고분하지 마라, 그리고 순수해라. 근데 그 대상이 꼭 기성세대뿐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탁한 모습을 보여주고 탁한 일을 경험하겠죠. 그러나 나 자신의 분노를 가라앉히고 이 두 가지를 지키는 것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앞으로도 당분간 청춘일 것 같다.
“매일 라디오 방송을 하러 목동까지 20㎞ 정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데 한쪽 다리 없이 외발로 자전거를 타는 분을 만나 손으로 인사를 건네곤 한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라도 하자는 거다. 자전거 페달을 굴릴 수 있다면 계속 록을 하겠다”
나도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록을 즐기고 인생을 살겠다. 청춘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로하고 너를 사랑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