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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원상 Aug 16. 2023

"로버트는 얼마나 좋았을까?"

(하버드가 아니라 괴팅겐이었다면)

하버드가 아니라 괴팅겐

무한도전

하하는 로버트가 세계 최고의 대학인 하버드를 졸업해서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감탄했다. 그러나 로버트는 그렇게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과학계는 유럽 소재 대학교가 주도하고 있었고 하고 싶은 공부는 유럽에 있었기 때문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유럽으로 건너간 오펜하이머는 캠브리지대학교를 거쳐 괴팅겐대학교에서 물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며 수학했다. 그의 인생에서 괴팅겐에서의 대학원 생활만큼은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질문이 어울릴 수도 있겠다.



괴팅겐

오펜하이머가 하고 싶은 공부와 진로에 관해선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잘 언급된다. 닐스 보어는 실험 물리학 학풍이 강한 캠브리지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오펜하이머에게 괴팅겐에 가라고 조언한다. 괴팅겐대학교는 1920년대 무렵 당시 전성기를 맞은 이론 물리학의 산실이었고 이론 물리학에 적성과 흥미를 느낀 오펜하이머에게 탁월한 환경이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양자역학의 태동을 이끈 막스 보른부터 하이젠베르크, 엔리코 페르미, 존 폰 노이만, 닐스 보어 등 그 시절 시대를 휩쓴 물리학자는 거의 다 괴팅겐대학교와 인연이 있다. 오펜하이머도 괴팅겐에서 공부하며 아인슈타인을 처음 만난다.


괴팅겐은 독일에 있는 여러 대학도시 중 하나다. 대학도시라고 하면 대학교 설립을 기점으로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사회가 형성되고 도시로 성장한 곳을 말한다. 누구나 들어본 유명한 도시가 된 곳도 있지만 여전히 대학의 기능을 제외하면 큰 특징 없는 (과격하게 말하자면 교육 빼곤 심심하고 별 볼 것 없는) 대학도시도 많다. 1734년 대학교가 들어서며 지금의 도시가 된 괴팅겐이 대표적인 곳이다. 작년에 독일을 돌아보는 여행에서 괴팅겐, 하이델베르크, 본을 들렀다. 어쩌다보니 세 군데 모두 대학도시였다.


괴팅겐에 가서 1박 2일을 보냈다. 잘 알려진 곳도 아니고, 관광지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는데도 말이다. 이유는 하나, 대학 같은 과 친구가 철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학교였기 때문이다. 내가 괴팅겐에 아는 건 박사학위를 딴 학생들이 시내 중심까지 동료들이 끌어주는 수레를 타고 가서 시청 앞에서 거위를 든 소녀상(겐젤리젤)에 키스를 하는 세리머니를 한다는 것뿐이었다. 독일 남부에 가서 옥토버페스트가 한창인 뮌헨, 여기저기 볼거리 많은 뉘른베르크 대신 과감히 여정 동선을 괴팅겐으로 정했다.


괴팅겐역에서 내려서 만난 친구가 곧장 데려간 곳은 공동묘지였다. 볼거리 없는 괴팅겐에서 그나마 꼭 봐야 하는 곳이라고 했다. 괴팅겐 시립묘지(Stadtfriedhof)였다. 이곳은 막스 보른, 막스 폰 라우에, 막스 플랑크 등 1900년대 전후 물리화학에 큰 업적을 남긴 노벨상 수상자 9인이 묻힌 곳으로 유명하다. 괴팅겐 대학교는 40명이 넘는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노벨상 수상자 1명만 묻힌 공동묘지였다면 공들여 사진을 찍었을 텐데, 드넓은 묘역에 9명이나 묻혔다고 하니 도리어 감흥이 분산돼 결국 묘비 사진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다. 가장 먼저 데려온 곳이 공동묘지라니 괴팅겐이 얼마나 노잼도시인지 동시에 교육도시로서 얼마나 위대한 학자들을 낳았는지를 모두 보여주는 사례였다. 양자세계를 열어젖히며 인류에 새로운 길을 연 이들이 묻힌 괴팅겐 묘지는 그 어떤 곳보다 평화롭고 평온했다.


막스 플랑크의 묘비
괴팅겐시립묘지의 교회당 앞에서


저녁에는 시내 중심가에 가서 친구와 바 호핑(bar hopping)을 했다. 한 곳서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다른 바로 옮겨 또 한 잔하고 이를 반복했다. 바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었고 인테리어와 이로 인한 분위기로 맥주맛이 한결 산뜻했다. 오래된 건물과 유명인들이 거쳐간 공간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서 취기에 둘러보는 재미도 있었다. 대학 시설은 여느 대학도시들처럼 이곳저곳에 산재해 위치했다. 비도 추적추적 쏟아졌는데 비 맞으며 돌아본 괴팅겐은 썩 나쁘지 않았다.


괴팅겐은 과학만의 도시는 아니다. 오펜하이머도 역시 문학을 좋아했는데, 괴팅겐에서 폴 디랙이 오펜하이머에게 불평하며 건낸 말이 유명하다.


"과학의 목표는 어려운 것을 간단하게 만들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고, 시의 목표는 단순한 걸 이해하기 어렵게 말하는 것이다. 둘은 양립할 수 없어.(The aim of science is to make difficult things understandable in a simpler way; the aim of poetry is to state simple things in an incomprehensible way. The two are incompatible)"


그러나 세상엔 분열과 융합이 있는 것처럼 문학과 과학이 공존한다. 괴팅겐에도 마찬가지다. 물리와 화학이 아닌 노벨문학상 수상자도 있다.


원작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에서 오펜하이머의 괴팅겐 생활은 이렇게 평가된다. “괴팅겐은 성인이 되어 가던 젊은이로서 오펜하이머가 처음으로 진정한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짧은 9개월 동안 그는 학문적 성과와 성격의 변화를 이루었고, 그 결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단지 1년 전만 해도 그의 생존까지 위협했던 불안한 감정 상태는 이제 상당한 학문적 업적과 그에 따르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세상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넓디넓은 독일의 한가운데 한적한 괴팅겐에서 수학한 학자들은 어떻게 세상에 나와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일까. 좋아하는 것 많았던 오펜하이머는 이곳에서 어떤 미래를 그리고 어떤 물리학자로서의 진로를 꿈꿨을까?


괴팅겐 역사 이모저모가 기록된 삽화들. 펍 한쪽 구석에 걸려있었다
3번째로 간 펍. 지하에 동굴 같은 곳에 있어서 모바일도 터지지 않는 환경이었다
괴팅겐 시청 앞. 저녁 일찍부터 시내는 한적해진다


'세걸과'

오펜하이머와 하이델베르크라는 이름과 이들의 업적과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것은 무한도전도 아니었고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에서였다. '세상으로 걸어간 과학기술자들'이라는 수업이었다. 그해 처음 개설된 수업이었는데 이 수업은 많은 학생들이 인기 과목 신청에 실패하고 패잔병처럼 듣는 그런 과목이었다. 나는 수업 구성이 좋아 이걸 가장 우선해서 수강신청을 했다.


그 수업을 가르친 분은 김호연 교수였는데, 선생님은 과학계를 넘어 사회, 정치, 경제 등 사회 일반의 영역으로 나아가 충돌하고 갈등을 빚고 끝내 업적을 이룩한 과학자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서 과목 이름에 '세상으로 걸어간'이라는 수식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갈릴레이, 뉴턴, 케플러, 파스퇴르, 하이젠베르크, 오펜하이머, 라이프치히 등을 다뤘다. 수업의 핵심은 이들의 업적이라기보다 이들이 과학계를 넘어 세상으로 나가서 겪은 슬픔, 위기, 논란, 오해, 위험 등 어두운 면이었다.


단순히 위인전에서 보는 고진감래식 교훈을 주고자 하는 수업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인물을 깎아내리려는 것도, 위업을 폄하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각 인물이 그 시대와 학계에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알아보는 수업이었다. 그리곤 지적 탁월함, 창의성 등 그 업적을 탄생케 했던 개인의 역량을 차치하고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인간 이해관계, 시대 분위기, 이데올로기, 성격에 관한 개별적 선호도 등 과학기술의 외재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과학자에 작용하면서 어떤 역경이 조성됐는지를 면밀히 살피는 수업이었다. 매우 오래전부터 과학자는 과학에 갇히지 않고 종교, 윤리, 정치, 대인관계에 얽혀 있는 존재였다. 당연하지만 잘 모를 수 있는 그 사실을 깨닫게 하는 수업이었다. 과학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으로 걸어간다. 그 가르침을 준 수업이었다.


오펜하이머도 수업에서 다룬 인물 중 하나였다. 평전과 영화에서 알 수 있는 그 역시 다른 범인들처럼 온갖 과오와 의뭉스러움이 가득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영화가 보여준 일대기처럼 그의 인생, 그의 업적은 단순한 내러티브가 아니었다. 다양한 인물이 엮여있고 다양한 가치와 해석이 적용되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인생이었다. 수업의 시작은 한 인물의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진진함으로 시작하지만, 두 시간 뒤엔 깊은 여운을 안고 강의실을 나오곤 했다. 대학 교양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강좌였고, 그중에서도 오펜하이머를 다룬 수업이 가장 백미였다. 수강생들 후기가 널리 알려졌던 걸까, 몇 년 후 이 수업은 인기깨나 있는 강의 중 하나가 됐다는 소문이 들렸다.


문과엔 라파엘로 산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 이과엔 1927년 제5차 솔베이 회의 사진. 이중 17명이 노벨상을 받았거나 받는다. 괴팅겐에 한 번쯤 적을 둔 학자도 그만큼 있다


세상으로 걸어가려면..

결국 우리가 상기할 것은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나눈 대화에 농축됐다. 오펜하이머에서 엔딩을 보면서 세걸과에서 배운 깨달음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누구나 순수한 시절이 있다. 그러나 그 순수성은 세상에 나오면 도전을 받고 시련을 겪게 된다. 이 법칙은 과학자든 경제학자든 사회운동가든 세상에 나와야 하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순수와 열정만으로는 세상에 나온 대가를 치를 수 없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세상에 나오고 싶은 사람입니까? 그러면 세상에 나올 각오와 준비는 되셨습니까?"




괴팅겐을 떠나며 괴팅겐역 앞에서. 세상에 나오기 전 과학자들이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었던, 오펜하이머가 '세상의 파괴자'가 되기 전의 모습이 있는 그곳에 다시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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