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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라밍고 Nov 09. 2022

말의 무게

상처 준 만큼 나의 마음에 생기는 상처 

결혼 전 사회생활을 하던 나는 성격이 무척이나 까다로웠다. 

게다가 배려하지 않는 직설적인 언어로 상대방에서 종종 상처를 입히기도 했다. 

상처받은 사람은 아프고 쓰라린데 상처를 준 나는 상대방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더운 여름날, 직장 동료의 결혼식을 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다. 그곳에서 목적지가 같은 입사 동기를 만났다. 그녀는 꽤 통통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 내내 나는 그 친구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너무 눈에 거슬렸다. 목둘레를 감고 있는 얇은 줄은 통통한 목둘레에 꽉 들어차도록 맞아있었다.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미라야! 목걸이 줄 짧은 거 아니야? 목걸이 터지겠다." 

우리는 지하철에서 같이 웃었지만 그 친구에게는 상처가 되어 집에 가서 울었다는 말에 당황했다. 


나는 결혼 전에도 사람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다. 

전에 데리고 있던 부서를 옮긴 직원이 결혼을 축하한다면 찾아왔다. 

"결혼 축하드려요. 결혼식에 남자 친구랑 같이 갈게요." 

이쯤에선 '고맙다'라고 말하고 끝냈어야 했다. 하지만 내 대답은 이러했다. 

"야! 결혼식 밥 값 1인분에 35천 원이다. 부조 5만 원하고 남자 친구까지 데려올 거면 오지 마. 나 손해야." 

아차! 싶은 생각이 이때라도 들었어야 했는데 그랬다면 '농담'이라는 말로 사과하고 마무리 지었을 텐데 그 당시 나는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결국 그 직원은 남자 친구 없이 혼자 결혼식장에 와서 축하해 주었고, 

내게 같은 소리를 들었던 입사 동기는 남편과 함께 와서 부조를 7만 원 하고 축하해 주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정말 못났다. 

더 아쉬운 건 지금은 그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과를 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다. 

그 친구들을 만난다면 달달한 차를 마시며 지난날 내 실수를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얼마나 옹졸했는지... 


우리는 많은 후회를 하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스스로를 얼마나 초라하게 만드는지 깨닫는다. 

특히 아이에게 주는 상처는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제게 돌아온다는 사실을 알아간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라는 속담처럼 한번 준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아물어도 어김없이 상처를 남긴다. 

관계는 작게는 부부와 자녀 사이에서 시작하지만 관계의 크기와 상관없이 말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말은 입에서 나와 공기 중에 흩어져버린다. 하지만 사라지지 않는다. 말을 뱉은 내가 듣고 있고, 상대가 듣고 있다. 가벼운 말 놀림으로 칼 날 같은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내 말의 깊이를 다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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