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라밍고 Nov 13. 2022

음식에 관한 기억

저도 하나만 주세요

요즘은 명절에도 대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도 더는 큰집에 가지 않는다. 우리는 먹고 싶은 약과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어릴 적 명절마다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내려갔다. 큰어머니는 8남매의 장손 며느리로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하신다. 그런데, 그 많은 명절 음식은 차례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수많은 음식 중 내게 큰 관심사는 약과의 행방이었다. 상이 치워짐과 동시에 약과는 광주리에 담겨 내 손이 닿지 못하는 냉장고 위로 올려진다. 어린 마음에 그 약과 하나가 먹고 싶어 부엌을 들락거리며 잔심부름을 해보지만 큰어머니는 절대 약과 광주리를 내려주지 않으셨다. 나는 약과가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못해 결국 약과를 먹지 못한다. 사촌 오빠가 부엌으로 들어온다. 그는 나와 다르게 큰어머니에게 당당히 말을 건넨다. 

"큰엄마, 아까 약과 가지고 나오던데 어딨어요? 하나만 주세요."

큰어머니는 광주리를 꺼내 그가 먹을 약과 딱 하나만 건네주고는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광주리를 옮겨 놓으셨다. 그 광경을 직관하면서도 나는 끝내 "저도 하나만 주세요."라는 말을 못 하고 침만 삼킨다. 




우리 삼 남매에게 약과에 대한 기억은 모두 비슷했던 모양이다. 명절이면 차례상에 필요한 약과보다 두배는 더 넉넉하게 약과를 구입한다. 차례상에 올릴 약과를 미리 챙겨두고는 일단 하나씩 까서 먹기 바쁘다. 명절 아침 차례를 지내고 상을 다 치우기도 전에 우리는 잽싸게 약과 하나를 입에 물고 돌아다닌다.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똑같다. 

"어릴 때 약과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큰 엄마는 약과를 하나 안 주시더라."

"나도...."

엄마는 죄다 등신이라며 그거 하나를 못 얻어먹었다고 타박하지만 8남매의 막내며느리였던 본인도 우리가 그렇게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도 약과 하나 꺼내 들려주지 못했다. 지금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약과가 그 당시에는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나 보다.  요즘은 호박 약과가 맛있다는데 이번 명절에는 약과를 세 박스쯤 사서 명절 내내 먹어야겠다. 

아마도 우리 삼 남매는 이번 명절에도 약과를 먹으며 큰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말의 무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