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하나만 주세요
요즘은 명절에도 대가족이 모여 북적거리는 풍경은 보기 어렵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도 더는 큰집에 가지 않는다. 우리는 먹고 싶은 약과를 실컷 먹을 수 있다.
어릴 적 명절마다 큰집에 차례를 지내러 내려갔다. 큰어머니는 8남매의 장손 며느리로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하신다. 그런데, 그 많은 명절 음식은 차례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수많은 음식 중 내게 큰 관심사는 약과의 행방이었다. 상이 치워짐과 동시에 약과는 광주리에 담겨 내 손이 닿지 못하는 냉장고 위로 올려진다. 어린 마음에 그 약과 하나가 먹고 싶어 부엌을 들락거리며 잔심부름을 해보지만 큰어머니는 절대 약과 광주리를 내려주지 않으셨다. 나는 약과가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못해 결국 약과를 먹지 못한다. 한 살 위 사촌 오빠가 부엌으로 들어온다. 그는 나와 다르게 큰어머니에게 당당히 말을 건넨다.
"큰엄마, 아까 약과 가지고 나오던데 어딨어요? 하나만 주세요."
큰어머니는 광주리를 꺼내 그가 먹을 약과 딱 하나만 건네주고는 더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광주리를 옮겨 놓으셨다. 그 광경을 직관하면서도 나는 끝내 "저도 하나만 주세요."라는 말을 못 하고 침만 삼킨다.
우리 삼 남매에게 약과에 대한 기억은 모두 비슷했던 모양이다. 명절이면 차례상에 필요한 약과보다 두배는 더 넉넉하게 약과를 구입한다. 차례상에 올릴 약과를 미리 챙겨두고는 일단 하나씩 까서 먹기 바쁘다. 명절 아침 차례를 지내고 상을 다 치우기도 전에 우리는 잽싸게 약과 하나를 입에 물고 돌아다닌다.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똑같다.
"어릴 때 약과가 그렇게 먹고 싶었는데, 큰 엄마는 약과를 하나 안 주시더라."
"나도...."
엄마는 죄다 등신이라며 그거 하나를 못 얻어먹었다고 타박하지만 8남매의 막내며느리였던 본인도 우리가 그렇게 부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어도 약과 하나 꺼내 들려주지 못했다. 지금은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쉽게 사서 먹을 수 있는 약과가 그 당시에는 비싸고 귀한 음식이었나 보다. 요즘은 호박 약과가 맛있다는데 이번 명절에는 약과를 세 박스쯤 사서 명절 내내 먹어야겠다.
아마도 우리 삼 남매는 이번 명절에도 약과를 먹으며 큰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