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앞에 두고 있는 집이라 그런지 창문만 열어놓아도 숲 냄새를 머금은 바람이 흘러들어온다. 특히나 오늘 같은 날엔 한여름인 것도 잊을 정도로 찬 공기가 방을 채운다.
28년 만에 정착한 진짜 '우리 집'이다. 지금까지 거쳐간 수많은 집들 중에 이 정도로 애착이 가는 집이 있었던가. 전세 계약이 끝나서, 부모님의 직장이 가까워서, 다른 지역에 자취하느라 거의 올 일 없는 집이라서, 온갖 이유로 집이라는 공간에 정을 줄 수 없었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큰 기대도 없이 대충 이전에 쓰던 가구를 기계적으로 배치하고 잠을 청하던 나날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달랐다. 아무것도 들이지 않은 휑덩그레한 집에 첫 발을 내디딘 날 느꼈다. 드디어 마음 둘 곳을 찾았다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아담한 내 방 앞에서 이제는 나의 공간에 정성을 쏟으며 살자고 다짐을 했더랬다. 그날의 다짐 덕분에 나만의 취향이 듬뿍 담긴 공간에서 온 몸으로 안정감을 느끼며 사는 요즘이다.
바람이 세다. 문을 닫고 어제 산 향초를 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