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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y 26. 2022

걸려버렸다! 코로나(2)

6개월 아기와 함께한 코로나

자가격리 덕분에 오랜만에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발가락을 까딱이며 티비채널을 돌리고 있던 일요일 오후.


행복과 불행은 한꺼번에 찾아온다 했던가.

불길한 느낌의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어떡하니 이제…이상하게 어제부터 몸이 너무 안 좋더라고.


결과는 양성이었다. 엄마와 함께 생활한 친정아빠와 동생까지도. 모두 다 양성이었다. 친정식구 모두가 걸리다니…오미크론 전파력 무엇ㅠㅠㅠㅠ. 내가 양성인걸 확인한 이후, 엄마랑 말 몇마디 밖에 나누지 않았는데 대체 언제 전파된 건지…갑자기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그래도 아직 제게는 시터이모님이 남아있소이다!! 하며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때부터 나의 평화와 행복은 깨져버렸다.  


다음날 아침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모님도 양성.

아기도 양성.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은 음성이었다.


이제 어떡해? 나 이제 출근해야되는데….


남편이 말에 그렇게 나는 다시 집으로…슥…소환되었다. 몸은 아파도 마음만은 행복했던 짧디 짧았던 4일 간의 격리생활이 이렇게 끝이 났다. 나는 다시 육아현장으로 돌아왔다. 아니 육아응급상황, 육아전투?현장으로 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도 풀지 못하고 아기 열 체크부터 시작했다. 37.5도. 아직은 미열이지만 양성이 나왔으니 어서 대책을 세워야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때만 해도 코로나가 대유행까지는 아니어서 정확한 지침이 많이 공유되지 않았다. 보건소에 가서 pcr 검사부터 해야하나…아님 소아과에 가야하나…. 남편은 출근해있고 나는 어디다 물어볼 데도 없어서 맘카페나 블로그를 뒤지면서 정보를 찾아내야만 했다. 아기는 몸이 불편한지 자꾸 보채고 짜증을 내고 있는데 검색은 해야하고, 나도 컨디션이 좋지 못한 상태여서 무엇하나 시원하게 할 수 없어 미칠 지경이었다.


여러 블로그와 맘카페를 뒤지며 종합한 결과. 정확한 검사를 위해 pcr 검사를 받아야하는데. 어린 아이의 경우 먼저 검사를 받게 배려해주는 지자체도 있고 아닌 곳도 있었다. 물론 아예 영유아, 어린이들만 따로 대기할 수 있는 검사장도 있었으나 집에서는 멀었다. 얼른 아기띠를 매고 가까운 보건소로 향했다.  


오후 12시.

보건소 pcr 검사장의 대기줄은 꽤 길었다. 3월초라 날씨는 아직 쌀쌀했다. 나 혼자였다면 이 긴 대기줄을 기다렸겠지만, 컨디션이 안 좋은 6개월 아기가 이 많은 대기줄 속에서 버티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수도 있다. 내가 해결해야 돼...생각하며 굉장히 비장한 표정으로 방호복을 입은 직원에게 다가가 상황을 설명했다. 비장한 표정이 무색하게도 빨리 pcr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셨고, 아기가 아파서 어떡하냐며 걱정해주셔서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 다음은 해열제 구매. 아기 해열제에는 성분에 따라 아세트아미노펜/ 이부프로펜/ 멕시부프로펜 계열이 있는데 맘카페나 블로그에서는 멕시부프로펜이 코로나 고열에 가장 잘 듣는다는 말이 있어 세 개를 모두 구매해야지 했지만 약국에 들려보니 멕시부프로펜 계열은 벌써 품절.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상비약으로 사둘 걸...뭐든 닥쳐야하는 게으른 엄마라 미안하다ㅠㅠㅠㅠ. 그렇다고 아픈 애를 데리고 동네의 모든 약국을 투어할 수도 없어 두 가지 약만 구매하고, 남편에게 멕시부프로펜 계열의 약을 사달라는 미션을 하달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아기의 체온을 재보니, 38.2도. 확실히 점점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사 온 약을 먹였다. 다행히 아기는 별다른 이상없이 잘 놀고 있었지만 몸이 좀 좋지 않은지 평소보다 잠투정이 많아졌다. 아기가 아프니 내가 아픈건 생각도 나질 않았다. 아니,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떻게보면 나 때문에 걸린건데 아기가 심하게 아프기라도 하면 나는 정말 죄책감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코로나에 걸린 영아들의 안 좋은 뉴스도 생각나 불안했고, 눈물이 나려고 하기도 했다. 아니야 아니야, 괜한 불안해 하지 말자, 나라도 정신차리고 아기를 잘 봐야돼 하고 되뇌이며 아기의 체온을 진짜...10분 간격으로 체크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아기가 귀에 체온계 꽂을 때마다 고개를 돌림ㅠㅋㅋㅋ.   


저녁이 됐다. 남편이 돌아올 시간이 됐다. 평소같으면 나의 육아를 분담할 동지가 온다는 사실에 두근거렸겠지만, 이제는 그를 보내야한다. 남편까지 걸리면 안된다...그가 휴가를 잘 낼 수 없는 직업이기도 했지만, 남편까지 걸리면 약 받아오고, 밖에서 먹을 거리라도 사서 전해줄 사람도 없다는 생각에 안 가겠다는 남편을 내보냈다. 평소에는 죽어도 같이 죽자, 모든 걸 함께 하자 했던 남편은 나의 말에 천번만번 수긍하더니 마스크를 두툼히 끼고 짐을 챙겼다. 그리고 구해온 해열제를 건네주고는 서둘러 나가버렸다(그때 내 눈엔 그렇게 보였어ㅋㅋㅋ). 아...그렇게...님은 갔습니다.....


해열제를 먹인 아기는 정말정말 다행스럽게도 열이 점점 내려갔고, 이틀째에는 37.5에서 37.6도, 삼일 째에 정상체온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아기는 기침이 심했다. 기침과 가래끓는 소리(?)같은 것은 격리가 끝나고 난 후에도 약 한 달간 계속 되어서 꽤 걱정했던 것 같다.   


아기와 둘이 함께하는 자가격리 기간은 정말이지, 너무x100000 힘이 들었다.


친정부모님도 확진이 되셨으니  누구와도 분담할  없는 독박육아의 끝판왕 일주일. 4동안 배달음식 시켜먹고, 만화책 보고, 늦잠 자던  모습 어디갔니. 우는 아기 달래고, 먹이고, 재우느라  먹고,  자는 나로 완벽히 복귀했다. 나도 여전히 컨디션이 좋지 않아 목이랑 코랑 아프고 그랬지만 제대로  수도 없어서 정말 미칠 지경이었다. 아기는 컨디션이 좋았다 나빴다해서 낮잠은 계속 토끼잠을 잤고,  아기랑 놀아줄 것도 한정적인데 유모차 끌고 밖에는 나갈 수가 없으니, 나중엔 정말 내가 지겹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지쳐서 아기가 보든말든 티비도 켜놓기도 하고, 같이 핸드폰도 보고 그랬다. 이런 엄마라 미안하다ㅠㅠㅠㅠ. 평소에는 목욕은 내가 시켜도, 목욕물 치우는  남편이 했는데 자잘한 집안일조차   혼자 해야 하니 그렇게 밉상이었던 남편이 정말정말 간절히 보고싶었다. 그래...  몰랐는데 당신이 해주는 일이 많더라고....흑흑.


그렇게 6개월 아기와 함께한 코로나 격리 생활은. 나에게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맛보게 해줬고, 잊어버렸던(?)남편에 대한 소중함까지 다시 상기시켜주는 참 좋은...그렇지만 절대 다시는 네버,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 되었다. 전화로 무슨 일이 있으면 달려오겠다는 남편이 참 믿음직스러웠는데, 동시에 그 목소리 너무 행복하게 들렸다....그렇게 좋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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