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고 사는 게 제일 힘들다!!
육아의 난이도는 (슬프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올라가는 것 같다. 고작 새벽에 분유 탄다고 징징댈 때, 다들 이유식 먹으면 더 힘들어져했더랬지.
와 진짜.
뭐가 이렇게 삶고, 다지고, 걸러야 하는 게 많은 건지. 노동강도 극악이다. 처음에 소고기 미음까지는 소꿉놀이하는 것 같았는데 색다른 야채들이 추가될수록 찌고 갈고 다지고 거르는 이 과정이 너무나 귀찮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거기다 양은 왤케 작음? 어차피 야채 한두 스푼 먹이려고 큰 채소 하나를 다지는 거라서 남는 게 정말 많다. 그 남는 건 다 남편과 내 몫이다. 평소에 육아한다고 반찬도 잘하질 못하는데 남는 재료는 쌓이고 요리는 못하니 썩어버리는 재료가 엄청 많다.
문제는! 애가 잘 먹는다.
100일부터 이상하게 분유를 거부하며 뱉어버리던 애가. 제발 먹자고 달래고, 안 준다고 혼내도 먹기를 거부하던 애가. 이유식은 꿀떡꿀떡 잘 받아먹는다. 심지어 더 달라고 보채기까지 한다.
그동안 하도 안 먹어서, 나올 땐 60프로였던 몸무게가 점점 30프로, 20프로대로 추락한 탓에 나는 정말 애가 탔었다. 모유수유를 얼른 끝내고 분유를 줘서 그런가 하며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유식은 잘 먹는 것이었다. 그래서 육퇴를 하고 지친 몸을 스마트폰이나 예능에 맡기고 싶어도 굳이 굳이 일어나 온갖 재료를 삶고 다지고 걸렀다. 요즘 시판 이유식도 정말 잘 나온다고 들었지만 내가 만든 이유식을 이렇게 애가 잘 먹으니까 힘들어도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 같았다. 매일 이유식 메뉴를 고민하고 아기가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 생각했다. 심지어 이유식을 만드는 꿈까지 꿀 정도로 열심히 노력했다.
느낌상 아기도 점차 살이 붙는 거 같았다. 너무 기뻤다. 내 노력이 이렇게 빛을 보는구나, 장하다 아기야! 그래서 양도 조금씩 늘려보기도 하고 그랬다.
그런데…
영유아 검진을 가보니 두둥. 아직도 몸무게가 그대로란다. 심지어 이유식 양이 부족하단다. 중기로 넘어오면서 늘어난 횟수와 양 때문에 허덕이고 있던 차였다. 만들어먹여서 그런지 질감도 뒤죽박죽. 잘은 먹는데 어떨 때는 너무 큰 덩어리가 나와서 구역질, 어떨 때는 너무 묽어서 고민이었지만 잘 먹는다는 사실 하나로 버텼는데 결과가 좋지 않다.
남들이 인류평화나 자신의 업적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데 비하면 진짜 하찮은 일인데도. 매일같이 이유식을 만들고, 고민하고, 고생하고 했던 것들이 과연 아기한테 도움이 됐나 생각을 해보면 아닌 거 같아 짜증+좌절감이 들었다.
그냥 사 먹이면 될 것을 내가 만들어 먹이겠다고 기계까지 사면서 말이야. 애가 더 먹고 싶어 한 것도 모르고 더 만들기 힘들다고 너무 적게 먹인 거 아니야. 영유아 검진 결과를 받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나 자신에게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아기를 키우면서 내 딴엔 그나마 열심히 한 게 이 모양이라니 하는 생각도 들어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런데 옆에서 남편이 뭐 그럼 좀 더 먹이면 되겠네 하며 마치 굉장히 단순한 일을 복잡하게 생각하는 사람 취급을 하는데… 진짜 정 떨어진다. 빈정이 어찌나 상하던지.
참나. 니가 이유식에 들어갈 재료를 고민해봤냐, 몇 그람 재어가면서 삶고 다질 때 대신 해줘봤냐. 더 먹이면 더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도 매일매일 이유식만 만들고 있는데 말이야. 옆에서 그럼 그냥 사 먹여야 하나… 하는 내 말도 무시하고, 이유식 마스터기가 용량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앉았는 너랑은 진짜 말도 섞기 싫다. 그냥 걱정하지 마라 잘하고 있다 이 말 하나먼 될걸. 진짜 밉상이다.
휴. 나도 그냥 이제부터 사서 먹여야 하나. 처음부터 그럴걸 나답지 않게 열심히 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우울했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항상 음식이 있어서 먹기만 하면 됐었는데 이걸 만들고 먹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고 고생스런 일이란 걸 이제야 알았다.
예전엔 자식은 사랑으로만 키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기를 보다보니 사랑보다는 책임감이 더 큰 거 같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슬프고 우울한 기분이 드는데도 브로콜리를 삶으러 가야 하는 책임감… 이유식이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그럼 시판은 뭘 먹여야 하지 하며 검색하고 앉아있는 이놈의 책임감….
아기야. 꼭 기억하렴. 나처럼 게으른 사람이 널 이렇게 키우고 있으니. 나중에 나한테 잘해라… 아니 그냥 지금처럼 이유식이라도 잘 먹어줘ㅜ제발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