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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18. 2023

사랑하는 나의 아기에게

엄마의 편지

안녕 아기야

너의 첫번째 생일을 축하한다.


처음 너를 만났을 때 우리 둘을 보고 엉엉 울며 기뻐하는 아빠와는 달리 엄마는 얼떨떨한 기분이었어.


얼굴도 까맣고 찡그린 얼굴에, 엄마는 하나도 닮지 않았던 네 모습. 오히려 네 친할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똑닮은 모습에 깜짝 놀랐었지....(아…아버님 울지마세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처음 만난 네가 낯설었어. 그래서 아기를 만나서 행복하냐는 주위의 질문에도 어색한 미소만 지었단다. 널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나봐.


네가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던 신생아 시절. 엄마는 젖병을 열탕해야하는 것조차 잘 몰랐단다. 너가 눈도 제대로 안 보인다는 것도. 이틀이었지만 젖병세제로만 닦아서 그냥 먹이고, 눈도 잘 못 뜨는 너 앞에서 모빌을 계속 들이대고, 너를 안고 창밖 풍경을 묻기도 했었지.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오고나서야 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 엄마도 나름 준비한다고 했는데 부족했었나봐.


6개월까진 엄마는 참 많이 힘들었어. 초반에는 모유수유가 잘 안 되서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랬고. 그 후에는 혼자서 너를 보는게 너무 외롭고 힘들어서. 너는 밤잠은 잘 자는데, 낮잠을 어찌나 안 자던지. 겨우 재우고 밥 좀 먹으려고 하면 깨서 울고. 거기다 넌 낯도 많이 가려서 3개월부터는 엄마가 사라지기만 해도 울고, 엄마가 없는 환경에선 절대 혼자 있지 않았지. 그래서 화장실도 잘 못 가고, 잘 씻지도, 누구한테 널 맡기기도 잘 못했어. 사실 엄마가 이빨이 많이 안 좋아. 너를 임신했을 때도 잇몸이 안 좋았는데 치료를 못 했거든. 근데 널 낳으니 혹시나 모유에 영향이 갈까봐 병원엘 못 갔어. 그 후에는 너를 맡길 데가 없어서 못 가고. 가끔 이런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너를 옆에 두고 많이 울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보다 네가 아플 때 더 괴롭더라. 네가 남보다 황달도 늦게 빠지고, 두상도 좋지 않아서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마다 그동안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나를 탓했단다. 아직 갓 백일을 넘긴 네가 엑스레이를 찍고 피검사를 하며 울고불고 할 때, 의연한 척 했지만 사실은 너무 무서웠어. 두상교정모자 쓸 때 기억나니. 헬멧이 무거운지 고개를 못 가누는 너를 볼 때 마다, 네가 밤새 땀을 비오듯 흘리며 괴로워할 때마다 좀 더 일찍 너를 신경쓰지 못한걸 후회했어.


가끔 네가 곤히 잠들어서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때면, 네가 제대로 숨을 쉬고는 있는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네 코에 귀를 대보기도 했고. 혹시나 내가 제대로 너를 안지 못해서 너가 다치지는 않을까,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항상 조심했어. 네가 장난치다 바닥에 머리를 쿵하면. 내 심장도 쿵 떨어지고. 너의 조그만 상처에도 깜짝깜짝 놀라곤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수많은 상황들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 엄마니까 너의 사소한 변화, 아픔들이 참 심각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 엄마가 되어보니, 주위에 아이가 아파서 혹은 다쳐서 힘들어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보이더라. 너같이 건강한 아이도 이런데, 그 사람들은 오죽할까.


너를 낳아보니 엄마가 세상을 보는 눈이 이렇게나 달라졌다.


혹여나 너같은 아이들이 위험할까 걱정하고, 네가 사는 세상이 안전하길 기도하고, 네가 살아갈 세상이 바람직하길 원한다. 그래서 나부터라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너가 배울까 싶어서 엄마의 오래된 나쁜 습관도 고치려해. 그동안 엄마는 남한테 관심이 별로 없었거든. 그런데 너를 낳고 내가 이렇게나 바뀌었어.  


엄마의 심정은 네가 공부도 잘 했으면 좋겠고, 나중에 부족하지 않게 살았으면 좋겠고, 성공한 사람도 됐으면 좋겠단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네가 힘들고 불행하다면 그런건 정말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엄마는 네가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건강했으면 좋겠어(나중에 엄마가 너 공부하라고 잔소리하면 이 편지를 꼭 보여주렴ㅎㅎ).


이 세상을 살다보면 네가 원하는대로, 뜻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단다. 학업도 그렇고, 직업, 친구관계, 결혼마저도. 그럴 때마다 좌절하거나 네 자신을 탓하면서 끊임없이 가라앉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어. 안되는 일들은 잊어버리고, 그냥 네 앞에 놓인 것에 충실하면서 다시 일어나는 그런 회복력 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그렇지 못했거든. 그래서 자주 혼자 우울해하고, 과거를 끊임없이 생각했어. 그랬더니 미래가 오지 않더라. 지나고 보니, 그 때 좌절했던 일들은 내 인생 전체에서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어. 오히려 그 때 내가 할 수 있던 일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


인생을 조금이나마 먼저 산 엄마가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네 인생에서 좌절은 순간일 뿐이라는 것. 가끔은 끝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지만 네 자신을 믿고 나아가면 언젠가 그 터널이 끝날 거라는 것을 알았으면 해. 너는 엄마에게 가장 소중하고 귀한 존재야. 항상 그걸 믿고 무엇이든 다시 해봤으면 좋겠어. 너의 가장 초라한 순간에도 엄마는 네 편이고, 너를 응원하는 한 사람이 될거야. 네가 언제든 기댈 수 있게 엄마도 열심히 할게.


그리고 네가 남들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너가 태어나고, 집안의 온 식구들이 너에게 큰 사랑을 주었단다. 멀리 계신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도 철마다 네 옷과 먹을거리를 보내주시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도 항상 너를 사랑으로 돌봐주시고. 너를 보는 어린이집 선생님도, 이모 할머니도 너가 아프면 걱정해주고, 너가 즐거우면 같이 기뻐해주셨어.


너처럼 사랑만 가득 받는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은 당연한게 아니야. 세상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많단다. 그러니까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것처럼 다른 이에게도 네 사랑을 베풀기를. 아니 적어도 남을 미워하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을 공격하고, 무시하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이제는 말할 수 있어.


엄마는 너를 만나서 정말 행복해. 이제 너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가 없단다.


가끔은 엄마도 혼자 있고 싶고, 어딜가나 쭐래쭐래 따라오는 엄마껌딱지인 네가 살짝 귀찮을 때도 있지만ㅎㅎ


너가 너라서 정말 기뻐.


1년 동안 잘 커줘서 정말 고마워.



- 이 세상에서 너를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아기 돌잔치 때, 읽어주려고 쓰다가 미뤄뒀던 편지.

지금은 돌도 훨씬 지났지만 나중에 너 어릴때 엄마가 이런 것도 썼다고 기록용으로 남겨놓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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