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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라킴 Mar 13. 2023

내 남자가 변했다

나도 변했다. 앵그리버드로!

분명 남부럽지 않은 학교도 나오고.

일터에서 일은 잘하는진 모르겠지만 암튼 일도 하고!

출산 전엔 집안일도 나보다 야무지게 잘했는데!!!


그런데 왜?!!


육아할 때 남편은 왜 이렇게 멍청이같은 것일까?!!


너만 믿고 애 낳았는데 나한테 왜 이래?!!!

해서 남기는 글.


육아를 부부에게 떨어진 하나의 큰 프로젝트라고 한다면, 부부는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하나의 팀이라고 할 수 있다.


팀플. 악명 높은 그 팀플.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팀플의 성공은 팀원에게 있는데, 팀원끼리 손발이 잘 맞으면 그 프로젝트는 성공인 것이요, 아니면… 폭망… 본격 헬파티의 시작인 것이다.


아기 낳기 전에 남편은 미숙한 부분이 있었으나 나름 괜찮은 동료였다. 조용한 집돌이. 요리는 못하지만 청소, 설거지 등 집안일도 잘 했고, 성격도 꼼꼼해서 각종 고지서는 남편 전담이었다. 처음 결혼했을 때는 남들처럼 서로 다른 스타일 때문에 자잘한 것들로 투닥거렸지만, 그때도 덜렁이는 나였고 꼼꼼이는 남편이었다. ‘넌 나 없으면 어떡할래?‘ 는 남편의 단골멘트였고, 나는 그런 남편이 있기에 그를 믿고 애를 낳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출산 후...


내가 알던 그 남자는 대체 어디로 갔나요.



’ 오빠 아기 배고파, 빨리 우유 우유!!‘ 앞에서 애는 울고불고 난리가 나고 나는 정신없이 애를 달래고 있는데 젖병 맞추는 데만 한 세월, 거품 나면 안 되니까 살살 흔들어야 해 하느라 한 세월. 아니 그럴 거면 제대로 해오던가. 젖병 꼭지 제대로 못 채우고 흔들어서 분유폭발 아니면 우유 안에 뭉친 분유가루가 동동동.


애가 어릴 땐 이러더니만.



‘오빠 나 이거 좀 치우고 있을 테니까 애 밥 좀 먹여봐’ 하면 애가 밥은 안 먹고 밥상에서 장난친다고 말도 못 하는 애한테 ‘안돼. 그러면 밥 못 줘!‘ 하면서 일장연설.


결국 승질나서 애 밥 먹이는 건 내 차지.


그러면서 옆에서 ‘그거 맛없는 거 아냐?’ ‘그거 오래된 거 아냐?’, ‘그거 너무 커서 위험한 거 아냐?’, '그거 먹여도 되는 거야?' 하며 잔소리. 


아니, 어머님.... 어머님이 왜 여기 계세요? 



목욕시킬 때도(그것도 주말 한정인데)

‘ㅇㅇ어딨어?’ ‘수건 갖다 줘!’ ‘ 몸 좀 닦아줘‘, ’ 애 좀 잡아줘’.  


옆에 무수리 한 명을 뒀는지 나를 하도 부르니 이건 남편이 목욕을 시켜주는건지 내가 하는 건지. 옆에 있어도 도움이 1도 안 되고, 나는 쉴 수가 없다….



가장 열받을 때는 외출할 때.  


아기랑 외출하면 짐이 한가득인데, 내가 이것저것 챙기느라 정신없으면 옆에서 애 옷이라도 입히든가, 나가자고 한 게 언젠데 애 옷도 안 입히고 핸드폰 보면서 애랑 놀고 있질 않나.


아오 난 옷도 못 입고 아등바등 짐 싸고(화장은 애초에 포기했다!!!) 얼른 애 옷 입히고 잠깐 내 옷 하나 입으려고 하면 그놈의 화장실!!


화장실에 우렁각시라도 숨겨놨나 왜 안 나오는거야. 그러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고 애는 지치고(외출준비하는데 한 시간 걸리는 거 실화냐... 그것도 집 앞 공원 가는 건데ㅠㅠ)

그렇게 나는 안면홍조로 붉어진 얼굴과 떡진 머리, 트레이닝복을 입은 무수리 신세로 외출하게 된다.


언제는 너무 열받아서 한 소리 했다가, 나는 화장실에서 일도 못 보냐고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치길래.


‘이보세요. 누군 화장실을 자유롭게 가는 줄 아나. 화장실에서 맘 놓고 싸본 지 오래야, 문 닫으면 사고 칠까 봐 문 열고 싼 지도 오래됐고, 급해도 애 꺼 먼저 처리하느라 참고, 큰 거는 진짜...나오기 직전에 간다고!!!‘

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스스로가 너무 더럽고 구질구질해서 참았다ㅠㅠ



아기가 4-5개월 때는 그런 남편이 너무너무 미웠다. 나도 부모가 처음인데 모든 걸 나한테 맡기고, 아이에게 해주는 것 하나하나 자기는 찾아보지도 않고, 해주지도 않으면서 잔소리는 또 왜 이렇게 많아?!! 그래서 남편이 숨을 쉬는 것만 봐도 짜증, 나는 못 자는데 내일 출근한다고 자는 것도 어찌나 꼴 보기 싫은지. 주말에 겨우 한두 시간 외출하는 건데도 어디가, 난 어떡해?라고 말하면 정말 명치를 한대 꽉 쥐어박고 싶었다.


특히 그즈음에 몸 어디 한 군데씩 안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손목부터 허리며 무릎까지 시큰시큰한데. 

'오빠 나 요즘 여기 너무 시리다' 이런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괜찮아? 어떡해… 가 아닌 어? 그래? 나도 여기가 아프고 저기가 아프고... 저기여 눈치 좀? 애를 네가 낳은 건 아니잖아요?!


아픈 남편에 대한 연민보다... 아니 왜 다 큰 성인이 자기 관리를 못 하지? 나는 감기라도 걸려서 애한테 옮길까 봐 진짜 엄청 조심하는데... 하고 생각하고. 진짜 남편이 아프면 간병과 육아 둘을 모두 해야 하는 상황에 분노했다. 


출산 후 나는 그렇게 앵그리버드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남편이 '잠깐 이리로 와봐' 하자마자 갑자기 인상이 써지고. 말투는 '아니 아니 아니-'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고, 이렇게 해!' 하는 명령형 말투로 변함ㅠㅠ. 이제 왜 아저씨들이 부인이 무서워진다고 하는지 알겠다. 


물론 남편의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정신없이 일하고 들어오면 맨날 썩은 표정의 와이프가 보이는데, 자기도 즐겁진 않겠지. 뭐가 그렇게 예민한지 이건 이렇게 해, 저건 저렇게 해 명령조고, 맨날 죄인 모드로 있는 게 이해도 안 되고 억울하고. 그래. 이렇게 머리로는 남편이 이해되고,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만. 그래서 오늘은 잘해줘야지, 짜증 내지 말아야지 하는데. 왜 얼굴만 보면 으이구!!! 저저저!!! 이런 생각이 드는 걸까. 


역시 진정한 부부관계는 애를 낳고 시작하는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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