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이야기
지난 7월, 즐거운 금요일에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CCTV에 찍힌 듯한 영상에서 22일 새벽, 한 집 앞에 삐에로 가면을 쓴 사람이 두리번거리면서 나타납니다. 그 남성은 문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비밀번호를 눌러보기도 하고, 귀를 대 보기도 합니다. 그러다 문 앞에 놓인 택배를 들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마지막 부분에는 어두운 복도에서 문이 살짝 열렸다 닫히며 영상이 끝납니다. 몇 달 전 있었던 신림동 원룸 성폭행 미수범을 연상되게 하는 내용입니다. 섬뜩한 영상이죠.
그런데 사실 이 콘텐츠는 '바이럴 광고'용 영상이었습니다. 택배를 대리 수령해주는 업체 대표의 바이럴 필름이었죠. 그는 다양한 택배 대리 수령을 진행하며, 개인들이 가지는 불안감을 (아마 저보다는) 훨씬 더 체감하였으며, 그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서비스를 런칭했고, 그 서비스를 홍보하고자 필름을 제작했습니다.
이 스토리만 보면 연말 마케팅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를 어느 날 아침 사회면 기사로 읽게 된 것이죠. 어디서부터 이 이야기가 잘못 쓰여진 것일까요?
볼드모트는 이름을 부르기 두려운 사람이죠. 몇 명을 빼고는 그 이름을 외쳐 부르지 않습니다. 떠올리고 입에 올리는 것이 금기시되는 것, 그것을 우리는 터부(Taboo)라고 합니다. 저는 어릴 때 '터부시되다' 라는 말을 한국어로 알았습니다. 얼마나 고유어같이 보이는 말인지요. 하지만 이 말은 폴리네시아 언어에서 나와, 영어를 거쳐 한국어로 정착된 말입니다. 우리는 터부가 거의 없던 시대를 거쳐, 많은 것들이 터부시되는 시절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이것이 요즘 시대의 시대정신(Zeitgeist) 중의 하나입니다. 하지 못하는 말을 하려는 꼰대들은 이제 밈(Meme)화 되고 있습니다. 삼성생명의 '라떼는 말이야' 같은 캠페인이 그렇죠.
이 가짜 삐에로 아저씨의 경우는 여러 터부를 시원하게 건드립니다. (주로) 여성분들, 1인 가정의 불안감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 하필 모방한 것이 실제 얼마 지나지도 않은 범죄의 장면이라는 것. 사실 조금 미묘한 사례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이 건은 정말 '감'이 없다고 할까요. 사실 전 이런 상황이면 '감수성'이 부족한 상황이라 봅니다. 아마 이 분은 영세한 업체를 혼자 운영하고 있었을 것이고, 어떤 사고가 조직 내에서 리뷰되지 않는 1인 사장의 한계를 보여 준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한 시점부터 이미 그런 사소한 것들은 배려받지 못합니다.
육체적, 혹은 정신적 나이가 드신 분들은 이 조류를 무시하거나, 거스르거나, 아니면 따르는 척 할 수 있습니다.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여성 중심의 조직이라고 여혐 콘텐츠가 생산되지 않는 것도 또 아닙니다. 집단 지성의 함정이 생겨날 수도 있고요.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에서는 그래서 완벽한 프로 불편러가 한 명쯤은 있어야 하고, 그의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그거 이거 다 빼면 무슨 재미가 남냐 할 수 있지만 그게 이 시대가 요구하는 노잼이라면 그 길을 가야할 지도 모릅니다. 그런 걸 넣어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프레임에 갖히는 행위기도 하고요.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의도는 좋았다' 케이스죠. 물론 많은 분들은 이 분의 의도도 엉망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저는 사실 이 분이 의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택배 대리수령업을 하면서, 강한 남성 이름을 쓰는 여성분의 불안감을 공감했다고 했으니까요. 공감이 콘텐츠에 내용적으로는 대충 억지로 우겨넣어 녹여졌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혹자는 지금의 시대를 프로 불편러의 시대라 말합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의도는 좋았던, 그러나 배려가 미숙했던 콘텐츠와 액션으로 욕을 먹는 시대입니다. I30 핫해치, 배스킨라빈스, 무신사, 어린이 먹방…줄 세워 보면 끝도 없이 늘어놓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그것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감수성과 예민함은 나이를 먹을 수록 둔감해지고, 조직의 크기가 커질수록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감정은 사회 약자적 감정에 가깝습니다. 강해질 수록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자기 반성이 아니라 모멸감에 가까운 되돌아봄이 없다면 이 두 가지 감정은 성취욕과 성과 등에 묻혀 점점 희미해집니다.
지금 시대에 콘텐츠를 만드는 모든 사람은 냉혹하리만큼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자신감과 자기 반성을 동시에 가지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콘텐츠를 새벽 3시에 올리고 정오에 경찰에게 잡혀가지 않으려면 더 노력해야 합니다. 최근 무신사가 뛰어난 위기 대처로 찬사를 받았습니다만, 그래도 이 위기를 극복해 낸 홍보 담당자들은 제발 이런 해결해야 할 위기가 안 뜨길 바랬을 겁니다. 불은 한 번만 못 꺼도 집을 다 태워버립니다. 불 잘끄는 사람이라도 또 자신의 능력을 뽐낼 기회가 오길 원하진 않을 겁니다. 대국민 사과문을 쓰는 것보다는 조금 자괴감에 빠지는 시간을 갖는 게 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