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별 이유없이 내 서른을 상상해보곤 한다. 중고등학생때도 같은 짓을 했었다. '내 20살은 어떨까?' 라는 생각에 종종 잠겼다. 스물이면 국가가 공인한 성인이니, 당시에는 내게 주어질 자유와 해방감만 떠올렸고 그것에 따르는 책임감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닥친 20살은 내 상상과 많이 달랐다. 중고등학교만 벗어나면 해결될거라고 생각했던 고민 중 몇몇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몇몇은 사라졌지만 또 다른 고민들로 채워졌다.
그래서일까. 2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다가올 서른의 환상보다는 사회에서 30살 여자가 갖춰야 할 현실적인 부분에 더욱 집중해서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어렸을적처럼 '그때가 되면 이 고민은 해결될거야' , '그때가 되면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됐겠지?'라는 환상은 접어뒀다. 냉정하지만 오히려 이성적으로 변했달까.
그렇다면 20대 중반이 생각하는 30살이 갖춰야 할 필수 스킬 2가지는 무엇일까. 나름 세상의 참맛을 못 본 25살의 관점일 뿐이니 이 글을 읽는 진짜 30대가 있다면 20대의 자신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마음으로 추가적인 의견을 주어도 좋을 것 같다.
첫번째는 운전이다. 단순히 운전이 아니라 '제대로 하는 운전'이다. 제대로 운전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상의 지평이 열린다는 말과 같다. 운전 하나에 뭐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치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은 한 개인의 활동영역이 무한히 늘어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뚜벅이로 가기엔 애매해서 포기했던 국내외 여행지들, 그 지역에 가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낯선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새로운 감각. 이 모든 것을 더이상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활동영역이 확장될수록 개인의 세계 또한 확장된다.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고,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기 시작한다
또한 운전을 할 줄 몰랐던 시절과 달리 자신의 활동 영역을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택시기사님,버스기사님,그 밖의 다른 운전자 등) 어떻게 보면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독립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삶에 대한 경험치 증가와 독립.
이 모든 것을 안겨다주는 운전은
성숙한 어른으로서
갖춰야 할 필수적인 스킬 중 하나다.
또한 제대로 운전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바꿔말하면 사람을 존중하는 법을 배워간다는 뜻이다. 카시트에 앉아있던 아이 시절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쉽다. 카시트에 앉아있던 나는 그저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운전자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고 도로 위에 일어나는 일들에 무관심했다.
하지만 운전면허를 따고 운전을 알게되면서 운전자, 동승자의 입장이 된 지금은 다르다. 조수석에 탔을 때 어떤 행동이 무례한 줄 알게됐고,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소중하게 여기는 법을 알게됐다. 장거리 운전시에는 동승자로서 운전자를 위해 할 수 있는 배려를 고민하게 된 것이다. 음주운전, 칼치기, 과속, 험악한 운전 등 도로 위에서 용납되지 못할 행동을 거리낌없이 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그들이 타인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없는 사람인지 분간할 수 있는 능력까지 새삼 갖추게 됐다.
이렇게 우리는 '제대로 하는 운전'을 통해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배우고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체화한다. 그래서 '제대로 하는 운전'이 성숙한 서른이 갖춰야 할 필수 역량 중 하나인 것이다.
누군가는 피곤하게 사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회생활, 직장생활도 힘든데 취미까지 죽어라 해야되나?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취미를 일정 수준 이상 배운다는 것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은 직업 외에 또 다른 자아로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다. 코로나 19로 고용불안, 불안전한 경제상황을 여실히 느껴본 mz세대는 더이상 평생직장, 한 개의 직업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팬데믹 기간동안 경험이 자산이 되고 취미가 또 다른 직업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직간접적으로 목도했기 때문이다.
재미삼아 배우는 취미일지라도 설렁설렁 느슨하게 배운 취미는 사실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몰입해서 제대로 배운 경험. 임계점을 넘어본 경험만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내 취미를 가르쳐 줄 수 있을 경지에 도달할 수 있게되고 그렇게 재미삼아 시작했던 취미가 나의 또 다른 무기가 된다.
직업 외에
내가 가진 또 다른 능력으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어마한 치트키인 것이다.
'이 길 밖에 없어서' 절박한 마음으로 하는 회사생활과 '꼭 이 길이 아니어도 먹고 살 길이 있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니는 회사는 정신적인 여유와 신체적 부담에서 차이가 벌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취미생활로 임계점을 넘겨본 경험은 성숙한 어른이 되기위해 갖춰야 할 자질. '한가지를 진득하게 해보는 것' 자체에 대한 배움이기도 하다. 일이든 취미든 이것저것 간만 보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보통 이런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빠른 흥미를 느끼지만 그 흥분감이 식는 속도가 빠른 편이라 다른 모든 일에 있어서도 간만 보다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내가 그렇다^^).
아무리 재미로 시작한 취미일지라도 한계를 마주하는 순간은 온다. 잘하다가 이 동작에서 막힌다던가, 마지막 마무리가 어설프다던가, 디테일을 못살리겠다던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자연스레 여러 한계에 부딪힌다. 이때 포기하고 또 다른 취미를 찾아나서느냐 아니면 부족한 점을 계속 보완해 나가서 그 취미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드냐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까지 바꿀 수 있다. 거듭되는 실수, 실패, 좌절감, 무력감을 맛보고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본 사람은 인생에 어떤 난관을 만나도 같은 태도로 임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한 서른은 이직,건강,제태크,연애,결혼,가족,친구,인간관계..등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걸쳐 책임감이 막중해지고 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 격차가 확연하게 벌어지는 나이다. 때문에 취미를 단순한 취미로 방치하지 않고 '몰입해서, 끝까지, 제대로 배운' 경험은 앞으로 삶의 태도. 나아가 서른 이후의 삶까지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나의 서른은 어떨까 막연하게 상상해본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꾸다가 문득 이걸 이룰 수 있을까 겁이 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깨져도 조각이 큰 꿈을 계속해서 꾸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
서른 쯤 내 인생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른의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은 무엇이며 반대로 놓아주고 흘려보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서른이 된 내가 이 글을 다시 들춰볼때엔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