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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편안 Dec 23. 2020

직장에서 인간미를 잃는다. 되찾을 수 있을까?

<직장에서 인간미를 생각하다>

첫 출근날을 떠올리면 말끔한 외모, 각 잡힌 양복, 반짝거리는 구두, 텅 빈 가방으로 무장한 내가 삐걱거리는 팔과 다리를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직장에 도착하는 순간, 나 빼고 다 익숙한 것 같은 텃세 공기에 주눅이 든다. 어서 무리에 어울려야 할 텐데 하는 초조함과 인정받겠다는 열정, 그 외 뒤섞인 감정이 마음 안에 가득하다.


이는 지극히 정상인 반응으로 인간은 감정을 느끼고 표현한다. 인간은 자신을 꾸밀 수 있어서 겉모습뿐만 아니라, 안에 든 마음을 보듬어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 보통 인간이 품는 따뜻한 마음을 인간미라고 부른다. 하지만 환경에 따라, 개인적인 결함에 따라 이를 상실할 수 있으며 안타깝게도 현대는 미를 유지하는 자보다 잃은 자가 많다. 주로 인간미를 잃는 곳은 직장이다. 물론, 나처럼 자신을 너무 몰아세운 나머지 잃는 경우도 있다.


인간

고도의 지능을 소유하고 독특한 삶을 영위하는 고등동물


인간미

인간다운 따뜻한 맛


직장

1.  사람들이 일정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곳.  

2.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는 수단으로써의 직업.  


직장에서 인간미를 잃는 이유는 일하는 가장 큰 목표가 타인이 아닌, '나의 생계'이기 때문이다. 먹고살기 위해 직장을 다니고 그에 합당한 돈을 얻어 필요한 물품을 사고 유지 비용을 지불한다. 때로는 나에게서 확장되어 가족의 생계가 되기도 하지만, 단지 범위가 가족으로 확장된 것뿐이다. 문제는 생계, 일, 돈에는 인간다운 따뜻한 감정이 스며들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 인간미가 밀리고, 이성이라는 탈을 쓴 냉혈인이 등장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흐른다. 나는 직장에서 인간미를 잃은 자를 많이 봤다. 아마 모두 봤을 것이다.




어떻게 되찾을 수 있을까?


나는 사회에 첫발을 딛고 처참히 미끄러진 적이 있다. 그때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무척 고심했다. 내가 살던 곳은 경상북도 대구광역시로 표준어 대신 사투리를 사용한다. 사투리는 인간미를 드러내기 쉬운데, 쓰는 방법에 따라 양날의 검이 된다. 덤을 챙겨주면서도 다소 투박하게 뱉는 말은 숨김없이 따뜻한 정을 강조하지만, 경멸하는 표정과 함께 뱉는 말은 듣는 대상의 심장을 관통하는 치명타를 입힌다. 안타깝게도 나는 날카로운 날을 더 사용했고, 당했으므로 이곳을 떠났다.


추천 방법

자신이 있는 곳을 완전히 떠나기


떠날 수 없다면, 변형 방법

다양한 경험으로 마음이라도 떠나보내기


추천 방법은 사용하기 어렵다. 현재 누리는 것을 다 내려놓고 떠나야 하니까. 하지만 변형 방법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나는 경기도로 떠난 후에도 일부러 여러 경험을 하며 마음을 떠나보냈다. 그러자 서서히 미지근한 온도라도 감정을 느끼며 진심을 표현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됐던 사촌 오빠의 말을 적어 본다.


"Hey~" 오빠는 호주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쓴다. 한국어로 바꾼 표현이 어색할 수 있다.

"직장에서 힘들다니까 마음이 아프네. 너를 너무 몰아세우지 마. 좀 보살펴 줘. 넌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강한 사람이야. 자신을 믿어!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볼 필요가 있어. God is with you at all times. One step at a time. :)"


오빠의 말은 모두를 향한 위로이고 조언이다. 직장에서 인간미를 잃고 행동하는 사람 혹은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너 자신을 그만 괴롭히고, 좀 보살펴 줘.'


내가 시도한 변형 방법


나는 새로운 경험을 통해 감정이 있는 평범한 나를 만났다. 먼저 내가 좋아하고 익숙한 것을 써봤다.


책을 읽고, 독서 노트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한다. 가만히 보니 다 정적이다. 동적이거나 반대의 것을 찾아보았다.


가까운 음악학원 몇 군데에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바이올린을 배우려고 하는데요. 아, 저는 직장인이고요. 조금 켤 수는 있는데 누가 들을 수는 없는 상태라서요."


돈을 밝히는 여러 선생님을 거쳐 음악을 사랑하는 분을 만났다. 나에게 색다른 세상을 보여주신 선생님은 늘 스스럼없이 바이올린을 꺼내서 버벅대는 나와 합주해주셨고, 아낌없이 음악을 향한 열정과 지식을 나눠주셨다. 이 경험을 일기장에 기록해뒀는데, 지금 봐도 반짝반짝 빛나는 행복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음악은 감정을 살리는 데 효과가 좋았다.


다음으로 꺼리는 장르의 책을 잔뜩 빌려서 정독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알겠지만, 자신이 끌리는 장르가 있다. 자주 손이 가는 책 말고 아직 접하지 못했거나 꺼리는 장르의 책을 읽는 것도 쉽게 신선함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방법이다. 그 외, 붉고 빳빳한 종이와 나무 조각을 사서 장미꽃과 바구니를 만들며 아름다움을 느꼈고, 낯선 프랑스어나 스페인어를 배우며 지구본 위를 걸어 다니는 즐거움도 누렸다.


나를 인간답게 한 최고의 경험은 '사람과 교감'이었다. 이때 마음은 차가운 현실에서 떠나 나다운 감정을 온전히 느꼈다. 시도한 것은 간단했다. 마음이 맞는 동료 연구원과 서점가기, 영화 보며 수다 떨기, 좋아하는 언니 오빠와 맛있는 거 먹기, 친한 동생 만나서 한바탕 웃기.


바쁘다는 핑계로 버려뒀던 시간은 사람답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직장 혹은 자신이 자꾸만 인간미를 빼앗아간다. 그때마다 나는 되고 싶은 평범한 사람을 떠올린다.

옆 사람이 아프면 나도 아프고, 기쁘면 함께 기쁠 수 있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되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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