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동안 자식 하나만 낳고 잘 기르고 싶은 생각이었는데, 쌍둥이라니! 의사 선생님은 검사 도중 아빠 닮아 잘 생겼겠다며 넌지시 운을 뗐다. 평소 나는 아들보다 딸을 선호한 편이었다. 나는 딸만 넷인 딸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아들보다 딸이 엄마 마음을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았다.
주변에서는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하니 잔뜩 겁을 주기 시작했다. 한 애가 울면 다른 아이가 따라 우는 건 어쩔 수 없다. 집안일로 쉴 틈 없고, 식비와 교육비도 두 배를 내야 하니 경제적인 타격도 각오하라 했다. 이런저런 무성한 소문은 나중 일이고, 일단 중요한 건 단 태아와는 달리 압도적인 배 크기다. 단 태아를 임신했던 엄마들도 배가 불러오면서 피부 살결에 따라 살이 트는 경우가 있는데, 쌍둥이 배는 단 태아의 두배 크기다.
살 트는 건 어쩔 수 없이 각오해야 할 운명이었지만, 인터넷으로 실제 사진을 보니 우울한 마음이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좋다는 튼 살 전문 화장품이라도 모두 바르는 수밖에.
임신을 한 후하고 있던 업무를 지속하는 게 어려워 후임을 구한 뒤 출산일까지 다른 팀에서 근무를 했다.
나와 마음이 맞는 함께 일하던 언니가 있었는데, 마치 우리는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매일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간식거리를 준비해왔다. 찐 감자, 고구마, 약밥(약식), 찰밥, 옥수수 등 언니는 어떤 것이든 하나라도 더 먹어야 한다며 지극정성으로 나를 챙겨주었다. 뭐 그리 할 말이 많던지 온종일 웃어서 안면 근육이 얼얼하기까지 했다. 내게 태교란 그런 것이었다. 좋은 사람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소소한 간식을 먹는 일.
그 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하필 직장 내 에어컨도 고장이 나서 가뜩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을 하는 게 힘들었다. 언니는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을 씻어주기 위해 내게 연신 부채질을 해주었다. 미지근한 바람이었지만 언니의 마음이 고마워서 추우니까 그만해도 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우리에게는 태어날 아이들을 위해 조금 더 넓은 집이 필요했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은 방이 두 개였지만, 작은방 하나는 짐이 가득했고, 거실이 좁은 3층 집 다세대 주택이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어린아이들을 키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리는 당장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한 집을 구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몇 군데를 봤지만 만족할 만한 곳이 없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오래됐지만 13층 뷰가 좋은 아파트를 고민하지 않고 덜컥 계약해버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배는 불러왔지만, 이사 온 곳은 정리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게다가 청소해야 할 곳은 왜 이리 많은지 집에 있으면서도 편히 쉬는 게 어려웠다.
30주가 넘어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검진을 갔다. 검사 도중 순간 머리가 하얘지며 식은땀이 났고, 배가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간격은 짧았다가 길어졌다를 반복했고 마침내 계속 지속되었다. 의사는 검사 결과지를 보며, 자궁수축이 심하니 입원을 권유했다. 순간 외래진료를 보다가 고위험 입원실로 이동하게 되었고, 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혔다. 그렇게 나는 준비 안된 입원생활을 시작했다. 단 며칠이면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지만 기약 없는 입원생활은 계속되었다.
간호사들은 매일 새벽 4시가 넘으면 어김없이 입원실을 찾아왔다. 아침마다 시작되는 피검사와 수축 검사로 병원생활이 쉽지 않았다. 또한 나흘에 한 번씩은 링거 바늘을 바꾸는 게 가장 힘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피부에 핏줄이 잘 보여서 피검사나 링거 바늘을 수월하게 교체할 수 있었는데, 곁에 있던 산모는 핏줄을 찾지 못해 괴로워했다. 하필 새벽에 찾아오는 간호사는 실습생이 대다수였다. 산모는 핏줄을 잘 찾는 간호사로 바꿔 달라 했고, 간호사가 바뀌고 나서야 링거 바늘을 꼽을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고상한 태교는 꿈꿀 수도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퇴원을 하는 게 꿈으로 바뀐 현실이었다. 다이어리에는 내가 지금까지 병원생활을 하고 있는 날짜를 세어가며 퇴원이 가능한 날을 체크했다. 그렇게 시간은 점차 흘러갔다.
34주, 약물을 투여했을 때까지는 그나마 잡혔던 수축이 34주 1일부터는 잡히지 않았다. 약물을 끊은 1일 차부터 자궁수축은 춤을 추듯, 파도처럼 일렁였다. 수축이 심한 경우 그래프는 오르락내리락 심한 젓가락질을 한다. 결과를 통보받은 마취 주치의가 내게 찾아왔다. "내일 아침 당장 수술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우선 수술 동의서예요. 마취는 어떻게 진행할까요? 보통 하반신 마취 후 수술 중 수면마취를 하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고민 없이) 그럼 하반신 마취로 할게요."
34주 2일이 되자마자 수축은 더욱 심해졌고 곧바로 수술 일정이 잡혔다. 입원복 상의를 앞뒤로 바꿔 입고 침대에 누워있자 남자 두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나를 수술실로 안내했고 긴장된 마음에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쳤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수술실에 들어가니 마취 의사는 새우등 자세를 취하라며 허리를 구부리게 했다. 하지만 남산만 한 배에 허리가 구부러지질 않았다. 의사는 있는 힘을 다해 등 어딘가에 마취 주사를 놨다. 시간이 흐른 후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실에 가니 나뿐만 아니라 수술을 진행하는 일반 환자들이 많았다. 이윽고 주치의가 들어왔다.
"이제 시작할까요? 겁내지 마세요." 똥배 어딘가를 칼로 긋는 느낌이 들었다. 배에는 차가운 느낌의 액체 가 고였다. 의사는 찢어진 배를 있는 힘껏 벌리고 분주해 보이는 손놀림으로 아이를 찾는 것 같았다.
"1번 아기 남자입니다."
1분 간격이다.
"2번 아기도 남자예요."
두 번째 아이가 뱃속에서 나오면 모든 게 끝나는 줄 알았는데, 이후부터가 게임 시작이었다. 자궁 안에 고인 피를 닦는 건지 무언가 빠르게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그 순간부터 통증이 시작되었다.
"선생님, 저, 저 마취해 주세요. 아파서 못 참겠어요."
"어쩌죠. 마취는 이미 했는데, 약이 듣질 않네요.
뱃속 안에 있던 장기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움직임을 고스란히 느끼기를 5분. 찢어진 배를 꿰매는 느낌이 들면서 고통은 다시 시작됐다.
'젠장! 얼어 죽을 무슨 하반신 마취야. 그냥 전신마취로 할걸!'
욕이 한 바가지 나올 때쯤은 이미 모든 수술이 끝난 이후였다. 수술이 끝난 후 병실에 돌아갔는데 아랫배가 불에 타들어가는 듯한 2차 통증이 시작됐다.
"소변줄은 지금 바로 제거할 거예요. 많이 움직이고, 화장실은 스스로 가야 해요."
먹는 게 없으니 화장실도 자주 안 갈 줄 알았는데 웬걸! 소변줄을 제거하기 무섭게 바로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일어나려 하는데 도저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겨우 엄마를 붙들고 통증을 참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내 생에 그렇게 뜨거운 소변을 본 적이 이 순간이었으리라.
화장실도 성공했으니 이제는 방귀였다. 밥을 먹으려면 방귀가 먼저 나와야 했는데, 도저히 방귀가 나오질 않는 거다. 몇 시간 만에 온 힘을 다하니 방귀가 나왔다. 세상에! 방귀가 이렇게 반가운 손님이 될 줄 누가 알았나.
이렇게 힘들게 만난 쌍둥이들이 벌써 다섯 살 청년이 되었다. 세월도 빠르지.
하지만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쌍둥이를 출산했던 기억은 생생하다.
임신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쌍둥이를 출산한 일은 더욱 힘든 일이었다. 이런 인고의 노력 끝에 태어난 아이들이라 더없이 소중하기만 한데, 요즘은 말 안 듣는 다섯 살을 상대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도 엄마가 되어보니 나름 엄마의 삶도 매력 있더라. 남편 아들 하나, 진짜 아들 둘과 함께하니 엄마는 항상 인기쟁이다. 어딜 가서 이런 인기를 받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