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내보다 세 살 어린 남자다. 어리지만 아내에 비해 정신연령은 높은 편이다. 어떠한 일로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신중한 편이며, 결과를 중요하게 여긴다. 반면 그녀는 유독 돈 계산이 약한 편이다. 가격이 비싼 제품과 저렴한 제품이 있다면 누구나 그렇듯 비싼 게 좋다. 그럴 때마다 돈은 생각하지 않고 비싼 것부터 손에 드는 그녀다. 정작 써야 할 돈이 없을 때는 내게 SOS를 외친다. 사실 말이 좋아야 SOS 지, 가끔 보면 도둑 심보가 따로 없다. 함께 외출한 날에는 늘 갖고 다니던 지갑도 갖고 나오지 않는다. 연애시절 내가 밥을 사면 어김없이 커피를 사주던 그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도둑 심보가 따로 없다.
아내가 가장 무서운 적이 있다. 이미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살아야겠다.
결혼한 지 5년이 지나도 우리에게는 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기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생기지 않는 아기를 굳이 몸 고생, 마음고생하며 갖고 싶지 않았다. 둘이라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오롯이 자식만을 위해 헌신하는 부모로 살고 싶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언젠가부터 아내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일찍 일어나 난임 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회사를 출근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부지런한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반대로 나는 난임병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병원에 간 아내가 어떤 치료를 받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내는 늘 혼자 다니던 병원을 함께 가자고 했다. 아침 일찍 준비를 하고 아무 생각 없이 함께 병원 문을 두드렸다. 그곳에는 이미 수많은 젊은 부부들이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이 시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는 게 신기했다. 30분 정도 대기를 하고 있을 즈음 간호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 쌍둥이 엄마님 남편분 계세요? " 아니, 아내를 부르면 이해를 하겠는데 처음부터 내 이름을 불렀다. 아내도 얼른 간호사를 따라가라는 눈치를 줬다. 아내는 내가 어떤 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사전에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함께 상담을 받는 것도 아니고, 무슨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윽고 간호사는 뚜껑이 달린 작은 컵을 건넸고, 알 수 없는 방을 들어가라 했다.
"어렵지 않아요. 평소대로 영상 보시고 하시면 됩니다."
평소대로? 나에 대해 잘 아는 사람처럼 말하는 간호사가 이상했다. 하는 수없이 간호사가 일러 준 대로 작은방에 들어갔고, 신성한 병원에서 들을 수 없는 야릇한 신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텔레비전과 소파만 덩그러니 있는 방에서는 남녀가 서로 부둥 껴안은 채 뒹굴고 있는 영상이 보였다. 비록 모자이크 처리된 영상이긴 했지만 영상을 보려니 불편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내 손에 쥐어진 컵을 보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 야한 상상을 하자. 하라는 대로 해야지. 아내의 구박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비밀의 방에 들어간 지 20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추운 겨울인데도 얼굴이 후끈 달아올라 대기실로 나가는 것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아니, 손에 쥐고 있는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게 더 쑥스러웠다. 그래도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릴 아내를 생각하니 용기를 냈다. 나를 보는 아내는 왜 이제 나왔냐는 듯 바라봤다.
"쌍둥이 엄마와 남편분 들어오시겠어요?"
"영상 잘 보이시죠? 꼬물꼬물 올챙이처럼 열심히 팔딱 뛰는 아이들이 건강한 정자예요. 반면 이 아이 보이시죠? 이 아이는 건강해 보이지 않죠? 움직임도 적고 생긴 것도 약간 다르게 보일 거예요. 대충 영상만 보더라도 건강한 정자가 적어요. 담배 피우시나요? 정자는 스트레스가 주범이에요. 평소 스트레스와 담배를 줄이고 운동을 한다면 튼튼한 정자로 바뀔 수 있어요. 잘하실 수 있죠?"
의사는 내게 튼튼한 정자를 갖기 위한 생활습관을 들이라고 했지만, 어찌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겠는가? 또한 담배는 유일한 단짝 친구인데, 친구를 버리라니 말도 안 된다.
병원에 다녀온 이후부터 밤마다 아내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의사는 아기를 갖기 위한 부부의 날을 정해줬다. 그래도 그렇지, 저녁만 되면 숙제를 해야 한다며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아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과거 그녀는 배려심이 깊은 여자였다. 이런 일에 있어서는 내 의사도 존중해 줘야 하는 게 마땅한데, 어떻게 의사 말만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 전 불부터 끌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기억이 희미한 야한 상상을 몇십 번이나 했다. 솔직히 말해서 야한 상상만으로는 부족했다. 아내에게 이렇게 힘든 심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아기는 혼자 갖느냐며 구박할 모습을 떠올리니 힘들지만 야한 상상을 하는 편이 더 나았다.
아내는 아기를 갖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첫 진료를 보는 부지런한 사람이었다. 무려 2년 동안 직장과 병원을 오가며 난임치료를 받았으니 나보다 의지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임신을 했지만, 건강하지 못한 아기는 엄마 뱃속에서 몇 주를 살다가 떠나기도 했다. 아파하는 아내를 보는 나도 표현하지 않았지만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아내가 노력한 만큼 나 역시 2년 동안 숙제를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랬던 우리에게도 드디어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드디어 임신 테스트기에 빨간 두 줄을 보는 날이 찾아왔다.
"진짜 두 줄 맞는 거지?"
"야호!!!!" 아기를 가진 기쁨도 좋았지만, 숙제를 하자고 달려들지 않을 걸 생각하니 더 기쁘고 행복했다.
'임신 10개월, 난 해방이다. 이것이 진정 대한독립 만세였다!!!'
임신 소식을 알린 아내는 내 표정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 "임신하니까 그렇게 행복해?"
"그럼 행복하고 말고!"
아내는 지금도 모른다. '당신이 임신한 소식보다 좋은 건 우리가 숙제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