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똥 Feb 04. 2023

직장인 3인방의 은밀한 맛 추어탕

우리는 꽤 잘 어울리는 직장인 3인방이다.

가장 먼저 소개할 사람은,  온몸에 털이 많아 이른바 '털보 원숭이'라고 불리는 남자동료, 안경 낀 깐깐한 선생님을 연상케 하지만 알고 보면 성격은 군 고구마처럼 구수한 여자동료,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범상치 않은 자신까지 포함하여 이렇게 세 명으로 이루어진 멤버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평범하게 사는 게 싫어서 우리 집에는 나만의 식탁서재가 있고, 글쓰기를 좋아해서 글모임을 들락날락하는 다람쥐를 닮은 사람이다. 글쓰기는 우리 3인방이 갖고 있는 개성을 발견하기에 안성맞춤인 도구이다.


우리 3인방은 출근 한 토요일마다 은밀한 장소에서 우리만의 만남을 갖는데, 궁금하다면 이 글을 계속 읽어 나가길 바란다.


우리는 점심시간이면 주위에 다른 동료가 있는지  살핀 후, 3인방 중 누군가 지금이 좋겠다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털보 원숭이를 닮은 남자동료는 자신이 무척 아끼는 검은색 세단을 몰고 건물로 가려져있는 장소에 차를 세운다. 나와 동료는 문을 열고 잽싸게 차에 올라탔다.


그의 차 안에서는 꽃 향기가 났다. 방향제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으니, 차 안 공기를 무척 신경 쓰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는 냄새를 맡을 줄 모른다. 내가 그를 알게 된 지 어언 20년이 되었지만 그가 후각 상실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런데도 차량 안에는 방향제가 많았다. 냄새를 맡을 줄 모르는 그는 과연 누구를 위해 이렇게 많은 꽃향기를 날리고 있는 걸까. 분명 꽃향기를 좋아하는 그 누군가를 위해서 일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노래가 휴대폰에서 큰 소리로 흘러나왔다. 뽕짝뽕짝뽕짝, 그는 뽕짝을 좋아했다.

시끄럽다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듣기에 시끄러운 이 노래를 , 선생님을 닮은 그녀도 좋아했기 때문이다. 노래가 절정부로 닿을 때 그녀의 얼굴에서는 알 수 없는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순간 내 옆에서 다리도 흔들었다. 분명 리듬을 타는 중이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날이었지만, 털보 동료는 운전 중 앞자리 창문을 열었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칼날 같은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이런 상황에도 그녀는 노래에 빠져 뼛속까지 추운 바람이 자신을 덮치고 있다는 사실도 몰랐다.  그녀는 흥이 많았다. 참, 웃음도 얼마나 많은지 별 일 아닌 일에도 깔깔깔 삼매경이다. 그런 유쾌한 그녀 곁에 내가 함께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나도 그녀 따라 은근슬쩍 다리를 떨어보았다. 소심한 리듬을 타는 중이다. 나도 어딘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익숙한 장소에 차를 멈췄다. 이곳은 2층 흙집 건물이다. 계단을 타고 오르다 보면 유리문이 보인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의 힘찬 인사를 받고 , 우리가 좋아하는 위치에 앉았다. 큰 칸막이가 되어있어서 다른 사람의 시선을 받지 않는 우리만의 공간이 있는 이곳이 좋았다. 우리는 늘 먹던 걸로 주문을 했다.

"갈돌솥추어탕 3인분이요!"

추어탕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언젠가부터 추어탕 맛의 세계에 빠져있었다.


추어탕이 나오기 전에 새콤달콤한 양파 장조림과 깍두기, 배추 겉절이가 나오는데 오늘은 배추 겉절이 맛이 예술이었다. 보통 세 사람이 모이면 접시 하나에 반찬이 한 종류씩 나오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자라 2 접시 씩 반찬을 더 담아 온다. 특히 겉절이는 산처럼 높게 쌓아서 가져올 때마다 식당직원은 김치도둑처럼 우릴 쳐다보았다. 잔뜩 담아 온 김치 중 맛있어 보이는 녀석으로 한 입 넣어본다. 아삭! 씹히는 소리와 함께 고춧가루가 입안에 닿을 때 어느새 침샘은 폭발했다. 맵지 않으면서 적당한 소금간과  젓갈향이 어우러지며 밥 없이 그냥 먹어도 맛있었다.


지글지글 끓고 있는 주인공 추어탕이 나왔다. 곁에 있던 들깨 가루 세 스푼과 다진 마늘, 청양고추, 국수말이를 넣으면 요리 끝. 추어탕 국물이 새색시처럼 고왔다. 우리는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국물을 가득 담아 한 입 넣어본다. 담백, 얼큰, 구수한 맛이 꼭 우리 3인방을 닮은 것 같았다. 털보 원숭이는 담백한 사람이고, 선생님 같은 그녀는 구수하다. 나는 밍밍해 보이는 사람 같지만 언제든 얼큰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조용하다가 화가 나면 꽤 맵다는 소릴 들었기 때문이다. 뭐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들에 비해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임이 틀림없었다.


함께 나온 돌솥밥을 공기에 담았다. 윤기가 좌르르 한 게 밥과 김치만 있어도 밥도둑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따뜻한 물이 담겨있는 주전자로 돌솥에 물을 부었다. 돌솥에 물이 들어간 순간 촤아아! 끓는 소리가 들렸다.

열기가 식을까 봐 돌솥 뚜껑을 얼른 닫았다. 추어탕과 공깃밥을 다 먹고 나면 맛있는 누룽지밥이 되길 기대하며 변해랏! 뿅뿅 마법 주문이닷!


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말이 없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털보인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어제 술을 마셨더니 제대로 해장하네!. 시원하다! "

어쩐지 그의 턱에는 더 짙고 긴 털이 듬성듬성 나있었다. 씻고 출근한 건지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그는 가끔 피곤한 아침이면 머리도 감지 않고 면도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녀와 나는 어쩐지 오늘따라 더욱 꼬질꼬질해 보인다며 놀렸다. 물론 평소에도 깔끔해 보이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털보 당신은 꼬질꼬질한 게 치명적인 매력인걸! 하하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시간이다.


어느새 누룽지밥을 먹고 있는 우리. 밥을 한 숟가락 떠서 먹었는데 온몸에 열이 나더니 이마에서 땀이 났다.

와우! 이 겨울에 땀이라니! 추어탕을 먹을 때는 온몸이 사르르 녹는 것만 같다. 왠지 몸 안에 미꾸라지 수 십 마리가 헤엄치고 다니는 이 느낌을 뭐라 해야 하지. 물론 엉뚱한 나만의 상상이다.


우리는 추어탕을 먹은 뒤, 회사로 향하는 길가에 있는 커피가게에 들렀다. 추어탕을 먹고 커피가게에 가니 낭만 가득한 커피 향이 코를 찔렀다. 커피 향이 향기롭다며 코를 킁킁대는 나는 카페라테를, 그는 달달한 캐러멜 마키야또를 그녀는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아무리 봐도 취향이나 성격이 다른 우리 3인방.

커피를 한 모금 넣으니 몸속에 헤엄치던 미꾸라지가 어디론가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회사로 향하는 털보 그의 차 안에는 여전히 꽃향기가 선명했다.

그녀는 여전히 뽕짝에 맞춰 다리를 흔들며 박자를 맞춘다. 나도 따라 다리를 흔들었다.

우리 3인방의 점심시간은 이렇게 저물어간다.

"우리 다음 주에도 추어탕 오케이? 오케이! "

"아, 배. 불. 러... 서 행 복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