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치울링 Dec 11. 2022

최선의 온도차

너와 나 사이...

  "아, 정말 억울해. 영어 완전 망쳤어."     


중간고사에서도 썩 훌륭한 점수를 받지 못했던 영어를 이번 기말고사에서는 반토막 난 점수를 들고온 중딩 둘째.    

 

  "정말 난 영어 이렇게 망칠줄 몰랐다고."


급기야는 울음까지 터뜨린다.   

  

  '그랬구나, 넌 몰랐구나, 난 알고 있었는데...어제 네가 바로 시험전날임에도 인강을 듣고 있길래 난 오늘 네가 영어시험을 망치고 오겠구나. 이미 짐작하고 있었는데.'     


  "엄마, 알잖아. 나 열심히 했잖아."     


  '내..내가? 내가 알고 있는거였어? 난 모르는데...내가 알기론 너 열심히 한거 아닌걸로 아는데..

너의 방문을 열면 넌 대부분 침대에 누워 있었지. 공부 안하냐는 질문엔 이제 하려고 했다든지, 5분 뒤에 하려 했다든지, 잠깐 쉬었다 하려고 알람을 맞춰뒀다고 했었지. 책상에 정돈된 모습으로 앉아 공부하는 모습을 마주했던 기억은 글쎄...몇 번이나 될까? 내가 너의 어떤 모습에서 열심을 찾아야 했던 걸까? 난 왜 알지 못하는가? 너의 열심을.'     


  "엄마, 나 이번 시험 망친 게 문제집 때문이야. 나 문제집이 없었다고."     


  '시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만큼 중요한 문제집이 없다는 걸, 난 왜 이제야 알게 된 걸까? 무엇이든 잠깐의, 또 조금의 부족함도 못 견디던 너. 잃어버린 에어팟 한쪽도 당장 당근을 뒤져 즉시 직거래로 가져야 했고, 게임용 마우스가 반응이 느리다며 그 역시 직거래를 위해 엄마, 아빠를 밤에도 대동하고 나갔던 너. 영어 문제집의 결핍은 그렇게 견디고 견뎌 시험 결과를 받아온 다음에야 이야기 하는구나. 나에게 사달라고 말했다면 당장 뛰어가서 사 왔을텐데... 물론 넌 그게 두렵긴 했겠지. 재빨리 문제집을 사와서 너에게 풀라고 들이밀 내가.'     


  "나 진짜, 너무 억울하고 열받아. 엄마. 알지? 내가 최선을 다한거."    


 



  "에이. 도저히 못참겠다. 최선? 최선? 너한테 최선이 도대체 뭐냐? 적어도 시험 전날에는 시험 범위 전체를 책이랑 학습지랑 문제집을 정리하며 최소한 한 번이라도 훑고, 오답은 다시 한번 체크해 보고, 선생님께서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들은 다시 철저히 복습하고, 그런게 최선 아니냐? 쉴 거 다 쉬고, 유튜브 볼 거 다 보고, 침대에 누워 태블릿 들고 키워드 인강을 듣는 게 최선이야? 아휴...진짜."     


너와 나 사이의 온도차 목록에 최선이라는 항목도 하나 추가한다.

작가의 이전글 단양, 도담삼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