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나는 운동장을 가운데 두고 각자의 학교를 다녔다. 갈색 가죽 가방을 든 아빠의 그림자를 밟지 않을 정도만큼 붙어 아빠를 따라 걸었다. 매일 아침 아빠는 운동장 왼쪽으로, 나는 운동장 오른쪽으로 등교했다.
체육시간에 운동장 맞은편을 쳐다보면 때때로 아빠가 보였다. 운동장을 둘러 부채처럼 펴진 계단이 멀리 아빠가 있는 곳까지 높이 닿아 있었다. 아주 작지만 또렷하게 아빠가 보였다. 똑같은 모자, 50명 다 같은 체육복 사이에서 아빠는 나를 찾았을까? 더 크게 뛰었다. 고개가 자꾸 운동장 너머로 돌아갔다.
운동장 건너 건물에 들어가면 랩실 기계 냄새, 화장실 락스 냄새가 무뚝뚝 섞여났다. 일부러 불을 안 킨 건지 항상 동굴같이 침침하던 복도를 지나면 있는 아빠 방에서 나는 책 냄새가 좋았다. 겨울에는 라디에이터가 칙- 칙- 요란하게 책을 덥혀댔다.
콜로세움 같던 운동장이 이내 코딱지만 해 보이던 대학생 때는 아빠와 운동장 같은 쪽으로 등교했다. 수업과 수업 사이 마주치기도, 연구실 의자를 빙빙 돌리며 기다렸다 집에 가는 차를 얻어타기도 했다.
아빠 정년퇴직 전 마지막으로 연구실 냄새를 맡고 싶어서,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휴가를 냈다. 백 번도 더 걸은 운동장 옆 언덕을 천천히 오르는 내도록 기분이 요상했다. 내 학창 시절은 여기서 시작되고 여기서 끝났고, 우리 집 모든 이야기는 이 곳을 중심으로 모이고 흩어졌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항상 이 언덕에 있었는데...
아빠는 이 언덕을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을까.
30년 넘게 저 작은 방에서 답답하지 않았을까.
꽉꽉 채운 수업 사이사이 목캔디를 녹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마지막 기말고사 시험지를 채점하는 연보랏빛 셔츠를 입은 아빠, 이 길쭉한 방 공기를 가슴 깊숙이 눌러 넣었다.
아빠는 요즘도 목캔디를 찾는다. 5살 재율이가 ‘할아버지는 입이 없어’, 할 정도로 말이 적은데도 어느 누구 하나 ‘목캔디는 왜’, 않고 말없이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