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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Jun 22. 2023

인도 대형 열차 사고에 얽힌 슬픈 뒷이야기들

인도 오디샤 발라소르에서 일어난 열차 사고의 뒷이야기들


[# 1] 참혹한 3중 추돌사고.. 도대체 왜 일어났나?


2023년 6월 2일(금) 인도 현지시각으로 오후 약 7시경 인도 북동부지역 오디샤 주의 발라소르(Balasore)라는 도시에서 여객열차 2대와 화물열차 1대가 3중 추돌하는 대형 열차사고가 일어났다. 이튿날, 날이 밝으면서 드러난 사고 현장의 처참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인도 정부의 집계에 따르면 무려 300명 가까이 목숨을 잃고 1,000명 가까이가 다쳤다.

2023년 6월 2일 오후 7시경 인도 북동부 오디샤주의 발라소르에서 철도사고가 발생했다.

워낙에 믿기지 않는 일들이 빈발하는 ‘어메이징 인디아’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규모의 대형 참사는 인도인들에게도 상당히 큰 충격이다. 사고 발생 직후부터 시작된 인도 내 주요 방송의 긴급 생방송은 이후에도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인도 중앙정부 철도부 장관이 사건 발생 몇 시간 만에 현장을 찾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현장을 찾아 부상자들을 위로했다. 그야말로 나라 전체를 충격에 빠트린 열차 사고였다.


사망자의 규모를 기준으로 했을 때 이번 열차 사고는 인도 철도 역사상 3번째로 큰 사고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끔찍했던 열차사고는 인도 북동부 비하르(인도에서 가장 빈곤한 州이다.)에서 1981년 6월 발생한 탈선사고이다. 정부의 공식 발표는 235명 사망이었지만 탈선한 후 강물로 빠진 7량의 객차에 타고 있던 승객(최소 800명에서 최대 2,000명으로 추산) 대부분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두 번째로 사망자가 많았던 사고는 1995년 8월 인도 중북부의 우타르 프라데시주에서 일어났다. 아시아 영양(Nilgai Antelope)과 충돌하고 선로 위에 멈춰있던 여객열차를 뒤따르던 또 다른 여객열차가 추돌하면서 약 400명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엄청난 사고는 왜 일어났을까? 인도 정부의 조사가 진행 중이기는 하지만 초기 조사에 따르면 선로 신호의 오작동으로 보인다. 정상적으로 선로를 주행하고 있던 코로만델 고속열차(Coromandel Express, 오른쪽 그림에서 빨간색 기차)가 무슨 이유에선지 우회선로(Loop line)로 진입했고 거기에 멈춰있던 화물열차와 충돌하면서 객차의 대부분이 탈선하였다. 탈선한 객차의 일부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또 다른 여객열차와 충돌하면서 사고 규모는 더 커졌다. 향후 사고조사의 초점은 왜 갑자기 선로신호가 오작동하면서 멀쩡하게 잘 달리던 열차를 우회선로로 진입시켰는지를 밝히는 데에 모아질 것이다. 인재였는지, 기계장치 결함이었는지, 아니면 유지 보수가 적절하지 못해서였는지 그것도 아니면 테러 공격이었는지... 그 이유가 밝혀져야 할 것이다.




[# 2] 인도의 철도가 아주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6월 3일(토)에 인도 남서부의 고아(Goa)와 마하라슈트라주의 뭄바이(Mumbai) 사이의 581km를 연결하는 반데 바라트(Vande Bharat, “Salute to India”라는 뜻으로 ‘인도 만세’ 쯤으로 해석될 수 있다) 19호 노선의 최초 운행을 축하하는 행사에 원격으로 참석하여 축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금요일 밤에 오디샤에서 열차 충돌사고가 발생하자 최초 운행을 기념하는 행사는 전격적으로 취소되었고, 모디 총리는 급히 사고현장을 방문하였다.


반데바라트 인도열차


반데 바라트 열차는 나렌드라 모디 정부가 2014년 출범한 이후 자부심이 뿜뿜하여 추진해 온 인도 철도 현대화 사업의 모델과도 같은 사업이다. 반데 바라트 사업은 2019년 뉴델리와 힌두교 성지인 바라나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759km의 제1호 노선이 운행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인도 각지에 흩어진 주요 도시를 잇는 총 18개의 노선이 운행을 시작했다. 평균속도는 110km에서 160km로서 선진국 입장에서 보면 특출 날 게 없는 철도차량이지만, 인도 입장에서는 자체 설계와 제작으로 완성된 인도 철도기술의 집합체라 할 수 있다. 총 23개의 노선이 금년 중에 완성될 예정이며, 19번째 노선(이번에 개통하려 했던 노선)은 인도 최고 휴양지인 고아와 인도는 물론 서남아의 경제중심지인 뭄바이를 연결하는 노선이다. 선진국의 철도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매끈한 디자인에 깔끔한 내부 인테리어까지 그야말로 인도가 자랑스러워할 만한 철도차량이라고 하겠다.


신규 노선 및 차량 도입뿐만 아니라 기존 노선 및 차량의 유지 보수에서도 인도 정부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 1961년 백만 킬로미터당 무려 5.5건에 달하던 열차 사고비율은 1970년대 2 건대로 감소했고, 1990년대에는 1건 이하로, 2009년에는 0.2건으로 떨어진 후 가장 최근 통계인 2022년 기준 0.03건으로 획기적으로 낮아졌다. 6만 4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의 철도망을 보유한 나라에서 2만 2천 개가 넘는 열차가 운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도의 철도 안전이 ‘아주 형편없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철도 현대화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전기철도 비율도 2021년 현재 전체 노선의 65% 이상을 전철화하면서 전통적인 철도 강국인 영국(38%)과 프랑스(60.3%)를 이미 뛰어넘었다. 집권당인 BJP와 인도 철도부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이후 철도의 전철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2만 킬로미터에 불과했던 전철화 구간이 5만 킬로미터로 대폭 늘어났다는 점을 빼놓지 않고 자랑하곤 한다. 현재 야당인 의회당(Congress Party)이 집권당이던 2012년 당시 철도부문에 대한 예산배정액이 불과 2천억 루피(약 3조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2023년 현재 예산은 무려 2조 4천억 루피로 거의 12배나 증가한 것 역시 집권당인 BJP가 힘주어 강조하는 내용이다.




[# 3] 인도 철도의 가감 없는 민낯을 보여준 오디샤 철도사고


반데 바라트 철도가 인도 철도의 미래 또는 인도 국민들이 외국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면, 오디샤 발라소르에서 일어난 충돌사고는 인도 철도의 현재 또는 인도 국민들이 애써 외면하고 싶어 하는 인도 철도의 민낯을 보여준 사고이다. 일단 사고 발생건수와 사망자 숫자를 이야기해 보자.

인도 철도사고의 사망자는 대부분 열차에서 추락하거나 열차에 치여서 사망했다.

인구가 약 4억 5천만 명에 달하는 EU 27개 회원국 전체를 통틀어서 1년 평균 열차사고로 약 600명에서 800명 내외가 사망한다. 열차에 치어서 사망하는 게 단연코 가장 큰 사망원인이다. EU 27개국보다 인구가 약 3배 많은 인도에서는 1년에 얼마나 많은 사망사고가 발생할까?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까지 매년 평균 2만 명이 넘는 사람이 꾸준하게 열차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10년간 열차사고 사망자가 26만 명에 이른다는 한숨 섞인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인도 철도 사고 사망자 추이. 매년 약 2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

사망 원인의 대부분은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열차에 치여서 사망하는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나타났다. 인구 1인당 철도사고 사망자 숫자로는 대략 100배 정도 차이가 나는 셈이니 실로 참담한 수준이다. 우리가 유튜브나 텔레비전에서 흔히 봤던 것처럼 문도 제대로 닫지 않고 운행하는 상상 초월의 안전 불감증에 콩나물시루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혼잡한 3등칸의 열악한 환경, 그리고 허술한 철도 인프라 관리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일어난 결과이다.


비효율적인 인사정책과 철도인력 관리로 인해 사고 위험성이 높아지기도 한다. 인도 기관사들의 경우 12시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기관사들의 피로 누적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조치이다. 그러나 인도 철도위원회(Railway Board)의 자체 조사에 따르면 인도 중부 지역을 담당하는 South East Central Railway line에서는 금년 3월에서 5월까지 12시간 이상 근무한 기관사들의 비율이 평균 35%를 훌쩍 넘어섰다. 몇몇 경우에는 화장실에도 가지 못한 채 연속 9시간을 근무하는 경우도 보고되었다. 시속 100km가 넘는 고속의 열차를 쉬지 않고 12시간 넘게 운전하는 살인적인 근무환경을 견뎌내다 보니 피로가 누적되고 사고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인 것이다.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취임한 이후로 철도분야에 배정된 예산액을 다 합치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하지만 이 돈 중에 기존의 철도를 보수하고 안전을 강화하는 분야에는 도대체 얼마나 되는 돈이 어느 정도나 효율적으로 쓰인 것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인도 정부가 신규 차량 도입과 같이 블링블링한 사업에만 신경 쓴 나머지 130년이 넘어가는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노후화된 철도 인프라를 유지보수하는 데에 충분한 돈을 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우선순위를 잘못 잡고 있다는 지적이다.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승객과 기차도 점점 증가하니 찬찬히 철도를 점검하고 유지보수할 여유 없이 계속 열차를 증편하면서 안전이라는 중요한 문제가 뒷전으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도정부는 이러한 전문가들 및 외신의 보도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 4] 철도 사고 속에 숨은 슬픈 사회 현실


마지막으로 이번 철도 사고에는 슬픈 사회현실이 깊숙하게 숨어 있다. 바로 코로만델 고속열차가 가지고 있는 슬픈 뒷이야기 때문이다. 인도 북동부의 경제중심지인 콜카타와 남부의 경제중심지인 첸나이를 잇는 코로만델 고속열차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병원 고속열차(Hospital Express)’라는 슬픈 별명으로 불리곤 했다. 콜카타와 첸나이 중간에 있는 벵골과 오디샤를 포함한 농촌 지역은 인도에서도 손꼽히는 빈곤 지역이다. 의료 환경 또한 매우 낙후되어 있었기 때문에 코로만델 고속열차는 이들 농촌 지역에 사는 환자들이 대도시의 큰 병원으로 가기 위해 주로 이용하던 열차였다. 이 지역에 살던 농촌 인구가 제대로 된 의료기관을 방문이나 해보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동안 허리가 휠 것 같은 중노동에 시달리다가 죽을병에 걸려서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 기차에 올라탔을 것이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경우 병원에 갈 때는 환자와 보호자 이렇게 두 사람이 갔겠지만 돌아올 때는 보호자 한 명만 슬픔에 싸여 돌아왔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회한과 슬픔이 서린 열차인 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열차를 타고 슬픔에 싸여 돌아온 아버지 세대는 이제는 은퇴해서 머리가 희끗희끗해졌다. 이제는 그 아버지 세대의 아들들이 그 열차에 오르고 있다. 몸이 아파서가 아니다. 시골에 일자리가 너무 없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이제는 코로만델 고속열차의 별명도 ‘이주노동자 열차(Migrant Express)’로 바뀌었다. 매일 아침 인접 대도시로 출근해서 허드렛일을 한 후 저녁때 자기 고향으로 퇴근하는 젊은 농촌 젊은이들이 코로만델 고속열차의 3등칸을 꽉꽉 채우고 있다. 30년이 지난 현재의 모습이다.


2023년 6월 2일 밤에도 인근 대도시에서 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촌 젊은이들이 코로만델 고속열차의 3등칸을 채우고 있었다. 불운은 가난한 사람들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했던가… 사고가 일어난 날 코로만델 고속열차의 앞부분에는 하필이면 3등칸이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정차되어 있던 화물열차를 130km의 속도로 들이받은 기차는 종이장처럼 구겨져서 탈선했고, 사망자의 대부분은 열차의 앞에 배치되어 있던 3등칸에서 발생했다. 몇몇 농촌지역에서는 한동네 젊은이의 절반 가량이 한날한시에 떼죽음을 당했고 마을 전체가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일자리가 없어서 일자리를 찾아서 떠난 생때같은 아들과 손자들의 목숨이 그렇게 허망하게 사그라든 것이다. 시골에 제대로 된 일자리만 있었다면 죽지 않았을 귀한 젊은 목숨들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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