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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Feb 10. 2024

점성술이 IT 신기술을 만났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인도 대법원 가라사대, "점성술도 과학이니라..."

오늘은 설날(음력 설)이다. 젊은 세대들은 그렇지 않지만 나이 제법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설날을 맞아 한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토정비결을 보기도 한다. 태어난 연, 월, 시를 기반으로 60개의 갑자(甲子)를 계산하고 한 해를 예측해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토정비결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심심풀이로 한번 들여다보는 수준이랄까? 무료로 토정비결을 봐주는 프로그램은 이미 수십년전에 개발되었고 이젠 엔터키 하나만 치면 재미로 자신의 운수를 점쳐볼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인도의 경우는 어떠할까? 우리의 토정비결과 비슷한 것은 혹시 없을까? 그리고 인도인들은 자신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얼마나 진지하게 이러한 예언을 믿고 받아들일까? 그 이야기를 해보자.


[# 1] 점성술과 스타트업이 만나면...


현대인들은 해결해야할 문제가 생길때 가장 먼저 핸드폰을 켠다. 길을 찾아갈때도, 배가 고플때에도, 물건을 고르거나 살때에도 현대인들은 가장 먼저 핸드폰을 켠다. 그러면 핸드폰 화면속 애플리케이션들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앱들은 당면한 지금의 문제만을 해결해줄 뿐이다.


좀더 먼 미래의 문제들이 걱정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길흉화복을 점치고 싶다면, 불운을 피해가고 싶다면 무슨 도움을 어디에서 받아야 하나? 당신이 만약 인도인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하고 신통한 점성술사를 연결해주는 앱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우버와 카카오택시가 승객과 기사를 연결해주듯 미래에 대한 답을 원하는 고객과 점성술사를 연결해주는 점성술계의 '카카오택시'인 점성술 앱이 인도에서 성업중이다.


앱의 종류도 매우 다양해서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AstroYogi, AstroBuddy, GaneshaSpeaks, AppsFor Bharat, Astrosage, InstraAstro, click Astro, Bodhi, AstroTalk 등등.... 이들 앱들은 대부분 인도식 점성술(Vedic Astrology)에 근거한 상담을 주로 취급하면서 타로카드, 손금 읽기, 관상 등 다양한 '연관 상품'도 취급중이다. 손가락 터치 하나로 앱에 접근할 수 있고, 태어난 일, 월, 시 등 몇가지 정보만 입력하면 자신의 미래를 점칠 수 있다는 간편함 덕분에 이들 온라인 점성술 업체들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점성술 업체들은 빠르면 2010년대 중반 또는 그 이전에 창업되었지만 코로나 시기를 전후하여 폭발적인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십만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수천명이 사망하는 믿기지 않는 현실 속에서 미래를 두려워하고 걱정하던 인도인들에게는 점성술 앱이 마음을 달래주는 피난처였을 것이다.

AstroTalk의 첫화면. 마음에 드는 점성술사를 골라서 면담할 수 있다.


이 중에서 시장점유율이 가장 높아 사실상 인도 점성술 앱 업체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는 AstroTalk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자. 전직 투자은행 직원이었던 푸니트 굽타(Puneet Gupta)에 의해 2017년 창업된 AstroTalk는 점성술 앱 마켓의 절대강자이다. 2023년 12월 현재 총 회원수가 약 3,000만명인데 AstroTalk를 매일 사용하는 충성고객의 숫자는 40만명에 달한다. 처음에는 점성술사와 고객을 연결하여 (화상이 아닌) 음성을 통한 상담 서비스를 제공했었지만, 이제는 인도사람들에게 익숙한 왓츠앱(WhatsApp)과 거의 유사한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바탕으로 화상 상담까지도 중개하고 있다. 약 15,000명 가량의 점성술사와 예언가를 보유한 AstroTalk의 성장세는 눈부시다. 2023년 3월말 기준 28억 2천만루피(약 423억원)의 매출과 2억 7천만 루피(약 4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2022년 3월에 각각 11억 5천만 루피의 매출과 7천만루피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다.


2024년 3월로 종료되는 2024년 회계연도에는 60억 루피(약 900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수년 내에 200억 루피(3,0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 후 기업공개(IPO)에도 나서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밝혔다. AstroTalk의 성공비결은 여러가지이다. 앞서 설명한 대로 코로나 시기에 점성술에 의지하고자 하는 인도 인구가 늘어난 것도 요인중 하나이다. 여기에 더해서 AstroTalk는 엄청나게 접수되는 점성술사들의 이력서를 꼼꼼히 살펴본 후 최대 7번에 걸쳐 다층적인 면접을 실시하여 전체 지원자중 5% 내외를 선발하는 깐깐한 점성술사 선발 절차를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점성술사에 대한 엄격한 품질관리가 성공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 2] 점성술 앱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보다 근본적인 배경은 뭘까?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 이외에 좀더 근본적인 이유는 없을 것일까? 대략 두가지 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 점성술사들이 사실상 심리상담의 역할을 상당부분 수행하고 있는 인도 사회의 특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도에서는 아직도 우울증이니, 심리상담이니 하는 것들이 터부시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생활에서 큰 스트레스를 받은 인도인들은 제대로된 정신과 상담을 받기 보다는 점성술사와 화상채팅을 하며 자신의 불안감과 우울감을 힘겹게 달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로, 인도 사회 전체가 갖는 종교적이고 영적인 분위기 또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아침에 출근하는 인도의 직장인 중에는 이마에 붉은 점(빈디라고 부름)을 찍은채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중요한 힌두교 축일을 전후하여 아침 일찍 사원에 가서 공물을 바치고 축복의 의미로 빈디를 찍고 온 것이다. 이처럼 종교가 일상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스며들여 있는 것이 인도의 특징이다.

이마에 빈디를 찍은 인도인의 모습


사정이 이렇다 보니 힌두교도에게 점성술은 우리 한국인이 심심풀이로 보는 운세 이상의 큰 의미를 갖는다. 인생의 방향을 인도하는 삶의 방식이자 하루하루의 일상을 결정해주는 생활철학이다. 힌두교도는 자녀를 결혼시키면서 백이면 백 점성술사를 찾아 길일을 점지 받아 결혼식을 진행한다. 이사를 가거나, 학교에 진학할때, 직장에 취업하거나 사직하는 등 인생의 중대사를 결정할 때에도 점성술사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다. 심지어는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가족간의 불화가 생겼을 때에도 의사나 전문상담가를 찾기 보다는 점성술사를 찾아 미래를 물어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야말로 인도인들의 일상을 곁에서 지켜주는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관련 산업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


최근 발표된 시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의 '종교 및 영성(religion and spirituality) 시장'의 규모가 무려 585억 달러(약 70조원)에 달하는데, 2032년까지 연평균 10%의 높은 성장이 예상된다고 한다. '종교 및 영성' 산업에는 종교 사원 및 신상 건립, 각종 제사(pooja)에 사용되는 물품의 생산과 납품, 점성술사를 포함한 예언자들이 제공하는 상담서비스, 종교 성지를 방문하기 위한 성지순례 여행산업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인도 전체 국내 여행객 10명중 6명은 휴양이나 오락을 위한 여행이 아닌 성지순례 목적의 여행을 떠나고 있고, 매년 꼬박꼬박 100억달러(약 12조원)에 달하는 돈을 점성술사나 각종 예언자들에게 지불하거나 종교 사원에 봉헌하는 사회분위기가 이러한 점성술 앱의 발전을 가능하게 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영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손에 쏙 들어오는 핸드폰 안으로 점성술 앱이 들어오자 그야말로 호랑이 등에 날개가 생긴 셈이다. 점성술이 온라인 세계로 들어오면서 점성술에 관심이 없던 젊은 세대들이 새롭게 점성술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들 젊은 세대가 종교 및 영성시장의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 3] 인도 대법원 가라사대, "점성술도 과학이니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분 중에 "점성술과 같은 '사이비'가 저렇게까지 사회에 만연하면 어쩌나?", "게다가 젊은 청년들까지 이런 사이비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문제 아닌가?" 또는 "정부에서 이런 사이비를 규제해야 하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신 분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 두 가지 에피소드를 제시하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에피소드 1 : 2001년을 전후하여 약 20여개 인도 대학에서 점성술을 정식 전공과목으로 채택하여 학사,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수여하기 시작했다. 저명한 과학자와 대학교수들이 점성술과 같은 사이비과학이 대학 수업을 통해 교육되어서는 안된다고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2004년 인도 대법원은 '점성술을 대학내 과학과목으로 분류한 대학교육위원회의 결정은 유효하다'라고 판결내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판결은 대학내에서 점성술을 과학 과목으로 인정하느냐 인정할 수 없느냐에 대한 판결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도 사회 전체에게 점성술을 과학으로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 말았다. 결국 인도에서는 점성술이 과학으로 인정받았고 그 결정은 과학자도 아니고 대학교수도 아닌 법원의 판사들이 내렸다. 2011년에도 비슷한 판결이 뭄바이 고등법원에서 나왔다. 인도 중앙정부는 점성술이 '신뢰할만한 과학'이라는 진술서까지 법정에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인인지... 아니면 특정 종교의 성직자인지...

에피소드 2 : 2024년 1월 22일,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인도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아요디아 시에 건립되는 '람 만디르' 사원의 제 1단계 완공식에 참석했다. 힌두교 신화에 따르면 아요디아는 힌두교의 주요 신중 하나인 라마신이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16세기 인도 북부에 세워진 무굴제국이 당초 아요디아에 있던 힌두교 사원을 허물고는 그 곳에 이슬람 사원을 세우면서 종교 분쟁의 불씨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1992년 힌두교 과격단체가 아요디아에 세워져 있던 이슬람 사원을 습격하여 파괴한 후 힌두교도와 무슬림의 충돌이 발생하면서 무슬림 2,000명 가량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2024년 1월,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종교 분쟁지역에 버젓이 힌두교 사원이 세워진 것이다. 모디 총리는 얼핏 보면 황제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힌두교 종교지도자 같은 모습으로 개관식에 참석했다. 공중에서는 힌두교를 상징하는 주황색 종이꽃이 뿌려졌고, 임시공휴일이 선포되었다. 야당과 시민사회에서는 '종교를 (24년 4월로 다가온) 총선용 전략으로 이용했다'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점성술이 지루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에서 '과학'이라고 당당히 인정받는 코메디보다도 더 코메디 같은 일이 벌어지고, 헌법에 버젓이 '인도는 세속국가'라는 명문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 사원 기공식에 참석한 총리는 '절반은 황제, 절반은 힌두교 지도자' 같은 모습으로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TV에 나타나는 나라가 인도이다.  어느 순간에는 달의 남극에 우주선을 보내는 놀라운 과학기술을 선보였다가 어느 순간에는 점성술과 같은 사이비과학을 대법원이 나서서 과학이라고 옹호하는 퇴행적 모습을 보이는 나라... 이래저래 인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나라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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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796629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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