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 인도 노동자의 눈물겨운 취업 유랑기
올해 9월초 우리나라 중소벤처기업부에서 흥미로운 기사 하나를 발표했다. 올해 2월부터 8월까지 약 7개월동안 중기부에서 인도인 개발자 채용사업을 시행했는데, 총 324개 중소/벤처기업이 이 사업에 참여 신청을 했고 이중 30개 기업이 103명의 인도인 개발자를 최종적으로 채용했다는 기사였다. 인공지능분야, 모바일 분야를 포함하여 다양한 소프트웨어 분야에 일할 사람들이 채용되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제법 잘 알려진 ‘인도공과대학(IIT)’을 졸업한 인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 중에서 인도인들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MIT와 어깨를 견준다’고 자랑을 해대는 IIT 졸업생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취업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조금 의외라고 느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왜 인도 최고명문 공대를 졸업한 사람이 우리나라 중소기업에 취업한 것일까? 고등교육을 받은 인도 청년층의 눈물겨운 취업 유랑기를 시작하려면 인도 청년층의 실업 문제를 짚고 먼저 넘어가야 한다.
[# 1] 인도 청년 3명중 무려 2명이 실업상태…
유엔의 세계인구예측(World Population Prospects)의 추산에 따르면 인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만 25세 이하이다. 반면, 중국의 경우 그 비율이 대략 3명중 1명, 독일의 경우 10명중 3명, 일본의 경우 4명중 1명이다. 게다가 35세 미만 인구로 대상을 확대하면 인도 전체 인구 3명중 2명이 해당되니 인도는 문자 그대로 ‘젊은 나라’이다.
경제성장 도상에 있는 나라들은 대개의 경우 노동가능한 청년 인구가 노년 인구보다 그 숫자가 많다.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더 많은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이에 따라 가계소득이 커지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선순환을 인구배당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경제 성장을 경험한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러한 효과를 누렸다.
인도 노동 시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가들은 ‘인도는 젊은 나라’라는 피상적 분석에 매몰되어 인도 청년이 인도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앵무새처럼 외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인구배당효과가 ‘당연히’ 인도에서도 일어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매년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약 1,000만명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도 1,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라고 쓰지만 실제로는 ‘실업자’)가 과연 축복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인도 노동시장을 약간 단순화해서 이해하자면 다음과 같다. 일단 14억 인구 중 대략 8억 5천만명 가량이 생산가능인구(15세-59세)에 해당한다. 이중에서 약 절반 가량만이 경제활동에 종사하고 있다. (2024년 6월 기준 인도의 경제활동참여율 : 0.8%). 통계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약간 달라지지만 경제활동종사인구 중 대략 절반 가량은 농업부문에 종사하고 있다. 2차산업이라 할 수 있는 제조업(11.6%)과 건설업(12.6%) 종사자는 4명중 한명이 채 안된다.
그나마 제조업 일자리가 제대로 된 정규직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을텐데, 제조업 일자리는 2023년 기준 3,565만개 가량으로 코로나를 전후하여 크게 줄어든 이후 아직도 2017년 수준(5,131만개)을 한참 밑돌고 있다. 1년에 1,000만명이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인도의 현실을 비춰볼 때 너무나도 빈약한 수준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노동시장 신규 진입자 대부분이 불안정한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그렇지 않아도 생산성이 낮은 농사일에 울며 겨자먹기로 참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024년 3월 세계노동기구(ILO)는 인도 노동시장을 분석한 300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2000
년 이후 약 20년간 인도 노동시장의 변화상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이 보고서에는 인도의 낮은 노동참여율,
일자리 부족, 남녀 임금격차, 도농간 임금격차 등등 이미 알려져 있던 인도 노동시장에 대한 정보도 많았지만 가장 흥미로운 내용들은 인도 청년층의 고용 상황을 다룬 제4장(Youth Employment)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 두어 가지만 추려 보자면 우선 인도 전체 실업자 10명중 8명은 청년층이다. 한 마디로 일자리가 없어서 헤매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청년층이라는 이야기이다.
둘째로 지난 20년간 청년층 일자리 문제는 크게 악화되었다. 2000년에 약 5.7%에 불과하던 청년실업률은 코로나 직전인 2019년에 무려 17.5%까지 뛰어 올랐다가 2022년에 12.4%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20년 전에 비해서 두배 이상 높다. 인도 청년들은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고 있는데, 인도 경제가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기는커녕 오히려 제조업 일자리 수는 감소하는 등 어려움만 커지고 있다는 것이 국제기구의 보고서로 새삼 확인된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낮은 농업부문 종사자가 자연스럽게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높은 2차산업, 그 중에서도 특히 제조업 분야로 이동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제조업 기반이 부족한 인도에서는 서남아의 이웃국가와의 비교해봐도 그러한 이동이 매우 느리게 일어났다. 이러한 느린 변화가 청년 실업 증가를 부채질한 것이다.
[# 2] 학력이 높을수록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구요?
일자리 이야기를 했으니 이제는 노동시장 참여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일단, 인도 노동자들은 얼마나 높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을까? 초중고에 약 2억 5천만명의 학생이 재학중이고, 대학교 학부 이상 교육기관에 4천만명 이상이 재학중인 인도에서는 경쟁력 있는 노동자가 배출되고 있을까? 인도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언론에 떠돌아다니는 ‘인도는 천재들의 나라’라는 둥, ‘공학이 발달한 나라’라는 둥의 말에 현혹되곤 한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앞서 언급한 ILO의 보고서는 인도 노동자가 보유한 경쟁력의 수준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2021년 조사기준으로 인도 노동자 5명중 2명만 문서 내에서 복사 후 붙여넣기(copy and paste)를 하거나 하드디스크에 있는 파일을 복사해서 이동할 줄 알고 있다. 4명중 3명 가까이는 붙임 화일을 붙여서 이메일을 송부할 줄 모르고, 10명중 9명은 파워포인트와 같은 프레젠테이션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발표자료를 만들 줄 몰랐으며, 엑셀과 같은 스프레디쉬트 프로그램에서 간단한 사칙연산 방정식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ICT 기술 수준에 있어서 도농간의 격차, 카스트 계급간 격차가 크다는 세부 분석도 추가로 곁들여졌다.
한마디로 도시에 거주하면서 대학교육 근처라도 가본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다수 인도 노동자들의 경쟁력이 형편없다는 뜻이다. 초중고 학생의 절반이 재학중인 공립학교의 부실한 교육 환경, 책임감 없는 교사들의 행태, 최신 기술이나 정보 보다는 힌두교 경전이나 외우게 시키는 비실용적인 교과과정 등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자, 이제 인도 노동시장에서 가장 이해 안되는 마지막 이야기를 해보자. 바로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실업자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일단, 인도에서 문맹자가 실업자로 전락할 확률은 약 3.4% 정도이다. 하지만, 중학교 이상의 교육을 받았다면 실업률은 6배 정도 올라가고(18.4%), 대학교육 이상을 받았다면 실업률은 9배가 증가한다(29.1%).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 고등교육을 받는다는 ‘상식적인’ 생각은 그러한 고학력자를 채용해줄 질 좋은 일자리가 풍부하게 있을 때에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글자나 숫자를 쓰거나 읽지 못해도 취직할 수 있는 싸구려 일용직 일자리는 널렸지만, 대학교나 대학원 졸업생을 채용해줄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면 졸업 후 3명중 1명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도 최고의 기술교육기관이라는 인도공과대학의 상황은 어떨까? 인도 전역에 23개의 캠퍼스를 두고 있는 IIT는 매년 인도 전체에서 딱 17,740명을 신입생으로 뽑고 있다. IIT 입학시험인 JEE(Joint Entrance Exam) 응시자가 연평균 150만명에 달하니 1.2%라는 극악의 합격률을 자랑한다. 워낙에 ‘저 세상 수준의’ 경쟁률이다 보니 우리나라 돈으로 수백만원이 넘는 엄청난 학원비를 부담해가며 사설교육기관에서 과외수업을 받는 학생들 숫자도 수십만명에 이른다. 이렇게 엄청난 돈과 시간을 쏟아붓고 1.2%의 바늘구멍을 통과한 학생들은 졸업후 주로 얼마나 많은 연봉을 받을까?
IIT 졸업시즌인 늦봄이 되면 최우등 졸업생이 우리나라 돈으로 억대 연봉을 받고 유수의 글로벌 채용되었다는 입소문이 돌곤 한다. 하지만, 1만 7천명에 달하는 입학생이 다 그런 대우를 받는 건 아니다. 토목공학이나 화학공학의 경우 연봉이 100만루피(우리 돈으로 1,500만원) 수준인 경우도 허다하고, 가장 인기있는 전공인 컴퓨터 공학에서도 평균 연봉은 300만루피(4,500만원) 정도이다. 물론, 1인당 GDP가 고작 2,500달러 수준인 나라에서 연봉이 수천만원이면 엄청난 고액 연봉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고액연봉 열차에 올라타지 보지도 못하고 실업자 신세가 되는 IIT 졸업자도 적지 않다.
특히, 2022년 이후 나타난 포스트 코로나 채용 활황이 사라지면서 2024년 IIT 졸업생들은 그야말로 취업 한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IIT 중에서도 Top3 안에 들어가는 IIT Bombay 학생중 약 36%가 졸업을 목전에 두고도 직장을 잡지 못했다. 인도 전국에 소재한 다른 IIT까지 대상을 넓히면 그 비율은 38%로 올라간다. 반면, 2022년과 2023년에는 직장을 못 구한 학생 비율이 각각 10% 후반대와 20% 초반대였던 것으로 추산된다.이렇다 보니 고작 수십만 루피에 불과한 연봉 제안도 제법 있었다고 전해진다.
인도 노동시장 특히, 고학력자 노동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은 인도에 진출한 한국기업에게 최상위권 IIT를 졸업한 최상위권 졸업자보다는 적당한 IIT를 적당한 등수로 졸업한 ‘무난한 졸업자’들을 고용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때로는 IIT가 아니라 지방정부에서 세운 지방공대 졸업자를 채용하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억대 연봉을 받으면서 언제라도 더 좋은 이직 제안이 있으면 다른 기업으로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는 ‘1군 선수’를 뽑기 보다는 가성비가 나쁘지 않은 ‘2군 선수’가 더 낫다는 논리이다.
올해 9월초, 우리나라 모 일간지에는 우리나라 중소기업과 계약하고 우리나라에 입국한 IIT 졸업생의 사진과 인터뷰가 실렸다. 그 기사를 무심히 보고 흘린 독자들은 못 느꼈겠지만, 그 인터뷰 기사를 찬찬히 읽으면서 나는 행간에 숨어있는 많은 것들이 보였다. 1.2%라는 살인적인 합격률을 뚫기 위해 그와 그의 가족이 견뎌내야만 했던 무시무시한 입시 스트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세계 유수의 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며 겪었을 좌절, 낯설고 물설은 한국의 작은 중소기업에 취업하며 느꼈을 아쉬움과 설렘 등등 말이다. 아무쪼록 한국을 택한 그 인도 노동자에게도, 그리고 그를 선택한 한국기업에게도 서로 윈윈이 되는 만남이 되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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