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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비와 호지의 아빠 Oct 21. 2024

노벨상을 휩쓴 인도인...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 물리학상, 경제학상을 받은 나라는 인도

올해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를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발표했다. 한국인 최초이자 아시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노벨상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상 분야에서도 남성, 서양인, 영어 사용 인구가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그녀가 문학상을 받으면서 120명에 육박하는 문학상 수상자 중 아시아 출신 수상자는 이제 9명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람은 누구일까? 


[# 1] 아시아 최초 노벨문학상, 물리학상, 경제학상 수상자는 인도인


1913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인도 문학의 거장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는 노벨상 전 분야를 통틀어 최초의 아시아인이다. 저명한 힌두교 종교철학자였던 데벤드라나트 타고르(Debendranath Tagore)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에 유학했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잠시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는 법률 공부를 일찌감치 때려치우고는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그가 지은 《기탄잘리(Song Offerings, 신에게 바치는 노래)》는 원래 타고르의 모국어였던 벵갈어로 출간되었다가 이후 영어로 번역되어 서양에 알려지게 되었다. 영문판 출간 당시 영국에서 이미 유명한 시인이었던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가 그의 시에 크게 감명받아 책에 서문을 써주기도 했다. 예이츠의 ‘버프’를 제대로 받은 덕에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순식간에 유명 시인의 대열에 합류했다. 지금 인도의 국가인 '자나 가나 마나(Jana Gana Mana, 국민의 의지)'를 작사한 사람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이며, 간디에게 마하트마('위대한 영혼'이라는 뜻)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도 그였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지 17년이 지난 1930년, 인도의 물리학자인 찬드라세카라 라만(Chandrasekhara Venkata Raman)이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빛의 파장을 변화시키는 산란 현상을 발견한 그는 이 현상을 ‘라만 효과’라고 명명했는데 이후 과학은 물론 의학 분야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19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문학상과 물리학상뿐만 아니라 노벨 경제학상을 최초로 받은 아시아 사람 역시 인도인이었다. 1998년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후생경제학과 빈곤에 대한 연구로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는 1933년 인도 북동부의 벵골 지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40년대 중반, 이 지역을 덮친 대기근을 직접 경험하고 큰 충격을 받았고 이러한 경험은 그가 평생 빈곤과 불평등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1999년 그는 자신이 저술한 《자유로서의 발전》이라는 책에서 빈곤을 단순히 배고픔과 결핍이 아닌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가 박탈당한 상태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경제발전은 시민이 누려야 할 자유를 확대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해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아마티아’는 사실 사람의 이름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다. 그가 이렇게 독특한 이름을 갖게 된 데에는 자신보다 85년 먼저 노벨상을 받은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재미있는 인연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미티아 센의 할머니는 유명한 산스크리트어 학자이자 타고르의 제자였다. 그녀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자기 손자 이름을 지어달라고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에게 부탁했는데 타고르는 ‘불멸’이라는 뜻의 벵골어인 ‘아마티아’라는 단어를 추천해 주었다.


1998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아 센




[# 2] 유명 인사에게 가려진 인도 출신 수상자들


노벨경제학상 이야기가 나온 김에 잊지 말고 언급해야 할 부부 경제학자가 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아비지트 바네르지(Abhijit Banerjee), 에스테르 뒤플로(Esther Duflo) 그리고 마이클 크레머(Michael Kremer) 이렇게 총 세 명이었다. 이들은 빈곤 퇴치를 위한 연구를 혁신해 개발 경제학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로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당시 대부분의 언론은 에스테르 뒤플로에게 관심을 집중했다. 2009년의 엘리노 오스트롬(Elinor Ostrom)에 이어 두 번째로 노벨상을 받은 여성 경제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케네스 애로우(Kenneth Joseph Arrow, 1972년에 만 51세로 경제학상 수상)보다 젊은 만 46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였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이나 의학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무작위 통제실험(Randomized Controlled Test)’이라는 연구 방법을 사회과학인 경제학에 도입하여 빈곤 퇴치를 위한 실용적인 방법을 도출한 수상자들의 연구 또한 새롭게 주목받았다.


그녀의 엄청난 유명세에 가려져 있었지만, 공동 수상자였던 아비지트 바네르지 역시 개발 경제학 분야에서 매우 유명한 학자이다. 벵골 출신 브라만 카스트 집안의 후손인 그는 마하라슈트라주의 뭄바이에서 태어났으며 자와할랄 네루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를 거친 수재였다. 노벨상 수상 당시 아내인 에스테르 뒤플로와 함께 메사츠세츠공과대학(MIT)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빈곤 퇴치와 경제 개발이라는 주제에 집중해 수십 년간 연구 성과를 쌓아온 것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미국 국적자이지만 노벨상 수상 당시 인도에서도 대대적으로 그의 수상을 보도하며 축하를 전했다.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에스테르 뒤플로와 아비지트 바네르지 부부


2014년에는 아동 노동과 아동 성매매에 대한 반대 운동을 꾸준하게 벌여온 카일라시 사티야티(Kailash Satyarthi)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100개가 넘는 나라를 방문해 8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직접 걸으면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동 착취와 성 착취에 반대하자고 호소했다. 그 결과 세계노동기구(ILO)는 아동에 대한 노동 착취와 아동 매매에 반대하는 헌장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는 만 15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노벨상을 받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와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면서 언론으로부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 3] 인도로 이주해 노벨상을 받은 사람들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찬드라세카라 라만, 아마티아 센 그리고 카일라시 사티야티처럼 인도에서 태어난 토종 인도인이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있고, 아비지트 바네르지처럼 해외로 이주해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이후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있지만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인도에서 오래 거주하다가 노벨상을 받은 경우도 두 건이나 있다. 그리고 이 두 건이 우연히 모두 평화상 부문이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


우선,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테레사 수녀가 있다. 현재 북마케도니아 수도인 스코페에 거주하던 알바니아 가정에서 1910년 태어난 그녀는 1차 세계 대전의 혼란 속에서 정치인이었던 아버지가 반대파에게 피살되는 비극을 겪었다. 18세의 나이에 수녀가 되었고 얼마 되지 않아 인도 콜카타로 이주한 후 빈자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기로 결심했다. 


150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키에 가진 것이라고는 묵주 하나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유산은 매우 컸다. 87세의 나이로 선종할 때까지 수만 명의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직접 돌보았으며 빈곤층을 돕기 위한 600여 개의 자선 단체 설립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 또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직후에는 자신의 축하연에 쓰일 돈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고 요청한 것 또한 유명한 이야기이다.


제14대 달라이 라마가 2022년 9월 열린 법회에 참석한 모습


그로부터 10년 후 제14대 달라이 라마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중국 정부의 박해를 피해 인도에 정착한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이자 티베트 불교의 수장이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가 ‘상호 존중과 관용에 입각해 티베트인들의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보전할 수 있는 평화적 수단을 옹호해 온 점’을 높이 평가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박해를 피해 1959년부터 인도 북부의 다람살라에 정착한 티베트인들을 보호하고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던 인도 입장에서도 자랑스럽고 뿌듯한 순간이었다. 전체주의 국가인 중국의 핍박을 받는 소수집단을 보살피는 민주국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아시아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시인 라빈드라나트 타고르)는 물론, 아시아인 최초로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찬드라세카라 라만) 그리고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사람(아마티아 센) 모두 인도인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기초학문에 대한 인도 정부의 투자가 지지부진하면서 토종 인도인이 인도에서의 연구를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은 사례는 없었고 앞으로도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리라는 것이 공통된 전망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떠나서 미국이나 영국에 정착한 인도인의 후손들이 꾸준하게 노벨상을 받으면서 이래저래 노벨상과 관련 있는 인도인 및 인도인 후손의 숫자는 10명을 훌쩍 넘어섰다. 또한, 세계 유수의 고등교육기관에 촘촘히 포진하고 있는 인도인 후손들이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향후에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 또한 절대 작지 않다. 앞으로 인도의 국력이 커가고 인도 후손들의 활약이 늘어나면서 인도인 또는 인도 후손들이 받을 노벨상 수상자 숫자는 어떻게 변모할지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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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1: ‘무작위 통제실험’이라는 용어가 약간 낯설긴 한데, 쉽게 말하자면 무작위로 수백 명 내지는 수천 명의 실험 대상자를 선정하여 각각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양분한 후 특정한 처리(treatment)가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살펴보는 실험방법이다. 1997년 케냐에서 이루어진 에드워드 미구엘 교수와 마이클 크레머 교수의 연구는 무작위 통제실험 중 가장 유명한 실험인데, 케냐와 같은 빈곤국에서 초등학교 학생의 취학률을 제고할 방법은 뭐가 있을지를 다양하게 실험했다. 다른 모든 조건은 동일한 상태에서 교사의 월급을 인상하거나, 교보재를 개선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실험군과 대조군에서 큰 차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뜻밖에도 구충제를 주기적으로 먹인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 사이에서는 등교 일수가 현격히 차이가 났다. 결국, 빈곤국에서 흔히 나타나는 각종 기생충이 성장기 학생들을 허약하게 만들면서 이들이 초등학교에 등교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프리카와 같은 빈곤국에서는 학생들의 교육성과를 높이기 위해 기본적인 공중 보건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준 연구 결과였으며, 이 연구의 방법론과 교훈은 그 이후로 개발 경제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계량경제학 학술지인 Econometrica(2003년 12월)에 게재된 Edward Miguel과 Michael Kremer의 논문 ‘Worms: Identifying Impacts on Education and Health in the Presence of Treatment Externalities’은 그 이후 무려 3,100회가 넘게 인용되었다.


사족 2: 1997년 파키스탄 북부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의 집안에서 태어난 말랄라는 10대 초반부터 여성 교육에 대한 의견을 공개적으로 피력하면서 탈레반 세력의 목표물이 되었다. 2012년 10월 9일 스쿨버스에 난입한 탈레반 무장세력은 버스에 올라타서 "여기서 누가 말랄라냐?"라고 따져 물었고, “대답하지 않으면 모든 학생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학우들의 안위를 염려한 말랄라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무장세력은 그녀의 머리에 총격을 가했다. 총탄이 두개골을 뚫고 척추까지 이르렀지만, 기적적으로 치명상을 피한 그녀는 곧바로 영국으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았고 목숨을 건졌다. 그 이후로도 그녀는 이슬람 국가에서의 여성 교육에 대한 캠페인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탈레반 세력의 살해 위협으로 인해 파키스탄으로는 귀국하지 못하고 영국에 체류하고 있다.


* 이글은 일부 편집을 거쳐 딴지일보에도 게재되었습니다.

https://www.ddanzi.com/ddanziNews/82211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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