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내가 코를 찔렀다. 낯선 동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강아지와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인도 위에는 은행나무 열매가 떨어져 있었다. 점점이 떨어진 노란 알맹이 탓에 발을 내딛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밟히고 으깨져 산산이 흩어진 열매의 겉껍질로부터 악취가 흘러나왔다. 아니, 벌써 은행이 떨어질 때가 된 건가. 날짜를 헤아리는 순간, 아뿔싸, 강아지는 이미 열매 파편의 일부를 밟고 있었다. 서둘러 강아지를 들어 안고 길을 지나갔다. 고약한 냄새는 여러 번 씻겨도 꽤 오랫동안 강아지 발에 머물러 있을 텐데 한숨이 나왔다.
은행 열매는 9월 말부터 10월 초에 가장 많이 떨어진다. 추석과 비슷한 시기라 어렸을 땐 시골 할아버지 댁 앞마당에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열매를 수확하곤 했다. 다 익어 떨어진 것만 주워도 양이 꽤 많았다. 이를 줍는 건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 사촌들의 몫이었다. 어린 나이라 싫을 법도 한데, 함께 한다는 것이 즐거웠는지 우리는 기꺼이 주워 모으려고 했다. 맨손으로는 하루 종일 고린내에 시달릴 수 있기에 일회용 비닐장갑, 목장갑을 덧 끼웠다. 우리가 바구니 한가득 주워가면, 어른들은 포대에 담아 장화 신은 발로 꾹꾹 눌러 밟고 비벼 단단한 열매만 골라냈다. 아직 고린내가 묻어 있는 열매를 다시 대야에 담고 물로 여러 번 헹궈냈다. 깨끗해진 열매는 넓은 돗자리나 편편한 바구니에 고르게 펼쳐 가을 햇볕을 받았다.
이렇게 말린 열매는 하루에 7 ~ 10알 정도 먹을 수 있었다. 호흡기나 면역력에 좋은 음식이었지만, 독성이 있어 꼭 적정량만 섭취해야 했다. 먼저 딱딱한 껍데기를 펜치로 눌러 깨고, 연두색의 작은 알맹이를 모았다. 엄마는 모아 놓은 알맹이를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 올렸다. 복잡한 양념 없이 맛소금과 들기름만 넣고 에메랄드 색이 될 때까지 볶아 접시에 내었다. 뜨거워서 호호 불어가며, 얼마 안 되는 양을 조금씩 아껴 먹었다. 들기름의 고소한 냄새와 짭조름하면서 쌉쌀한 은행의 맛은 추석 내내 먹었던 음식 중 별미였다. 고생해서 얻어낸 결과물이라 그랬는지, 쌉쌀하고 고소한 맛을 어린 나이에도 알고 있었는지 그것도 아니면 은행 열매는 약이라 많은 양을 먹으면 안돼서 아쉬워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은행나무는 허리가 잘렸다. 할아버지가 편찮으셔서 큰아버지 댁에 머무르게 되면서 그 누구도 시골엔 갈 일이 없었다. 더 이상 노란 은행을 수확하지도, 먹지도 않으니 매년 떨어지는 열매는 처치 곤란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아예 뽑혀버린 은행나무가 10년도 더 흐른 지금 떠오른 건 어째서일까. 잘린 은행나무처럼 여러 사정으로 아버지 쪽 형제의 관계도 단절되면서 추억이라고는 없었다고 단정했는데, 어쩌면 아주 조금은 그리웠던 게 아닐까.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강아지 발을 닦아주었다. 고약한 고린내는 은행 열매의 추억 덕분인지 고소한 냄새가 더해졌다. 어렴풋이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강아지 발의 고소한 고린내도 흐릿하게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