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하지 않게 잘 사는 방법
나는 행복하려고 하지 않아, 왜 행복해야 되지?
실망할 일이 없잖아.
사람이 마음을 안 다치려면
제일 기본적인 방법이 마음을 쓰지 말래.
- 유튜브 채널 '인생84' 장도연님 술터뷰 중 -
얼마 전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우연히 보게 된 영상 내용 중 일부이다. "행복이 뭐라고 생각해요?" 기안84님의 질문에 장도연님이 답한 내용이 내 마음 한 구석을 두드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사전에 차단하는 방법. 행복을 기대하지도, 타인과 친해지려 애쓰지도 않는다는 말.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낯선 이는 물론 가까운 관계의 누군가에게 어느 것도 기대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타인에게 마음을 쓰지 않는 것. 내가 상처받지 않고, 무난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고, 내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대화 한 번 해보지 않은 선배로부터 미움을 받았던 일. 이런저런 일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음속에 방어벽을 세웠다. 높고 두꺼운 방어벽이 나와 타인 사이를 점차 가로막고, 눈을 가려 대인 관계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완전한 신뢰는 어느 순간 사라졌다.
마음이 이러니 당연하게도 나의 대인 관계는 깊지 않다. 그렇다고 넓은 것도 아니었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손에 꼽는다. 그 소수의 친구들이나 가족에게도 내 마음을 온전히 표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내가 뾰족하게 모난 것은 아니다. 학교나 회사 같은 집단에 소속된다면 둥글둥글하고 조용히 지내는 것을 지향한다. 지인으로부터 항상 평온해 보인다는 이야기도 종종 듣는다. 타인이 일반적인 상식 선에서 행동하고, 말한다면 나 역시 그 선을 결코 넘지 않는다. 가족에게도 상처를 주고, 받기 싫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자 애쓴다.
친하다고 생각한 지인에게 카카오톡 '읽씹'을 당한다면 어떤 기분이 드는가. 왜 씹었지? 내 대답이 언짢은 걸까? 어느 부분에서 나빴을까? 그럼 최선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 나를 낮추고, 깎아먹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네가 씹어? 나도 그럼 더 이상 답장하지 않겠어' 생각의 결과가 손절이라면 누구에게도 득 될 것이 없다. 'OO가 그 순간 바빴는데,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나 보다' '답장 못 할 이유가 있었겠지' 깊이 생각하지 않고 가볍게 넘긴다. 그러다 다음에 또 연락이 오면 반갑게 인사하고, 관계를 지속한다.
쉽지 않다. 혼자서 동굴 안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사람과 어울려야 하는 사회에 소속하고 있다면 어려운 일일게다. 어려운 인관 관계를 최소한으로 유지하기 위해 나는 다음의 두 가지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하나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존댓말 쓰기. 존댓말은 말이 입을 통해 나가기 전에 머리를 거치도록 도와주는 필터 역할을 한다. 개인의 인성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막말을 하지 않고, 농담도 어느 정도 수위를 지킬 수 있다. 듣는 입장에서도 조금 더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나머지 하나는 얼굴의 표정, 목소리의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텍스트 방식의 의사소통. 문자나 전화로는 용건만 간단하게 말하는 것이다. 의사소통을 편리하고 빠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식이 관계에서는 오해를 부르는 일이 있다.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으니 기분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 그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듣는 사람이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받아들이고, 그런 뉘앙스를 눈치채지 못한다면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남편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한다. 내가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생에서 잘 살기 위해서는 적절한 방법이다.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해결책이랄까. 타인과의 만남, 대화에서 상대방에게 괜찮게, 기분 나쁘지 않게 말했는지 눈치 보고 곱씹는 나에게는 이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았으니 남은 시간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 괜찮다.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