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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경 Jan 17. 2024

목요일은 엄마랑 노는 날!

 겨울 끝자락, 3월 어느 날. 아직은 바람에 서늘한 기운이 남아있지만 햇살이 따뜻했다. 처음으로 아이와 둘이서 전철을 타고 동물원에 놀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춥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었다. "아들 추워?" "괜찮아!" 방풍커버를 씌운 유모차에 아이는 쏙 들어앉아 춥지 않다고 말했다. 얼굴과 목소리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아이는 엄마랑 사자, 코끼리를 보러 가자는 말에 어제 잠들기 전부터 들떠있었다. "그래, 그럼 가볼까?" "가자! 가자!"


 일주일 중 하루, 목요일을 '엄마랑 노는 날'로 정했다. '엄마랑 노는 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대신 엄마와 단둘이 놀러 가는 날이다. 물론 가고 싶을 때 언제든지 가도 될 일이지만, 날을 따로 정한 건 아이를 위해서였다. 해가 바뀌고 만 2세 반으로 올라 간 아이는 적응이 어려웠는지 하루가 멀다 하고 문제 행동을 보였다. 친구가 갖고 있는 장난감을 뺏기도 하고, 물건을 던지기도 했다. "십 년 넘게 아이들을 돌봤지만, 처음 봤어요"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이 전하는 아이의 이야기다. 얼마 전 다녀온 소풍에서 아이가 기념품을 사겠다고 바닥에 드러눕고 한참 떼를 써 선생님들이 애를 먹었단다.


 어쩐담, 집에서는 그러지 않으니. 내가 아이의 변화를 위해 무얼 해줄 수 있을까. 내가 노력한다고 바뀌긴 하는 걸까.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아이의 말이 느린 것이 원인이 아닐까.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는데, 말이 안 나오니 답답해서 그러지 않겠냐는 선생님의 의견이었다. 발달센터에서 언어 발달에 대해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검사를 받으며, 아이의 문제 행동에 대해서도 상담을 받았다. "현승이가 4살 또래보다 말이 느리긴 하지만 특별한 이상은 없어 보여요. 언어 발달을 돕고 문제 행동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험이라. 그래서였을까. 엄마가 집순이라는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준 것은 아닐까. 선생님들의 조언에 더하여 남편과 상의한 끝에 '엄마랑 노는 날'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여행이 전철을 타고 동물을 보러 에버랜드로 놀러 가는 것. 등원할 때를 제외하고 아빠 차 없이 멀리 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보다 내가 더 두려웠다. 아이가 어떤 행동을 보일까, 걱정이 되어 신경이 곤두섰다. 기우였다. 아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았다. 전철 유리창을 통해 밖의 풍경을 구경하고, 어르신들과 짧게 대화도 했다(물론, 말이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동물원에서도 마음대로 돌아다니려 하다가도 안된다고, 다칠 수 있다고 하면 엄마 손을 꼭 잡고 걸었다. 장난감이 많은 곳을 지날 땐 선물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으나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섯 달 정도 매주 여기저기 다녔다. 버스나 전철, 대중교통을 탈 땐 작게 말해야 하는 것을 알려줬다. 동물원에서 동물을 보거나, 놀이동산에서 놀이 기구를 타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키즈카페에서는 다른 친구들에게 장난감을 양보하며 놀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는 서서히 달라졌다. 여전히 서툰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했다. 정말 효과가 있었을까. 이렇게나 함께 애를 쓰는데 안될 리가 없지. 엄마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나도 변했다. 어린이집에서 혼날 아이가 안쓰러워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오히려 아이와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아이가 길바닥에 드러누울까, 뭐 사달라고 떼를 쓰며 울까 노심초사하며 걱정했던 때는 까마득해졌다. 거리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실컷 돌아다니고 식당에 앉아 어린이 정식 한 그릇을 뚝딱 먹는 걸 보면 얼마나 뿌듯하던지. 둘이 놀러 다녀온 날 저녁이면 호랑이가 무서웠다느니, 우동이 맛있었다느니 조잘조잘 아빠에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이쁘던지. 곧 목요일이다. 이제 한낮에는 해가 뜨거워 돌아다니기 힘들다. 돌아오는 목요일에는 그늘이 드리워진 벤치에 나란히 앉아 아이와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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