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산타 하비지 언제 와요?"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가 산타 할아버지 소식을 물었다. 나는 아직 크리스마스에 대해 말해준 적이 없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등원할 때 어린이집 현관 앞에 있던 크리스마스 장식을 아이가 궁금해하던데, 선생님이 알려줬나 보다. 하지만 아직 25일이 되려면 스무 밤도 더 남았다. 이제 1부터 10까지 셀 수 있는 4살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까. 난감했다. 고민 끝에 휴대폰을 꺼내 들고, 달력 앱을 열었다.
"현승아, 이거 봐봐, 여기 동그라미 있는 숫자가 뭐야?"
"2!"
"맞아, 오늘이 2일이야. 산타 할아버지는 25일에 오시는 거야. 현승이가 이만큼이나 코 자야 만날 수 있어"
"많이 코 자 시러"
손으로 날짜를 가리키며 알려줬다. 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 아이의 얼굴에는 실망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이해는 한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 매일 달력을 보며 날짜를 확인했다. 한숨도 쉬고, 짜증도 냈지만 그럭저럭 잘 기다렸다. 얼마 못 가 선물 달라고 떼를 쓸 줄 알았는데 기특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무슨 날인지 알지도 못하고, 선물 받았다고 그저 좋아하기만 했는데. 아이는 그새 또 컸다.
드디어 22일. 아이가 고대하던 '싼타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싼타 잔치'는 어린이집 행사다. 산타 할아버지가 어린이집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함께 사진을 찍는다. 산타의 선물은 부모가 미리 어린이집에 보내 놓는다. 현승이의 선물은 요즘 좋아하는 만화, 미니특공대 볼트의 변신세트였다. 아빠가 몰래 007 첩보 요원처럼 두꺼운 패딩 안에 숨겨 행사 전에 전달해 두었다. "아들 일어나 봐, 오늘 산타 할아버지 유치원에 오시는 날이잖아" 평소라면 춥다고 이불속에서 조금 더 뒹굴뒹굴했을 텐데.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눈곱도 안 떼고 입을 옷을 챙기며 "유총 가자"를 외쳤다. 신나하는 아이의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렇게나 좋을까.
아이를 데려다주고 나오는 길. 문득 어릴 적 나의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 궁금해졌다. 언제 산타가 없다는 걸 알았더라. 아주 오래전이라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도 분명 어렸을 땐 현승이처럼 크리스마스를 잔뜩 기다렸다. "자꾸 떼쓰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줘!" 12월에만 통하던 엄마의 협박에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잘 참아냈더랬지. 아빠가 몰래 놓고 가는 것을 봤는지, 초등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알게 된 것인지는 생각이 안 났다. 하지만 내가 안다는 것을 부모님이 알게 된 후로는 산타의 선물은 없어졌다. 뭐가 필요하냐고 대놓고 물으셨다. 선물 받는 것은 똑같았으나 왠지 모르게 아쉬웠던 마음이 남아있다.
현승이의 '산타 하비지'는 꽤 오래 지켜주고 싶다. 아이가 굳게 믿는다면 그 믿음을 지켜주는 것이 상상력과 감정 발달에 도움을 준다던 어느 심리학자의 말도 있지 않은가. 산타 할아버지가 온다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등원하던 아이. 어린이집에 꾸며놓은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을 보고는 신기해 반짝반짝 빛나던 두 눈. 마음은 이미 원에 들어가고 엄마에게 노룩(no-look) 인사로 흔들던 손. 선물을 받고는 "이게 제일 좋아!"를 외치던 해맑은 목소리까지.
그 설렘과 기다림, 즐거움을 아이가 나중에 커서 추억할 수 있게 될 때까지 산타의 비밀은 알려주고 싶지 않다. 고요하고 깊은 밤, 이제 몇 시간만 지나면 25일이다. 아이가 즐거워할 모습을 생각하니 오랜만에 나도 두근거린다. 가족이 함께 만든 작은 트리에 아이는 잠들기 전 양말을 걸어 놓았다. 나는 숨겨뒀던 선물을 조심히 꺼내 들고, 양말 아래에 내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