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정 표현이 서툴다. 지금도 불편하지만, 어렸을 땐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와 같은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러웠다. 말하기 싫어서 일부러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고, 실수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부모님은 물론, 남편에게도 쉽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변했다. 달라졌다. 엄마가 되면 진정한 어른이 된다던데. 아이가 태어난 후로는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 주는 거야? 고마워'가 절로 나왔다. '죄송합니다'가 입에 붙기도 했다. 어린이집을 보내기 시작하면서다. "오늘은 현승이가 많이 울었어요", "친구에게 장난감을 던졌어요" 아이를 데리러 가면 선생님이 아이가 했던 행동을 전해줬다. 아이가 잘 놀았다거나 밥을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도하지만, 떼를 썼다거나 친구들과 다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죄송하다'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왔다.
기저귀 대신 팬티를 입혀 보내지 못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어린이집에서는 매년 상반기, 하반기에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3월 상반기 정규 상담에서 담임 선생님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올해 아이들이 말도 느리지만, 배변 가리는 것도 늦어요" 만 3세 반이 되면 한 반에 한 두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저귀를 뗀다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현승이를 포함한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두 기저귀를 하고 있단다. 사실, 현승이도 집에서는 소변과 대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매번 잘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어린이집엔 기저귀를 채워 보냈다. 선생님 말을 듣고 팬티를 입혀 보내자니 걱정이 되었다. 놀다가 또는 낮잠을 자다가 이불에 실수라도 하면 어쩌나. 선생님 한 명이 돌봐야 하는 아이도 많은데, 현승이가 일을 보태주는 것은 아닐까 죄송스러웠다. 집이 아닌데 엄마가 어떻게 배변 훈련을 할 수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고민하는 동안 아이는 36개월이 되었다. 여전히 기저귀를 하고 등, 하원을 했고, 6월 이사를 했다. 어린이집은 이사한 집 근처로 옮겼다. 아이는 다행히 새로운 어린이집에 생각보다 빨리 적응했다. 일주일 간의 적응 기간이 지나고, 하원하는 길. 새로운 담임 선생님이 물었다. "현승이가 집에서 대, 소변을 가리나요? 쉬가 마려우면 바지를 내리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 내일부터는 팬티 입혀 보내셔도 돼요"
나는 울컥했다. 아이가 참지 못하고 바지에 쌀 수도 있어서 기저귀를 채워 보냈다는 말에 선생님은 "아이들이 다 그렇지요. 실수해도 괜찮아요. 닦으면 되죠"라고 답했다. 눈물이 맺힐 것 같은 마음에 얼른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집을 나섰다. 다음 날부터 아이는 팬티를 입고 등원했다. 당연히 실수를 했다. 낮잠 자기 전 화장실을 다녀왔는데도 이불에 했다고 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그대로 소변을 보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점차 그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43개월이 된 아이는 밤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 이제 기저귀를 거의 쓰지 않는다. 종종 혼자 일어나 화장실에 가기도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주눅 들고 위축되어 있었나 보다. 아이가 타인에게 혹시라도 피해를 주거나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랑비처럼 조금씩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숙이 스며들었던 것 같다. 축축하게 젖어 무거워진 마음이 선생님의 '괜찮다'라는 말 한마디에 따뜻하게 마르는 기분이었다. 선생님은 무슨 생각으로 괜찮다고 했을까. 나보다 선배 엄마로서 나의 불안에 공감했던 것일까. 여러 아이를 돌보는 선생님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당연한 것이라고 여겼을까. 하지만 그 당연한 말은 내 마음을 안심시켰다. 위로해 주었다. 어쩌면 선생님과 했던 그날의 대화는 앞으로 아이와 어떤 일을 함께 겪어내야 할 때 기댈 수 있는 등 같은 말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데리러 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서툴게나마 인사하고 있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