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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다 꽃이다

브런치, 작가의 꽃을 피워가는 길

by 식이타임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건 초등학교 시절부터다. 할아버지는 내게 매일 일기를 쓰게 하셨다. 너무 피곤해서 초저녁에 잠이 든 날에도, 아파서 일어나기 힘든 날에도 어김없이 나를 깨우셨다. 덕분에 눈물을 적시며 쓴 일기가 꽤 있다. 쓰기 전엔 하기 싫어도 쓰고 나면 기분이 뿌듯했다. 할아버지는 매번 짤막한 감상평을 전해주시곤 하셨는데,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앞으로는 이렇게 쓰면 더 좋을 것 같다.'라는 내용이었다. 귀찮을법한 일을 몇 년 동안이나 해주셨다. 그런 할아버지의 노력 덕분일까? 글쓰기는 할아버지께서 남겨주신 쏠쏠한 유산이 되었다. 연애편지를 쓸 때, 복잡한 청춘시절의 마음을 정리할 때에도.


어른이 되면 나만의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막연하게 가지고 있었다.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도록 자극을 준 선배가 있다. 선배는 사무직에 종사하고 있지만 바쁜 틈을 쪼개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만 박혀 있는데 무슨 글을 쓰겠어? 그저 책상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습이 부끄러워질 만큼 선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희망차게 말했다. 브런치스토리를 알려주며 "작가의 서랍에 무엇이든 써서 남겨봐. 작가가 별게 아니야, 쓰는 사람이 곧 작가지!" 선배의 말에 내 안에 있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오랜 연애를 마치고 군생활을 하던 나는 공허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주말만 되면 술자리를 찾아갔고 유혹을 찾기 바빴다. 어느 순간 도파민에 절어 있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글을 써보라는 선배의 말이 떠올라 속마음을 하나씩 작가의 서랍에 옮기기 시작했다. 글쓰기로 괴로운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공허했던 마음속에 무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분주히 내 안의 이야기를 찾아 써 내려갔다.


친구들은 늘 나를 만나면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잘 살고 있는 척 자랑을 떨기 바빴기 때문이다. 글을 쓰려면 솔직해질 수밖에 없었다. 헤어져서 무지 슬프다는 마음을, 뭘 해도 재미없다는 일상을, 친구의 성공이 배 아프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털어놨다. 사람들은 성공한 이야기보다 찌질한 이야기에 웃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덕분에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거침없이 나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 아내를 웃길 수 있어 행복했다. 눈떠보니 결혼도 하고 아이도 태어났다. (브런치가 결혼까지 도와줄 줄이야.) 결혼 생활도 육아도 시련의 연속이었지만 시련 즉 글감이 아니었던가. 고난은 자양분이 되었고 묵히고 다듬으면 한 송이의 꽃처럼 이야기 하나가 피어났다.


브런치스토리에 들어오면 꽃밭에 있는 기분이다. 내가 심은 이야기 주변에 수많은 작가님들이 자신만의 이야기 꽃을 피워낸다. 공부하는 학생, 분투하는 직장인, 누군가의 엄마 또는 아빠, 숱한 경험을 거친 노년의 인생. '내 인생에만 이렇게 비가 내리나'하며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그들도 함께 비를 맞고 그 속에서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오늘도 브런치스토리를 열어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깜빡이는 커서를 바라보며 또 한 송이의 꽃을 피워낸다. 작가로 향하는 길 위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품고 나아가는 우리는


모두 다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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