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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Sep 13. 2024

금칠은 자주 해줘야돼

빌트모어, 브레이커스, 그리고 마블하우스

나는 어려서부터 장차 자라 배금주의자가 될성부른 떡잎이었나보다. 금칠이 번쩍이는 시대극만 보면 너무나 좋아했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왕실과 귀족들의 이야기를 읽고 보면서 호화, 사치, 화려, 휘황한 것들을 유난히 좋아했던 것 같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행히 나 같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또 한 무더기 있더라는 것을 알고 안심했었다. 그런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 많은 예술작품을 남기곤 했으니까. 장편소설 ‘혼불’을 쓴 최명희 선생도 지인에게 보내는 한 편지에서, 자신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달린 호사스러운 곳을 검약한 곳보다 더 사랑하는 그런 사람이라고도 고백한 적이 있다. 그렇다. 사람들 중에는 ‘아름답고 무용한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은 원래 모순된 존재라서,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그간 어떻게 노조를 탄압해왔는지 알면서도 그 회장이 평생 모은 컬렉션의 아름다움은 별개로 감탄하고 거기서 영감을 얻곤하는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그것이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의 최정점에서 인간의 성취가 극에 달했던, 하지만 그 그늘은 깊고 어두침침했던 한 시대, ‘길디드 에이지Gilded Age(금칠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그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서구가 제국과 산업의 부를 주체 못했던 시기를 미국에서는 길디드 에이지, 영국에서는 빅토리아 시대, 프랑스에서는 벨 에포크(Belle Epoque, 좋은 시절)라고 부른다. 이 시기는 카네기와 마르크스가 함께 살았던 시대였다.


내가 이 시기를 포착한 것은 인상주의 미술의 번성 때문이었다. 사진이 탄생하면서 더는 사실적인 묘사가 필요없어졌다. 이는 형체를 마음껏 해체하며 벚꽃잎 날리듯이 흐드러지게 표현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 일반인들이 그림의 대상이 된 시기였고 작아진 그림들을 부르주아들이 사서 집을 치장할 수 있었던 시기였으며, 귀족이 아닌 시민들도 귀족처럼 살 수 있었던 시기였다. 그림들 안에 아름답게 표현된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이 바로 벨 에포크였던 것이다.


존 싱거 사전트, 조지 스윈턴 부인, 1897.


이 시기 뉴욕 상류사회의 모습을 잘 표현한 것이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한 영화, ‘순수의 시대’(1993)다. 미국 신흥 부자들이 어떻게든 유럽 귀족처럼 살려고 애썼던 시대다. 그 시기에 부자가 된 이들이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영화가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1997)이다. 이런 영화들을 통해 아, 저 시기 미국 부자들한테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게다, 포착하게 된 것이었다.


마틴 스콜세지, '순수의 시대' 1993.


‘금칠시대’의 본모습을 미국에서 보게 된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애쉬빌에 있는 ‘빌트모어’저택(Biltmore Estate, 1885 완공)이다. 또 하나는 로드아일랜드에 있는 뉴포트다. 빌트모어는 미국 역사 보존지이기도 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큰 개인집이다.

빌트모어 저택. 미국 최대 규모의 개인집이다.


1만 6천 제곱미터의 공간에 250개의 방이 있는 대저택이다. 2만 6천 권의 장서를 가진 2층 규모의 도서관, 수영장, 실내 온실,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한 거대한 식당에 야외에는 드넓은 유럽식 정원과 온실, 포도밭과 와인 양조장을 가지고 있다. 미국 자본주의의 샤토(성)답게, 입장료도 결코 저렴하지 않아서, 비수기 인당 70달러,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인당 125달러를 자랑(?)한다.


파이프오르간이 있는 빌트모어의 식당


이를 지은 이는 조지 워싱턴 밴더빌트로, 맞다, 테네시 주에 있는 명문대 밴더빌트 대학의 설립자 가문 출신이다. 그의 나이 불과 28세에 착공해서 33세에 완공을 보았다. 그 해 크리스마스를 친구와 지인들을 초청해 빌트모어에서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이 밴더빌트 기업의 창업주가 코르넬리우스(코모도어라고도 불리는) 밴더빌트고 조지는 그의 손주다. 코모도어는 뉴욕센트럴 철도회사를 가지고 뉴욕을 드나드는 모든 철도물류를 독점했으며 그의 독점력은 뉴욕을 벗어나 대륙철도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코모도어는 네덜란드계 이민자 출신으로 부모는 뉴욕이 뉴 암스테르담이었을 때  계약 종복으로 이주해왔다. 그의 나이 16세에 엄마에게 100달러를 빌려 시작한 물류사업을 크게 확장시켰다. 그는 배운 것은 별로 없었지만, 죽을 때 전세계 최고의 부호였다. 그의 재산이 미국 재무성이 가진 돈보다 많았다고 한다. 한마디로 ‘이민자 성공신화,’ ‘아메리칸 드림’의 화신이면서 독점이 횡행하던 시기의 ‘자유방만의 미국식 자본주의’의 폐단에 정점에 서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현재도 웅장한 보자르 양식을 자랑하는 뉴욕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이 밴더빌트 가문에 의해 세워졌으며, 뉴욕에만 해도 5번가의 저택을 비롯해 갖가지 양식의 10채의 맨션(저택)을 가지고 있었다.


뉴욕 외에도 많은 곳에 저택들을 세웠는데 그 중 두 곳이 로드아일랜드 주 뉴포트New Port에 있는 ‘브레이커스’(Breakers)와 ‘마블하우스’(Marble House)다. 심지어 이 저택들은 그냥 ‘여름별장’으로 지은 것이라 한다. 브레이커스는 70개의 방, 마블하우스는 약소하게(?) 50개의 방으로 이뤄져 있다. 그것도 ‘대리석집’인 마블하우스는 손주되는 윌리엄 밴더빌트가 아내 알바에게 선물로 준 것이라고.  


브레이커스 저택의 중앙계단


영화 ‘순수의 시대’나 ‘타이타닉’에 보면 정략결혼 이야기가 나온다. 전자에서는 뉴욕 아처 가문에서 유럽 귀족에게 결혼하러가서 백작부인 칭호를 얻은 엘렌이 등장하고, 후자에는 영국 귀족 출신인 로즈가 미국 철강재벌 호클리에게 팔려가는 내용이다. 좀 더 뒤의 이야기지만 영국드라마 ‘다운튼 애비’에도 미국 백만장자 가문의 딸 코라가 영국 백작 로버트 그랜섬과 결혼해서 위기에 처한 귀족가의 영지를 지켜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신흥부자가 된 미국인 백만장자들은 어떻게든 유럽 귀족가문과 결혼해서 자신들도 진짜 ‘귀족’이 되고 싶어하게 된다. 이러한 미국 상속녀들을 ‘밀리언달러 아메리칸 프린세스Million Dollar American Princess’라고 부르게 된다.


브레이커스의 뮤직룸


밴더빌트 가문에도 증손녀 글래디스 밴더빌트가 헝가리 백작과 결혼해서 백작부인 칭호를 얻게 된다. 이 글래디스의 외손녀도 글래디스인데 그가 ‘브레이커스’의 상속녀가 되었다. 그는 막대한 유지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 저택을 유물보존회에 넘겼다. 보존회는 관람객들에게 비공개인 3층에서 그가 지내도록 선처했다. 하지만, 한치도 어긋나지 않게 보존하려고 간섭하던 그는 보존회와 갈등 끝에 2018년에 쫓겨난다. 그녀와 같은 항렬에 있는 사람이 현재 CNN 간판앵커 앤더슨 쿠퍼다. 코모도어 밴더빌트의 증손녀 콘수엘로 밴더빌트는 영국의 9대 말보로 공작인 찰스 스펜서-처칠과 결혼해 마침내 공작부인에 이르게 된다. 콘수엘로는 영국 수상이된 윈스턴 처칠과 사촌지간이 된다.


콘수엘로가 자란 마블하우스


콘수엘로의 어머니 알바 밴더빌트는 어려서부터 그녀를 귀족으로 키우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바른 자세를 위해 철로된 몸틀을 하루종일 차고 다녀야 했고, 가정교사를 두어 여러 외국어를 가르치며 학교에 보내지 않고 사교육만 받게 했다. 이런 학대를 당하던 콘수엘로였지만, 영국에 건너가서는 위축되지 않고 사회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여성 참정권 운동에도 기여를 하게 된다.


'여름별장'에 불과한 곳의 거실, 마블하우스


영화 ‘타이타닉’에 나오는 화려한 1등석 상류층 승객들의 생활 아래 숨겨진 하층 선실 3등석 승객들은 유럽에서 주리고 배고팠던, 미국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반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1885)에 나온 그런 배고픈 네덜란드인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에밀 졸라가 1885년에 발표한 소설 ‘제르미날’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노동 영화 ‘제르미날’(1993)에 나오는, 혹독하게 가난한 탄광부 같은 노동자들이기도 했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쓴 것이 1867년이었고, 헨리 조지가 지대의 공유를 주장한 ‘진보와 빈곤’이 발표된 것이 1879년의 일이었다. 그의 단일 지대 세금론을 설명하려고 만들어진 게임이 ‘지주의 게임Landlord’s Game’(1903)인데, 리지 메기라는 여성이 만들었다. 이 게임의 후신이 바로 ‘모노폴리Monopoly(독점)’(한국에서는 ‘부루마블’)다. 분명 똑같은 재산으로 시작했는데 운(주사위)에 의해 누군 독점재벌이 되고 누군 파산하게 되는 그 게임 말이다.


내가 빌트모어, 브레이커스, 마블하우스에서 봤던 것은 무엇이었던가? 어린이노동을 열몇시간 넘게 시켜가며, 많은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무수히 죽어갔던 그 시대,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를 착취하여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를 개개인들이 산처럼 쌓아올려 자랑하기 바빴던 시대의 단면을 본 것이었다.


과연 개인이 그토록 많은 부를 쌓아도 되는 걸까? 이런 고민에 응답했던 이들이 카를 마르크스였고, 헨리 조지였고, 앤드류 카네기였다. 카네기는 가난한 스코틀랜드 출신 이민자로 철강왕 재벌이 되었던 이다. 그는 1889년에 ‘부의 복음’(The Gospel of Wealth)이라는 책을 출판한다. 그는 부자들은 최대한 검소하게 살면서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 복지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재산의 90%를 기부하여 철강왕이자 기부왕이 되기도 한 사람이다. 그에 의해 미국 부자들의 근검하고 실용적인 생활과 ‘기부 전통’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게 미국 부자들의 기풍(ethos)이 된 것이다.


그 위대한 부를 쌓아올린 밴더빌트 가문은 어떻게 되었을까? 쿠퍼의 책에 의하면, 그 상속자 중 하나였던 알프레드 밴더빌트는 일생을 플레이보이로 살면서 오로지 종마와 호화스런 차에 돈을 펑펑 썼다. 그리고는 타이타닉호의 경쟁작 ‘루시타니아’호에 탔다가 독일 잠수함의 폭침으로 사망하게 된다. 배가 기울던 그 순간에, 그의 돈이 그를 구하지 못했으며 단 1초라도 그의 생명을 연장해주지 못했다.


그 가문의 많던 돈은 그 후손들의 가지각색의 호화취미와 방탕으로 탕진되고, 철도시대가 끝나 비행기의 시대를 준비하지 못해 가업이 모두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으로 끝났다. 부자 삼대 못간다더니 6대에 이르러 무일푼이 되었다. 부자 망해도 삼대는 간다더니 그 말은 사실이긴 한가보다. 앵커 앤더슨 쿠퍼는 자신의 어머니인 글로리아 밴더빌트에게서 ‘행여 어딘가에 숨은 밴더빌트 머니가 있겠지,’생각지도 말라고 들었다 한다. 빌트모어와 브레이커스, 마블하우스에 방문하는 많은 이들은 미국의 부의 영광에만 취하지 말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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