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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Sep 12. 2024

나의 황금이 너의 황금이 되어

플로리다 여행에서 만난 보물선

애틀랜타에 살 적에, 우리도 한 번 올랜도와 플로리다를 가보자!하는 마음으로 여러날의 여행 계획을 세워 집에서 올랜도로 의기양양하게 출발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그런 선샤인 스테이트를 생각하면서. 하지만 역시 또 내게 불운의 여신이 강림하사 이차선 길 고속도로가 사고로 꽉 막히기도 하고, 아무리 와이퍼를 돌려도 앞이 한치도 안 보이는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기도 하면서 운전한지 10시간 만에 올랜도에 간신히 도착했었다. 플로리다로 들어가는 주경계 휴게소에서는 직원들이 오렌지쥬스를 한잔씩 주면서 환영한다고 밝게 웃어주었다. 우린 올랜도 디즈니랜드를 들른 후 거기서 다시 마이애미로 향했다.


즐겁게 마이애미 비치를 누렸다. 누려~ 한산한 비치에는 푹신한 모래가 깔려있고, 야자수가 정말 새파란 하늘에 휘날리고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온 김에 이 햇볕을 온 몸 구석구석에 저장하려는 욕심이 났다. 다리를 벌리고 뜨거운 정오의 낮잠을 이십분 가량? 잠시 자고 일어났는데 그만… 허벅지와 온 몸에 경미한 화상을 입었다. 옷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쓰라렸다. 우린 급한대로 근처 마트에 가서 알로에를 사서 발라봤지만, 한국 것처럼 시원하고 촉촉한게 아니라 축축하고 끈적했다. 전혀 진정이 안 됐다! 그래서 최후의 방법으로 몸의 열기를 빼낸다고 찬물 샤워를 오래 하고 방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튼 다음 홀랑 벗고 누웠다. 제대로 누울 수 없어서 몸을 세로로하고 밤새 따가워서 끙끙거리며 잤다. 참 바보짓도 여러가지야…온 몸 구석구석은 무슨…구석까지 화상입었네.


우린 마이애미에서  ’미국 최남단Southernmost Point’표시가 있는 키웨스트Key West까지 또 다시 달렸다. 플로리다 반도 남단의 열도들은 키웨스트까지 매우 긴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드나드는 길에는 원없이 파란, 연한 청록빛 바다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하늘로 이어진 양 드높이 오르던 다리 꼭대기에 도착하자 눈 앞에는 산호섬들이 부서져 흰모래톱을 이루는 점점이 섬들이 있었다. 초록색 파도의 새하얀 포말이 바다라는 옷 밑단에 달린 섬세한 무늬의 레이스처럼 가지각색의 무늬를 내며 들고나고 있었다.


열도의 가장 마지막 섬의 도시인 키웨스트에 ‘미국 최남단’표시가 서 있었다. 여기에는 ‘쿠바까지 90마일(145km)’이라고 써 있었다. 우린 쿠바도 다녀왔던터라 거기에서 혹시나 아름다운 아바나가 보일까 먼 바다를 살펴보았다.


그러곤 저 유명한 키웨스트의 석양을 보러 말로리 광장에 갔다. 우린 여행 내내 해지는 시간을 쫓아 해가 잘 보일 곳을 향해 달리곤 했었다. 이번엔 차를 대고 느긋하게 걸어서 기울어진 저녁빛이 얇아지는 광장에 이르렀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한 사람들의 손을 꼬옥 잡고 고개를 기대기도 하면서 무언가 가슴속이 따수워지는 표정으로 태양앞에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우리도 셀카를 몇 장 찍고는 고개를 기댔다. 태양이 천천히 그러나 빠르게 해수면에 닿을 찰나에, 하얗고 거대한 크루즈선이 가리며 지나갔다.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지만, 배가 지나고 나니, 마치 황금공이 바다에 빠지는 듯, 찬란한 빛줄기들이 뿜어져 나왔다. 사람들은 경탄했다.


광장 주변에는 ‘멜 피셔 해양사 박물관’이란 곳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나는야 바다덕후라, 흥미가 한층 더했던 것 같다. 운전하면서 줄줄이 늘어선 크고 작은 산호섬들이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사실 이 플로리다 연안에 태풍 시즌이 되면 엄청난 폭풍우, 허리케인이 몰아친다. 1622년, 스페인 선적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아토차 갈레온선은 캐리비안의 보화를 가득 싣고 스페인을 향해 출항했다. 배에는 24톤에 이르는 은괴 1038개, 18만 페소에 이르는 은화, 125개의 금괴와 금가공품, 1천2백 파운드에 이르는 정교하게 세공된 은제식기가 265명과 함께 실려 있었다. 그런데 폭풍우로 이 배는 불과 5명의 생존자만 남기고 물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1969년부터 멜 피셔라는 보물사냥꾼이 잠수사와 학자들을 꾸려 ‘보물선’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스페인 세비야까지 가서 아토차라는 배가 난파했다는 기록을 발견한다. 이를 근거로 광범위한 산호모래톱을 샅샅이 뒤지며 다녀야하는 것이었다. 발견은 지지부진 했다. 그저 조그마한 장신구나 기물들을 찾는 게 전부인 시간이 한참 흘러갔다. 1973년에서야 세 개의 은괴가 발견되었는데 그 고유번호와 각인이 세비야의 기록과 같았다. 그러면서 같이 침몰했던 다른 배의 대포 포신도 발견하며 점점 더 ‘본체’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1982년에 플로리다 주정부와 미국 연방정부, 스페인 정부까지 엃히고설켜서 서로 보물선이 자기들 것이라고 싸웠고, 마침내 대법원은 이 모든 것의 소유자는 멜 피셔 한 사람 뿐임을 천명했다. 1985년에 이르러서야, 멜 피셔는 드디어 ‘본체’를 찾았다! 16년만의 결실이었다. 말로만 듣던 ‘보물선’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된 셈이다.


전시관 유물 중에는 엄청 무거워 보이는 금을 사슬로 만들어 둘둘 감아놓은 것이 있었다. 빙빙 몇 두릅이나 되게 감겨져서 황금의 뱀처럼 보였다. 이것은 아토차 호가 세관신고를 적게하려고 금괴대신 세율이 낮은 금 가공품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금화, 금목걸이, 금쟁반, 금잔... 주변이 온통 번쩍 번쩍했다.


나의 ‘바다앓이’는 쥘 베른의 ‘해저2만리’부터 시작해서 ‘15소년 표류기’를 거쳐 내 나이 또래면 한번쯤 해보거나 들어온 코에이사의 ‘대항해시대’(1990)라는 게임으로 꽃을 피웠다. 이 컴퓨터 게임은 6명을 주인공으로 하여 탄탄한 역사지식이 바탕이 된 명작이다. 내용은 보물을 찾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내용인데 여기에 캐리비안의 해적들이 등장한다. 해적들은 식민지에서 약탈한 보물을 잔뜩 싣고 가는 배들을 다시 약탈했다.


해적에 대한 이야기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해적왕국의 황금시대’에서도 볼 수 있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이 해적들은 단지 보물만 약탈한게 아니라 실제로 현재 바하마의 나소에 ‘해적공화국’을 이뤘다. 해적의 황금시대는 1650~1730년 사이를 이른다. 해적들은 자기들끼리 규약을 만들어 지켰다. 대표적인 것이 선장의 의견보다 피부색깔을 막론하고 모두가 공평하게 한 표를 갖는 선원투표가 더 중요시된 점, 탈출노예 출신이라도 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선장이 되고 부자가 될 수 있었다는 점 등이 특이점으로 기록된다.


신나는 바다 모험 이야기는 대중적으로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2003~2017년)과 ‘마스터앤드커맨더’(2003)로 표현되어 흥행했다. 나는 주경철 서울대 교수의 ‘바다인류’와 ‘대항해시대’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욱 상상력에 날개를 펴갔다. 각각 930쪽, 560쪽에 이르는 대작으로, 바다 선원 생활과 그 역사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까지 두루 알 수 있었다. 캐리비안 바다의 아름다움 속에는, 신대륙을 약탈했던 제국의 어두운 역사, 원주민을 죽이고 노예로 만들어 팔았던 끔찍한 역사도 숨어 있었다.


나는 내친 김에, 그럼 그 많은 신대륙의 부는 다 어디로 갔나? 생각해봤다. 그 부는 현재 각국 중앙은행이 소유한 금괴고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현재, 미국이 8천톤,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각각 2천 4백톤, 영국 310톤, 네덜란드 612톤, 스페인 282톤, 포르투갈 383톤, 일본 846톤을 가지고 있다. 모두 전세계의 바다를 호령하는 제국을 세운 나라들이다. 피식민 국가였던 한국은? 고작 103톤을 잉글랜드 은행에 보관하고 있다. 그것도 최근에야 정부 관리가 금고에 들어가서 전수조사를 간신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파르란 물결이 잔잔히 이어지는 평화로운 플로리다 바다, 그리고 키웨스트. 하얀 돛단배 같은 새하얀 크루즈가 새로운 보물선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꿈과 보석을 싣고 떠다니고 있다. 거기에 해적들의 대포 소리, 고함지르는 소리, 거친 허리케인에 휘말려 배가 깨지는 소리, 살려달라는 비명소리… 그럼에도 계속해서 신대륙에서 채찍과 칼을 휘둘러 빼앗은 어마어마한 황금과 보물들이 출항하는 배마다 그득그득 실려 유럽을 향해 부푼 돛을 안고 둥둥 떠간다. 그런 플로리다 바다고, 그런 키웨스트였다. 내겐.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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