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반스토니언 Nov 19. 2024

희망의 등대, 크리스마스 트리

시카고의 겨울로부터 배워온 전통

지난 주말에 아이랑 함께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다. 우리집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결혼한 지 9년만에 장만했다. 그동안은 미국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느라, 손수 이사가 잦아서, 트리 같은 사치품(?)을 살 엄두도 못냈다. 미국 사람들이 즐겁게 세우는 온갖 트리들을 그저 구경만 했다. 11월이 되면 길거리에 생목 트리를 차 천장에 묶고 달리는 귀여운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대로변 교회들이나 상점들에서는 생목 트리를 12월까지 판다. 친구 목사네 교회는 그 일을 한지 수십년이라, 할아버지, 아빠, 아이까지 삼대가 내리 추억을 간직하고 아직도 찾아온단다. 


시카고에서의 겨울은 길고 혹독했다. 만주쯤 되는 위도에 있는 시카고라, 항상 눈보라에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이 종종 내렸다. 영하 32도까지 내려갔던 적도 있다. 차 안에 난방을 최고로 틀어도 두터운 방한화를 신은 발에 한기가 스며들었다. 항상 찌푸린 날씨가 계속되었다. 없던 계절성 우울증이 생길 지경이었다. 거기에 코로나까지 덮쳤던 2020년의 겨울. 모든 게 오후 세네시면 어두워지는 칠흑같은 암흑이었다. 미국은 생필품을 파는 곳 말고는 카페고 레스토랑이고 모두 문을 닫게 했다. 갈 곳이라곤 내 집 밖에 없었다.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간의 연속.


산책 삼아 눈이 아름답게 뒤덮인 우리 동네 에반스톤을 돌아다닐 때였다. 각양각색으로 생긴 집들에 또 제각각 모습대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게 구경할 거리였다. 우리 윗 동네인 윌멧에 가면 정말 영화 ‘나홀로 집에’에 나왔던 케빈네 집과 교회가 그대로 있다. 그 부자 동네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어지간한 백화점보다 더 화려했다. 온 집을 반짝이는 전구로 덮고 창문마다 크리스마스 화환이 빨간 벨벳 리본과 함께 달려 있었다. 


에반스톤의 어두운 길가를 걸으며, 따스한 노오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들을 구경했다. 생각해보라. 타닥타닥 진짜 나무가 타오르는 따스한 벽난로 위에도 풍성한 초록 벽걸이 장식인 갈랜드가 걸리고, 생목 스프루스 나무에서는 진한 나무 냄새가 피어오르고… 가족들이 모여 크리스마스 파운드 케이크를 놓고 겨울 음료인 에그노그를 마시면서, 아들은 피아노를 치고 딸은 첼로를 연주하며 작은 ‘캐롤 가족음악회’를 여는 풍경을 말이다. 


그들은 커다란 생목 트리를 꼭 거실 창가에 세우고 여느 때와 달리 커튼을 젖혀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게 해 놓았다. 시카고의 한겨울에 추위와 코로나로 잔뜩 움츠러 들었던 마음이 컴컴한 와중에 푸른빛과 예쁜 조명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는 것에는 가슴이 울리는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beacon of hope, 희망의 등대였다. 일년 중 가장 밤이 길다는 동지를 향해 어두움이 더 깊어져가는 때에, 상록수의 푸른빛과 반짝이는 빛을 보는 것은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유래한 오랜 겨울 빛의 축제의 전통이다. 


절망과 암흑의 코로나 한겨울을 밝혀주었던 그 거실 창가들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잊을 수 없었다. 집집마다 밝혀서 마치 우리 서로 희망의 등불로 이 지극한 어둠과 슬픔을 몰아내자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겨울을 빛낸 생목 트리는 봄이 되어 눈이 다 녹을쯤이 되면 집집마다 앞마당에 내놓는 날이 있어, 정해진 날에 트럭이 거두어 간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트리를 살 엄두를 낼 수 있었다. 우리집에는 좀 크지만 조금 무리를 해서 180센티미터짜리 크리스마스 트리를 고속터미널 상가를 몇 번 다닌 끝에 신중히 골라서 샀다. 그리고 폭신폭신한 인형 장식들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볼 장식을 샀다. 우리집에는 트리가 ‘정착의 상징’이 되었다.



그리고 거실 창가에 트리를 세우고 아이와 함께 장식했다. 오랜 캐롤을 들으면서 말이다. 그건 내가 우리 아버지로부터 배운 우리집 전통이다. 크리스마스 시기가 되면 매년 꺼내 장식하는 반짝이는 그것들을 행복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는 내가 아빠가 되어 어린 아이와 함께 트리를 꾸민다. 아이가 이 춥고 어둔 겨울을 그저 마음 따스해 지는 오붓한 시기로 기억한다면,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아빠, 이렇게 반짝이고 예쁜 것들이 있어서 너무 좋아. 아빠 고마워~’ 아이의 뺨에 비친 노란 불빛을 보며, 평화를 빌어본다. 모두에게 평화가 있기를. 





사진-본인촬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