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미술관 한국실 개관
시카고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당도했다. 시카고 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 새로 한국실이 생겼다는 소식이다. 시카고 미술관에는 원래 한국실이 아주 작게 있었다. 내가 처음 미국에 간 게 2007년 여름인데, 그 때 미술관에 가니, 아시아 미술관 초입에 한국 미술품이 있고, 작은 명패에는 ‘Samsung’에서 후원하여 운영되고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때는 불과 몇 점의 고려 청자 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도 만리타향에서 내 나라 내 땅의 귀한 흔적을 이렇게나마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고 감사할 뿐이었다. 자리도 시카고 철도 위를 지나가는 다리로 된 아시아 미술관 초입에 놓여져 있어 유럽 미술을 관람하러 가는 모든 관람객들이 한 번은 지나가게 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었다.
일본 관련 유물은 그때부터 이미 어엿한 일본관으로 자리잡아, 널찍한 방 하나에 그네들 갑옷이며 병풍이며 그림이며 그러한 것들을 가져다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미국인들은 유럽에서는 영국,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주요우방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일본 문화에 대단히 호의적이고 아시아 문명 자체를 일본을 통해서만 이해하려는 경향을 보이곤 한다. 그래서 일본관이 진작부터 크게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유학시절에, 전에 여행 왔던 것을 기억하며 다시 시카고 미술관에 갔었다. 그런데 다시 보니 한국 전시 유물에 고려 청자 뿐 아니라 조선 백자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미 있었는데 내가 그제야 발견한 것일 수도. 특히 그 다리를 건너갈 때 눈길을 사로잡기 좋은 위치에 현대 작품 달항아리가 큼지막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문을 연 한국실을 뉴스로 보니, 꽤 널찍한 방을 할애해서 한국 관련 유물을 모아 전시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신라 서봉총 금관과 금 허리띠를 대여해서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연히 반짝이는 귀금속을 보게 마련이라, 고요한 고려 청자로 착 가라앉은 전시실 분위기를 바꿔준다. 화려한 금관과 허리띠가 찬란하게 빛을 발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신라와 고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빛나는 ‘고대와 중세’였다고 말이다. 많은 서구 유물이 그리스도교 전제 시대를 반영하듯, 오로지 그 일색으로만 만들어진 데 반해, 금빛 사슴뿔 모양과 나뭇가지 모양이 펼쳐지고 거기에 굽은 옥, 곡옥들이 찰랑이는 금관을 보면, 동양의 세속 문화의 번창이 대비될 수 있겠다.
(시카고 미술관 새 한국실 디지털 투어: https://www.youtube.com/watch?v=CyTk7WZDapQ)
사실 시카고에 한국 유물이 전시된 것은 매우 역사가 깊다. 1893년, 시카고에서 ‘만국 박람회’가 열렸을 때 거기에도 한국관이 있었고 한국 유물들이 전시되었다는 것이다. 고종 연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유물들의 행방을 모른다고 한다. 시카고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 유물이 3백점이 넘는다 하니, 어쩌면 그 수장고를 잘 뒤져보면, 그것들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 본다.
시카고 한인 뉴스가 전하는 동영상 소식에 보니, 한인 큐레이터도 나온다. 한국계 미국인으로 미국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한국 국립고궁박물관에서 3년간 홍보과장으로도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지연수 씨다. 군더더기 없이 차분하게 전시의 의미를 설명하는 큐레이터를 보고 있으니, 새삼 한국이 미국에 이렇게나 많이 알려지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세간의 관심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같이 전해온 뉴스 동영상 중에는 지난 추수감사절 거리행렬에 시카고 한인들이 참여한 장면도 있었다. 거대한 용 깃발 두 개를 앞세워 흔들며, 뒤로는 재미교포 학생들이 대취타대로 악기를 불며 따르고, 부채춤을 추는 무용단도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의 만듬새가 하나도 어설픈 구석이 없고, 모두 한국에서 공수한 것처럼 제대로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시카고는 여러 개의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박물관 캠퍼스’로 유명한 문화의 도시다. 이런 고상한 도시에 걸맞게 한인들이 나름의 문화를 더욱 소중히 여기고 가꿔서, 본국 저리가라 할 정도로 멋지게 펼쳐보이고, 또 이를 2세, 3세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 문화로 전수하고 있다니, 너무나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그들이 이 새 전시관을 방문해서 또 친구들에게 한국의 전통 문화를 일본 못지 않게 보여줄 수 있게 되었으니, 그들도 얼마나 기쁘고 가슴이 부푸는 일일까 싶다. 그런 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이, 천년도 넘은 조상의 유물이라니, 이 또한 정말 신비롭지 않은가.
사진- 고려 청자 '발우' 시카고 미술관.
관련기사- 시카고 미술관 한국 유물 https://www.youtube.com/watch?v=Lj3rJc8BA4c
시카고 추수감사절 한인 행렬 https://www.youtube.com/watch?v=ov0tMxzXm9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