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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반스토니언 Dec 05. 2024

역사적인 나날들

계엄령 사태에 부쳐

잠이 안 와 약을 먹고 잠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가 ‘지금 잘 때가 아니야. 윤석열이 계엄령 내렸어’라며 방으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모든 잠이 다 달아나 버렸다. 


계엄령이 무엇인지, 말이 어려워 잘 몰랐을 사람들도 있겠다. Martial Law, 즉 군법통치령이다. 민주주의 3심이 아니라 군법에 의한 단심만으로 사형도 결정되는 게 계엄령 치하다. 군법은 게다가 일반법보다 더 엄하지 않은가. 한마디로 ‘자비없는 심판’의 세계다. 


내 머릿속에는 당장 줄줄이 잡혀가는 야당 의원들 모습이 그려졌다. 휴교령이 내려진 모교 교문 앞을 지키는 계엄군 모습이 담긴 옛 역사 사진도 떠올랐다. 고문, 구타, 사형… 그런 것들이 당장 머릿속을 채웠다. 공포가 엄습했다.


안 그래도, 얼마 전부터 군경 주요 지휘부가 다 충암고 라인으로 채워졌다는 기사를 봤을 때부터, 내 머릿속에는 계엄이나 친위 쿠데타라는 단어들이 떠다닐 수 밖에 없었다. 요즘 유행하는 MBTI말고, 에니어그램이라는, 영성수도전통에서 계발된 성격검사가 있다. 그에 의하면 나는 6번 성향의 사람이다. 충성심이 강하지만 늘 걱정과 염려가 끊이질 않는 유형의 사람이다. 나는 무얼보든 항상 최악을 본다. 불길하고 사위스런 생각이 늘 가시지를 않는다. 내가 지하철 선로에 떨어지면 어쩌나, 다리가 무너지면 어쩌나, 고층빌딩에 불이 나면 어쩌나, 심지어 무사고 운전을 십년 넘게 했음에도 항상 교통사고에 대한 우려는 생생하다. 


그러니, 이 정권이 위태위태했을 때부터 걱정근심 많은 나는 이미 ‘남북 국지전으로 인한 계엄령’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 최악의 수단을 충분히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절대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평생을 자신을 ‘선과 정의의 화신,’ 정치인과 타인들을 범죄수사대상으로만 여기며 살아온 사람이다. 게다가 ‘법이면 다다’라는 사법근본주의자다. 뭐든 법에 안 씌여 있으면 고만인 사람. 무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정말 현실이 되다니. 소름 끼치는 밤이었다. 아시아 민주주의 최선도국가에서 갑자기 민주주의 불모지로 역변한 내 나라가 CNN에 영화처럼 방영되는 걸 상상했다. 우리말고 세계인에게는 결국 남일인 일 말이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쟁 뉴스의 주인공이 될 줄 상상하며 일상을 살았겠는가 말이다.


우리는 지난 20세기말을 겪으며, 뭐든 인류가 진보한다고 믿으며 살 수 있었다. 기술이 진보하고 경제는 발전하고 사회는 융성하는 모습만을 보며 자랐다. 그런데 필리핀에서는 두테르테가 독재를, 터키에서는 에르도안이 철지난 정교일치사회를 추구하더니만, 급기야 미얀마 군부에 의해 로힝야 족이 ‘제노사이드’를 당하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국군 기무사 댓글부대가 때지난 지역감정을 인터넷에서 선동하고, 박근혜 때는 21세기 대명천지 서울 한복판에 시위를 막겠다며 전투경찰의 군화발 소리가 낭자하게 다시 울려퍼지고, ‘아스팔트 우파’가 연일 광장들을 점거하는 것까지 목도했다. 그리고 세계민주주의 경찰국가라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폭정을 하고, 진짜 총든 폭도들이 미 의회를 점령하는 것까지도 두 눈으로 지켜봐야했다. 


그러니, 이제는 인류는 진보하기만 한다는 신화를 폐기처분하고, 오히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미련한 역사를 반드시 반복한다’는 새로운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상상하는 최악은 다 현실이 된다’는 것까지. 어쩌면 우리는 21세기에 핵 전쟁을 목도할지도 모른다. 남의 나라 수도가 활활 끓어오르며 수백만 명이 순식간에 산화하는 것을 뉴스로 볼지도 모른다. 모든 악한 것이 현실이 되는 세상이다.


나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한때 우리 부모님에게 4.19란 무엇이었을까, 5.16은 어떤 경험이었을까? 12.12 이후의 일상은 어땠을까, 그런 궁금증을 가진 적이 있다. 지난한 역사를 겪어오신 부모님 세대에게 그 역사적 현장들은 어떻게 경험되었을까가 궁금했다. 그래서 가끔 여쭤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가 발견한 것은 전면전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닌 한은, 모두가 도도히 흐르는 바쁜 일상 속에서 곱씹어볼 시간도 없이 지나가버리는 사건들이라는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내란 사태가 일어나던 날 밤. 나는 통탄의 뜨거운 눈시울을 참으며 내가 보는 뉴스 몇 장면을 갈무리해두었다. 그게 내가 경험한 역사의 현장이니까. 그리고 언제 다시 2차 계엄령이 발효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나날들을 윤석열이 탄핵될때까지 지내야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부서지기 쉽다’는데. 벌써 한 대 얻어맞아 균열이 간 우리의 민주주의가 떠오른다. 언제 다시 철퇴를 맞을지 모를 일이다. 


3일 밤부터 2차 계엄 아니면 탄핵안 통과가 될 때까지의 긴장되는 역사의 순간은, 생각보다 덜 추운 날씨, 뜬금없이 내리는 겨울비, 치워야하는 분리수거 쓰레기, 갑자기 손가락을 다쳐 고열에 시달리는 내 아이를 데리고 소아과에서 신경외과를 전전하며 병원을 다녀오고, 세 끼 밥을 차려줘야하는 바쁜 일상이기도 하다. 


아마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젊음과 역사는 그러한 일상 속에 빠르게 흘러 지나갔을 것이다. 오늘도 사람들은 출근하고 돈을 벌고 설거지를 하고 점심을 먹고 술을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역사적 나날 속의 하루를 보내었다. 오늘밤은 부디 평안무탈하기를. 우리들의 소중한 일상을 위하여.





사진- MBC 유투브 라이브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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