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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Jan 23. 2024

"비만하다"?

- 규칙에 준하는 확률값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신경망의 오작동?

한국어의 '하다'는 동사, 형용사, 기능 동사, 보조 용언, 파생 접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연구되고 있다. 그 정체가 무엇이건 간에 어근이나 어간에 결합하여 'X하다' 형의 단어를 형성한다. 특이한 점은 고유어의 경우 'X하다' 형태의 어휘가 그리 많지 않은데 그나마도 1음절 어근에 하다가 결합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착하다, 용하다, 참하다, 일하다' 정도가 퍼뜩 떠올릴 수 있는 예이다.


한국어 어휘론에서 '하다'가 한자어를 포함한 외래어 어근에 결합하는 강력한 경향성이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귀하다, 순하다, 역하다, 심하다' 등과 같이 고유어처럼 느껴지는 어휘들도 실은 한자 어근에 '하다'가 결합한 것들이다. 한자어의 경우에 '하다'가 결합한 어휘들은 대부분 동사라는 점도 다른 외래어 어근에 '하다'가 결합한 어휘들과는 다른 특징이다. '스마트하다, 블링블링하다, 그리드하다'와 같이 'X하다'가 형용사인 예는 한자어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관찰된다. (거의 없나? 당장 떠오르는 건 없다)


그래서 '비만'과 같이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한자어의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X하다' 형으로 사용하는 예가 별로 없다. '그 애는 비만이야'처럼 'X이다'형(비만이다)이 형용사로 쓰인다. '하다'는 동사 파생 접사의 기능이 강하다면 '이다'는 형용사 파생의 기능이 강하다고나 할까? '비만하다'는 표현은 일반적이지 않다. '저 녀석은 비만이군'이라고 하지 '저 녀석은 비만하군'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비만하다'라는 어휘가 출현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 영상을 보면 18초 재생구간에서 '비만하다'가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어서 '내 직관이 이상한가?' 싶은 생각이 든다.

재생구간 18초 - '비만하다'


이곳에 올리는 여러 글에서 발화 실수처럼 보이는 여러 사례가 나타날 수 있는 신경적 메커니즘과 문법의 상관 관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런데 '비만하다'와 같은 경우는 실수가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점에서 조금 독특하다.


인공지능의 신경망이 생물학적 신경망과 동일하지는 않겠지만 그 작동 결과는 상당히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비만하다'의 출현 사례 역시 확률적인 처리 중의 오작동일 가능성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규칙을 오작동이라고 여겨질 법한 결과를 생성하는 데 적용시킬 수도 있는 셈이랄까? 다만, 의문이 드는 점은 소위 '규칙'이라고 인식할 정도로 강력한(높은 확률의) 처리가 왜 오류 확률로 인식될 법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 식으로 작동할까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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