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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Feb 17. 2024

"뒤집기 만은 저는 쉽지 않을 거다"

- 통사 처리 추측하기: 통사 버퍼와 의미 버퍼

학부 3학년 때 앤드류 래드포드의 "변형문법"을 접하고 언어학에 관심이 생겼다. 학부 4학년 때는 신현정 역(Colin Martindale 저) "인지심리학: 신경회로망적 접근"을 접하고 Chomsky가 소위 '소설'을 쓰고 있는지로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 연구는 언어 산출 및 이해 과정에 두뇌에서 사용되는 인지 단위(요소)와 그 처리 과정에 대한 연구'라는 신앙에 가까운 신념을 가지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인지 단위'는 기의의 실체일 것이고 '처리 과정'는 그 관여 인지 능력 및 적용 순서가 관련되어 있음을 함의한 신념이다.


다만, 신경 세포가 정보를 표상하는 원리나 두뇌 신경 조직의 구조에 대한 현재의 학문적 발견에도 불구하고 낱낱의 신경 세포가 (언어를 포함한) 인지 처리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까지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언어 연구를 위해서는 고어 연구자들이 방언 등을 통해서 고어를 추정하는 방식과 유사하게 '재구'라는 추론적 방법을 이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서 발화 오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밥벌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그러냐면, '지적 호기심 때문'이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돌려 보낼 밖에...


하여, 이 공간에 발화 오류를 통해서 머리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관하 궁금증에 관한 몇몇 사례들을 남겨 두고 있는데, 아래 영상도 새로운 유형이 아닌가 한다. 

                

재생 10초부터 "뒤집기만은 저는 쉽지 않을 거다"

                    "뒤집기만은 저는 쉽지 않을 거다"


라고 했지만 원래는


                    '뒤집기 쉽지만은 않을 것다'


라고 하려던 게 아닐까? '저는'은 습관적으로 내뱉은 말이니 원래는 없어도 되는 말이다.


자료로 남기거나 별도로 수집하기는 쉽지 않지만 문법 표지의 순서를 바꾸는 발화 오류(실수?)는 일상에서 생각보다 많이 접하게 된다. 논항의 위치를 바꾸는 유형보다는 적은 것 같지만 심심찮게 보이는 유형이다. 위 사례처럼 관용적으로 함께 사용되는 문법 표지들은 처리 과정에서 간간이 실수를 유발하는 모양이다.

관용적인 용법 사이에 '저는'처럼 논리적으로는 없어도 무방한, 그러나 화자 자신과 관련이 있어서 어떻게 보면 발화 내용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표현이 끼어 드는 경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영어로는 'not easy  just to reverse'일까 'not just easy to reverse'일까? '만은'을 적당히 번역하기가 까다롭기는 한데 어쨌든 '가'가 빠진 상태에서 '만은'이 '가'의 위치에 나타났다. 통사적 처리 과정을 재구해 보면 '만은'과 '가' 둘 다 작업 기억(통사 처리 버퍼)에 올라 있고, 의미 표상에 적합한 목표 구문('~가 ~만은 Neg')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찰나의 오류(실수)가 생겨서 '만은'을 '가' 자리에 배치한 것 같다.


이 때, '저는'이 출현한 점도 흥미롭다. 일종의 언어 습관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고, 아니면 화자를 배타시켜 주장 내용이 어디까지나 주관적임을 나타내기 위한 의도적인 표현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관용적 용법('~가 ~만은 Neg') 중간에 나타났다. 만약 '저는'이 의도적인 표현이라면 특정 통사 구성(관용적 용법)을 통사 버퍼에서 뗐다붙였다 하는 중에 화용적 요소를 끼워 넣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약 '통사 처리 장치(신경망)'이 있다면 그 장치(망)는 단일 관념, 문법 기능, 정보 기능 등의 이질적인 기의(의미) 속성을 모두 활성화시켜 두고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물론 그러한 의미 활성화에는 해당 의미에 대응하는 형태의 활성화도 관여되었을 것이다.) 만약 위 사례의 발화가 일어나는 동안 두뇌 영상을 촬영하면 언어의 형식(기표)이나 의미(기의)나 정보적 위상(화용적 의미)가 언어 처리 과정에 모두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을까? 언어 처리에 관한 영상 연구에서 이와 비슷한 해석을 시도한 연구는 없는 것 같다(두뇌의 모든 영역에서 특정 언어 처리에 동일 정도의 활성화가 일어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기존의 neuro-linguistics의 영상 관련 연구들이 시사하는 바를 함부로 단정하거나 비평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보 처리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러한 처리는 매우 비효율적일 것이다. 


브로커 영역, 베르니케 영역, 전전두엽, 측두엽 등등 여러 두뇌의 하위 영역들이 주로 언어 능력에 관여한다(국재성, localized)는 사실과는 달리 의미는 위치는 특정하기 어렵다. 의미는 두뇌 전체 망 조직 속에 흩어져 있다고들 한다. 언어 처리에 있어서 베르니케 영역과 측두엽의 활성화에 대한 여러 연구 결과들은 혹시 언어의 의미가 아닌 언어의 형식이 존재하는 영역일 가능성은 없을까? 브로커 영역이나 전전두엽의 작업 기억이 수행하는 언어 처리는 그러한 기표들을 대상으로 일어나는 처리일 뿐이고, 해당 언어 처리에 대응하는 의미 해석은 의미 버퍼에서 활성화되어 있는 동안 일어날 가능성은 없을까? 의미 처리 신경망과 의미 처리 신경망이 별도로 존재하고 이 두 망조직이 기의-기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정보 처리의 효율성도, 발화 실수에도 불구하고 의미 해석에는 문제가 없는 현상도 다 설명이 가능할 법해 보인다.


이중(다중) 모어 화자들은 통사 버퍼와 의미 버퍼가 구별되어 있을까? 망 조직의 병렬 처리(AI 방식)가 당연한 시대에 모듈성 기반의 병렬 처리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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