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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랑 Feb 24. 2024

개그 담화 분석

- 웃음의 미학: 줄타기

화용론이나 기호학 관련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면 그라이스(Grice)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거다. 그라이스의 격률이라고도 하고 그라이스의 대화의 원리라고도 하는 맥심(maxim)이 있다. 양의 격률, 질의 격률, 관계의 격률, 태도의 격률 등을 잘 따라야 원만하게 대화가 된다는 뭐 그런 이야기다.


처음 이 격률을 접했던 때가 생각난다. '세상에 그런 대화가 얼마나 된다고 이걸 대단한 이론으로 가르치나...' 그러다 불현듯 이런 생각도 들었다. '현실과 이상은 다르고, 실제와 이론은 다르다고 했던가! 세상이 모양 꼴로 돌아가는 이유가 있었구나!' 교육 현장에서 특히 초등 교육 현장에서 도덕율로 가르쳐야 할 내용인데 대학을 졸업할 즈음에나 스쳐가듯 훑었다.


대학원에서 화용론을 수강하던 시절에 기말 보고서로 그라이스의 격률을 이용하여 개그를 분석하는 시도를 했던 기억이 난다. 보고서 구상 단계에서는 유머 담화 분석에 관한 기존 논의들을 정리하고 개그 꼭지 몇 개 분석해 보면 훌륭한 연습이 될 것 같았다. 뭔가 새로운 이야기를 할 만한 게 있으면 논문으로 꾸려 볼 요량도 있었으나, 막상 유머 담화 분석에 관한 기존 연구를 검토하면서 느낀 점은 제대로 된 분석 결과를 수록한 논문을 찾기가 어렵다는 점이었다. 개그나 유머를 분석하여 '영웅의 일대기'같은 유머의 구조를 추출하는 작업이 결코 간단치가 않다는 점을 깨달았다고나 할까. 유머 담화 분석의 결론은 '낯설게 하기 + 엉뚱함' 정도라고나 할까? 이런 저런 술어를 사용해도 본질은 이 정도의 거친 결론을 넘어서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요즘 같으면 AI한테 시켜보려고 했을지도... 뭔가 쉽게 나오려나??)


일상적이지 않으면서 지나치게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발상은 유머나 개그의 본질이다. 거창하게는 '부조화 이론' 혹은 '불일치 이론'이라고 하는데 이론이라기에는 너무 직관적이고 추상적이다. 감적으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나 할까! (심리학적 접근까지 고려하면 더 복잡해진다.) 여기에 세태에 대한 비평이 가미되면 풍자나 해학이 된다. 선을 넘을듯 넘지 않으면 까는 건지 아닌지 아리까지하다. 경계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재미도 있다. 아슬아슬할수록 더 재미지다. 언어적으로 줄타기를 하는 다양한 기법을 유형별로 정리할 수 있다면, 나아가서 문화권별로 비교 분석을 할 수가 있다면 화용론적으로 매우 훌륭한 연구가 될 터인데... 


물론 자칫하면 욕을 먹을 수도 있고 구설수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문제도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하기는 어렵다. 혹여 실수를 해도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직업군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실수를 하면 문제가 커지기도 한다. 구연자는 선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시청자는 선을 넘었다고 생각할 여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대중적으로 찬반이 갈려 있는 민감한 소재를 다룬다면 중립 포지션을 잘 지키면서 줄을 타야 한다. 아래는 줄타기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은 한 사례다. 구연자는 선을 넘었을까 아닐까?


https://youtube.com/shorts/J99yFX6MakY?si=veydBmOaZ1LWUiSy


이 영상을 두고 그라이스이 격률을 이용하여 나름의 분석을 시도해 보면 어떨까? 그라이스의 격률에 시대적(혹은 사회적) 코드를 처리하는 어떤 기법을 더 고려해야만 하지 않을까? 만만치 않아 보인다. 혹화용론 수강생이나 전공자라면 한번 시도해 보심이 어떠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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