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콜랑 May 23. 2024

"다른 만큼이 생각보다 크다"

- 문법 변화 국면 포착?


동영상에서 48초 재생구간을 보면,


    "다른 만큼 생각보다 크다"


라는 발화를 볼 수 있다.


'만큼'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보조사와 의존 명사 두 가지 용법이 있다. '만큼'의 의미는 수나 양의 '정도'이다. 의미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두 가지 용법을 가지고 있는데, '정도'가 상당히 자연스러운 명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만큼'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의존 명사로 사용되는 '만큼'은 통사적으로는 명사구를 이루지만 '~ㄴ/ㄹ 만큼' 전체 구성은 대체로 뒤에 오는 서술어를 수식하는 부사구에 해당한다. 전통적인 문법 범주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범주 전형성(원형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만큼'을 조사로 볼 것인가 의존 명사로 볼 것인가 아니면 둘의 성질을 다 가진 어떤 것으로 볼 것인가에 따라서 처리 방식이 달라질 수 있고 다양한 이론적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조차'가 서술어에서 조사로 변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변화해가는 과정 중에 있을 가능성도, 이론적으로는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이 문장의 '가능성도'에서 '도' 대신 '을'을 사용할 수 있는데 머리 속에서는 '도'가 우선 떠오르고 이는 과도한 사용이라는 검증을 통해 '을'로 바꾸려고 시도한다. '도'의 진정한 기능은 정보 처리와 관련하여 맥락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 같은데 이런 설명에 대해서 아시는 분은 손~ ^^). '만큼'이 의미상 '정도'와 별 차이가 없고 실제로 '정도로'로 대체할 수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통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만큼'은 조사에서 명사로 발달해가는 과정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


위 영상의 예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 주는 사례일까? 아니면 단순한 발화 실수일까?


재미잇는 발상은 발화 실수일 경우이다. 발화 실수라면 '정도' 대신 '만큼'이 쓰였다는 말이 된다. 머리 속에서 언어 처리를 하는 과정에 그런 실수가 발생했다는 뜻일 것이다. 의미 처리 영역과 (음성)형태 처리 영역이 병렬적으로 처리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큼(형태)}-[정도(의미)]-{정도(형태)} 처럼, 하나의 의미에 둘 이상의 형태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두 형태 중 어떤 형태를 사용할 것인지의 여부는 맥락에서 주어지는 가중치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위 영상의 경우 48초 이전 구간에서 '만큼'이라는 표현이 꽤 자주 나온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머리 속에서 '정도'를 산출하여 발화했을 것이나 '만큼'이라는 형태가 과하게(?) 활성화되어 있어서 그 영향으로 '만큼'이 사용된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러한 가설이야말로 문법 변화의 실제에 접근한 것이 아닐지...


작가의 이전글 "싸다고 고객들이 안 사는 거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