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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B Dec 19. 2022

닮고 싶은 '누군가'를 따라해보기 - 멋진 삶의 태도란

02 나의 전략- 일상을 관찰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처럼 글을 써보자

매일 브런치에 글을 써보겠다는 야심 찬 야망은 하루 만에 깨졌다.

글을 계속 성실하게 쓰면서 글쓰기 실력을 늘리겠다는 멋진 삶의 태도는 나와 거리가 아직 멀다.


브런치 글쓰기 화면은 늘 켜놓았지만 빈 화면에 내 생각을 담고 싶은 생각 뒤로는 시험과 과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불안감이 따라왔다. 그리고 축 처진 채로 우울한 마음을 지닌 채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게 더 열심히 살라고 재촉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몇 달간 가르친 학생의 프랑스어 시험 합격 소식에 매우 뿌듯했고 며칠 전 시험에서 4시간 동안 6쪽의 답안을 논술할 수 있어서 스스로 놀랐다. 답안의 구성은 30분 만에 이루어진 것이고 아마 다른 프랑스 학생들처럼 명확하게 쟁점을 부각한 후 세세한 모순의 지점을 밝혀냄으로써 주어진 문제에 답을 할 수 없다는 나의 한계를 인식하면서 쓴 것이라 답안의 내용은 곰곰이 생각해도 불만족스럽다. 하지만 작년 한 해 동안 최대로 쓴 답안의 양이 4시간 동안 A4 크기의 4쪽인데 반해 2쪽이나 더 썼으니 33.3%로 더 성취한 셈이다. 1쪽이라도 더 길게 써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썼는데 남은 시간 동안 결론까지 포함한 형식상의 구성요소는 모양새를 갖추어서 마무리했으니 하루 동안은 계속 뿌듯했다.


하지만 성취를 양화 시켜도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여전하다. 대신에 무게는 줄어들어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다른 나를 꿈꾸고 소망할 수 있었다.


갑자기 전에 유튜브에서 자우림 김윤아 씨가 MC였던 요시모토 바나나의 인터뷰를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인터뷰를 보고 글 쓰는 작가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의 말 하나하나와 시선이 무한정 따뜻하지는 않지만 삶을 관찰하고 살아가겠다는 힘을 내주는 역할에는 충분할 정도로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글을 꼭 쓰지 않아도 삶은 굴러간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내가 느끼는 이유 모를 무기력의 원인이 글쓰기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이유 모를 가설을 세우고 싶어졌다.


글을 쓰지 않아서 혹은 글을 쓰지 않아서 스스로 길을 잃은 게 아닐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상상 속 인물들과 인터뷰를 함으로써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인물들이 스스로 말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글을 쓰는 능력을 자연스레 갖추고 있는데 이러한 작은 시작점들을 발견하지 못해서 나아가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무튼 내 머릿속에 있는 이야기를 시작해 줄 인물들에 대해 고민해봐야겠다. 그저 나를 위한 단편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가는 이야기 속의 상황들을 마주하며 "어쩌다가 일이 이리됐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플롯을 치밀하게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건들을 알아보려는 욕망의 첫 질문으로 이만한 게 없을 것 같다. 철학자 미셸 푸코의 방법론적 표현으로는 계보학적 작업에 해당하겠지만, 이런 거창한 표현 없이도 우리는 사건을 어떻게 스케치해볼 수 있을 것인지 이 질문 하나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당연히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도 이게 다음 글을 쓸 수 있고 다음 문장을 이어가려는 제일 기본적인 실천일 것이다. 내 생각을 덧붙이자면 멋지지 않아도 초라한 문장들과 어휘들의 실패를 견디면서 일단 질러보고 나중에 여러 번 고쳐야 한다. 처음부터 멋있게 살고 멋있게 쓰겠다는 허세를 버리자.


사람이 유일하게 마지막까지 가질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자유입니다. 마음의 자유가 없는 매일은 살아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죽이고, 꾹꾹 참으면서 매일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자유의 바람과 향기를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이 멋진 말이 더 마음에 남았다.


상실의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매일을 견뎌내며 시간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동안 점점 딱딱해지는 마음의 덩어리(카타마리)를 책을 읽는 동안만이라도 풀어줄 수 있다면 괴로움이 조금 가벼워지지 않을까?


나에게는 오히려 후자가 글 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김연수 작가의 글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이 위로하고 싶은 마음, 또는 글을 쓰는 사람에게 생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 배기게 한다니 그런 힘에 기대 보기로 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한국어 번역을 지금 내가 사는 도시에서 쉽게 구할 수는 없어서 아마 일주일 후에 한국의 도서관에서 그의 글을 읽을 것이다. 삶을 담담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담담한 어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그만의 글을 발견하기를 기다린다. 그동안 나는 다시 멋지지 않은 글들이 내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길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되도록 매일 이곳에 글을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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