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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 커리어 개발 매니저가 되기까지

3) 캔자스 시골 대학생활

by Sean Lee

미국 지도에 대각선을 그어 한가운데를 찾아보면 캔자스 주가 나온다. 그 캔자스에서도 인구 3,000명밖에 안 되는 Sterling(스털링)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고, 나름 규모가 있었던 신시내티조차 시골 같다고 느꼈던 내게, 스털링은 정말 상상조차 안 되는 시골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사람 인구보다 소(cow) 가 두 배 많다는 캔자스 주. 모든 것이 새로운 이곳에서, 이제 막 어학연수를 마치고 대학생이 된 내게 어떤 일이 닥칠 것인가?

신입생은 150명도 안 되었던 것 같다. 신입생 환영회 겸 피크닉을 근처 공원을 전세 내어 진행했는데, 그 자리에서 빨간 머리 백인 룸메이트 Joel과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한 가지 깨달은 건, 미국 친구들도 역시 대학교는 처음이고 똑같은 사람이라 다들 수줍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예외는 어디에나 있다.) 그 친구 역시 집은 캔자스가 아니라 조금 떨어진 미주리에서 왔고, 비슷한 처지라 우리는 더 대화를 나누며 친해졌다. 피크닉이 거의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데 내가 목이 좀 마르다고 했더니, 지나가는 작은 말까지 놓치지 않은 내 룸메이트는 언제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오래된 차를 몰고 무려 20분을 달려 맥도널드까지 데려가 주었다. 이런 호의가 정말 황송하고 고마웠다.


친구들의 호의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봄방학, 추수감사절 등 최소 2~3일 이상 쉬는 연휴가 오면 대부분의 친구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신기하게도 그럴 때마다 친구들이 나를 그냥 두지 않았다.
“션, 너 이번 봄방학 때 뭐 해?”
“계획 없으면 우리 집에 같이 가자!”
이렇게 초대를 받아서 방문한 미국 친구 집이 몇 집이나 된다. 친구 부모님과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 너무 편해서 나도 모르게 깜박 잠들기도 하고, 친구 아버지가 직접 해 주신 엄청나게 맛있었던 바질 파스타의 풍미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반대로 생각해 보았다. 내가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었다면, 고향을 떠나 한국으로 유학 와서 기숙사에 있는 외국 학생을 설날이나 추석에 우리 집으로 그렇게 쉽게 초대할 수 있었을까? 이런 따뜻한 친구들 덕분에 연휴에 한 번도 기숙사에 홀로 남거나 갈 곳을 못 찾아 발을 동동 구르는 일 없이, 늘 따뜻한 대학 생활을 보낼 수 있었음에 지금도 감사하다.



[대학교 기숙사 앞에서 큰 고드름 들고 찍은 사진]


그래도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공부였다. 비록 작은 시골 대학교였지만 최선을 다해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는 욕심이 있었다. 한국에서 수능을 보고 대학에 진학했던 경험 덕분에 도서관 가는 것은 습관처럼 몸에 배어 있었고, 미국에서도 도서관에서 버티는 건 자신 있었다. 영어로 하는 대부분의 과제는 남들보다 두 배는 더 시간이 걸리기에, 무조건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공도 선택할 시기가 되었는데, 재밌어 보이는 역사(History) 전공과 정치학(Political Science) 부전공을 택했다. 대부분의 과제가 reading(읽기)이었지만, 다행히 밤에 할 수 있는 일이 TV 시청이나 탁구 치기 정도밖에 없었기에, 어떻게든 도서관을 선택하며 마음을 다잡고 공부했다. 그 노력이 결실을 맺어 교수님께 칭찬을 받거나, 똘똘한 미국 친구들과 견줄 만큼 중간·기말고사 성적이 잘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시골 마을 캔자스 생활이 슬슬 지겨워질 무렵, 워싱턴 D.C. 에서의 좋은 인턴십 기회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캔자스의 별이 유난히 밝게 빛나던 어느 밤, 나의 발걸음은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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