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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후 Aug 09. 2021

10년 만의 편지

유령 K

너에게


  안녕, 너에게 편지를 쓰는 건 참 오랜만이야. 아마 마지막으로 썼던 편지가 우리가 같이 교육받았을 때 주고받았던 편지였는데 말이야. 그때 쓴 편지들은 지금 아직도 책장 맨 위 상자 속에 간직하고 있어. 얼마 전,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그 편지들을 꺼내봤어. 너는 내가 쓴 편지를 참 좋아했지. 그렇게 공감능력이 부족한 로봇인 내가 편지를 쓸 때만큼은 달라진다고. 글씨가 참 이쁘니 사실은 마음도 이쁜 거라고. 너는 모르겠지만 사실 나는 글씨를 그렇게 잘 쓰지 않아. 그때는 잘 쓰고 싶어서 몇 번이나 편지를 다시 썼는지 모르겠어. 물론 덕분에 내 글씨체는 훨씬 나아졌어. 


내가 우체국에서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이 지났지만 편지와는 거리가 점점 멀어졌다는 게 어쩐지 우스워. 우리는 더 이상 편지를 쓰지 않으니까. 나는 여전히 편지를 분류하는 일을 하고 있어. 매일 똑같이 일정한 분량의 편지를 가져와서 분류하는 일. 가끔 매일같이 기계적으로 편지를 분류하다 보면, 오늘과 내일이 똑같은 것처럼 느껴져. 


얼마 전에는 포상을 받았어. 10년 동안 하루도 실수하거나 빠짐없이 편지를 분류했다고. 사실 박수를 받으면서도 그렇게 기쁘지는 않았어. 우체국 직원들이 뒤에서 나를 ‘로봇 주제에’라고 부른다는 걸 알고 있거든.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쓰진 않아. 나는 일하면서 누군가와 별로 말을 섞지 않으니까, 그렇게 불려도 할 수 없겠지 싶어.


하지만 매주 받는 편지는 나를 너무 답답하게 해. 혹시 내가 말했던 편지 기억나? 매주 똑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는 사람 말이야. 누가 보내는지 발신인이 적혀 있지 않아서 나는 사실 그 편지를 쓴 사람이 스토커가 아닐까 의심했었잖아. 편지를 받는 사람은 반송도 할 수 없을 테니 말이야. 매주 아침에 그 편지를 분류할 때면 한없이 마음이 답답해져. 그 편지는 내가 이 시간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 같아서.


실은 얼마 전부터 이 답답함에서 해방되고 싶었어. 그 편지가 앞으로도 매주 온다면 나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거든. 물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겠지. 하지만 더는 참을 수가 없었어. 그 편지만 없다면 조금은 이 답답함이 사라지지 않을까, 이 시간 속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 같아. 그리고 얼마 전에 그 편지가 발송된 주소를 찾아갔어


평범한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는 골목이었어. 집에 도착해서 문을 두드리니 초췌한 모습을 한 어느 여자분이 문을 열어줬어. 나는 혹여나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 정확하게 있는 사실만을 전달했어. 우체국에서 일하고 있으며 매주 발신인 불명으로 발송되는 편지의 정체에 대해서, 혹시나 어려움이나 곤경을 겪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어. 그 편지를 받는 대상은 세상을 이미 떠났고, 편지를 보낸 사람은 대상의 어머님이라고. 나는 그 자리를 마무리하고 나와 버렸어. 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냈던 게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거든. 


집에 와서 답을 받지 못하는 편지를 쓰는 사람의 마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어. 그걸 알고 싶어서 나는 지금 너에게 10년 만의 편지를 쓰고 있어. 너는 이 편지를 받을 수 없지만, 어쩌면 네가 살아있다면 편지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네가 내 곁을 떠난 이후로 어쩌면 나의 시간은 거기서 멈춰있었던 거 같아. 


네가 폐기된 순간을 나는 똑똑히 기억해. 로봇에게는 감정이 필요 없다며, 감정에 민감한 로봇들을 전부 폐기했던 순간 말이야. 너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쓴 편지들을 전부 숨겨놨었지. 네가 폐기되는 순간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 이 편지를 쓰면서 어쩌면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아마도 이렇게 답장을 받을 수 없는 편지를 쓰는 일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렇다면 이런 편지를 쓰고 싶게 된 나는 로봇인 걸까? 인간인 걸까? 


아마도 이 편지의 발신인이 밝혀진다면 나는 폐기되겠지. 그렇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적어도 너를 사랑했던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물론 그들 중에서는 어차피 인간이 설계한 로봇일 뿐이라며 믿지 않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하지만 그들도 언젠가는 믿게 되겠지, 인간과 로봇을 구분하는 기준은 신체가 아닌 마음이라는 걸, 그리고 우리에게도 마음이란 게 있다는 걸 말이야.


ITX-46 씀



글쓴이: 유령 K

소개: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사라졌다.


매거진 '추후'

이제 막 서른이 된 친구들이 모여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영화, 음악, 문학 등 다양한 주제에 관한 서른의 시선을 담은 글을 매주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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