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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석 Mar 24. 2021

"정상적"에 대한 강박관념

우리는 왜 비정상일 수 없을까?

출처: www.brainyquote.com

21세기 죽음의 스트레스

스트레스가 난무한다. 사회적 지위나 재산과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돈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정신의 문제다. 정신질환 상태의 정의부터가 어렵다.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부터 이상인지도 알기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트레스로 고통을 받지만 의사를 만나 상담을 받거나 치료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매우 적다. 대부분은 쉬거나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면 이러다 말겠지 한다. 그러면서 하나 둘 죽어간다. 그러니 분명 존재하는 위험이고 질환이다.

사고로 크게 다친 어떤 위급한 환자가 있다고 하자. 만일 의사가 손을 써 보지도 못하고 사망을 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크게 안타까워할 것이다. 빨리 구급차가 와서 병원에 데려갔더라면 혹시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다. 그런데 유독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 질환을 앓다가 스스로 죽음에 이르게 된 사람들의 소식에는 의사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나 적기에 치료를 받지 못한 안타까움보다는 그 사람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어려운 상황만을 마음 아파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쩌면 그런 죽음도 적기에 의사를 만났다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OECD 통계에 의하면 2019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6.9명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이다. OECD 기준 인구로 치환한 표준화 자살률을 보면, 한국은 OECD 평균 자살률인 11.3명보다 2배 이상 높은 24.6명을 기록했다. 2003년부터 2019년까지 2017년 한 해를 제외하고 꾸준히 1위를 지키고 있다.

왜 사람들은 정신 질환을 인정하지 않고 치료도 거부하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보수적인 문화와 주위의 불편한 시선과 편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앓아도 되는 병이 있고 그렇지 않은 병이라도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정신 질환은 절대 내가 앓을 수 없는 앓아도 안 되는 병인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의사를 만날 필요도 없고, 무조건 언제나 정상인인 것이다. 그래야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렇게 믿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연령대가 높아지며 같이 상승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주위에서 중년이나 노년의 사람들이 스스로 정신과 의사를 만나 상담하는 것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나 자신은 30대에 정신과 상담을 통해 큰 도움을 얻었고, 아내도 산후 우울증 증세가 있어 바로 의사를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으로 주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의사와 상담을 권하지만 한 명도 조언을 듣는 사람은 없었고 이런 이야기 자체를 상당이 불쾌해하는 느낌을 받았다.


과부하의 일상화

"쉬면 뒤처진다.", "성공한 다음에 달콤한 휴식이 있다.", "너 잘 때 남은 더 열심히 공부한다.", "쉬는 것은 게으름이다.", "피곤에 지친 삶이 보람차고 성실한 삶이다." 등등 이런 말들은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수도 없이 듣는 말들일 것이다. 성공이라는 허황된 희망. 제대로 정의되지 않은 그리고 자신과 합의되지 않은 성공이라는 목표를 우리는 아이들에게 또 우리 자신에게 강요하면서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피곤에 지쳐 그렇게 쓰러져 자도 그건 학생들의 게으름이고 교사에 대한 모욕이었다. 쓰러진 학생들을 위로해 주는 어른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밤새 일을 하고 다시 아침 일찍 출근하고 새벽까지 회식을 하고도 또다시 정시 출근하며 우리는 지쳐도 절대 스트레스로 쓰러지지 않는 정상적인 인간임을 사회에 입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오죽하면 "바쁘시죠?"라고 묻는 게 인사가 되었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매일 초인적인 능력을 보여주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2018년 이것은 주요국 웰빙지수 순위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는 23개국 중 꼴찌이다.


나는 "부자 되세요?" 또는 "대박 나세요?"라는 인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우리가 존경하고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인사는 아니라고 생각해서다. 누군가 사업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면 "항상 건강 챙기시면서 하세요"라든가 "즐기면서 하시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더 즐겨 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내가 아끼는 누군가가 전쟁에 나간다고 상상해 보자. "꼭 승리하고 돌아오세요!"라고 하는 것은 그 사람을 아끼는 인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신에 "무사히 돌아오세요!"라든가 "꼭 건강하게 돌아오세요!"라는 말이 그 사람을 위한 인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정상적 사회에서 생존하기

이미 우리 사회 또 다른 여러 나라에서 행복하게 일하며 산다는 것은 너무 큰 희망이 되어 버렸다. 그저 생존 자체를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일하며 급여를 받아 살아간다. 사업은 합법적 노동 착취 방식이다. 절대로 번만큼 공평하게 나누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도록 법으로 보호해 준다. 회사의 규모와 매출이 클수록 조직 내 극소수의 인원들이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문제는 대부분은 그렇게 챙겨가도 만족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돈의 특성상 가지면 가질수록 더 욕심이 나는 탐욕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 조직에서 공정한 분배란 없다. 더 큰 문제는 많은 나라에서 국가 차원의 공정한 분배도 거의 없고 소득 격차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일한 만큼 그리고 내가 기여한 만큼 공정한 몫을 받을 수 없는 조직, 사람들이 동일한 출발선에서 경쟁하지 않는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의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가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정상적인 사람일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신체적,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계속 앓고 있는 상태일 수 있다. 건강 검진을 통해서 신체가 겪는 병을 알려고 노력하듯이 정신이 겪는 병을 찾으려는 노력 그리고 치료하려는 노력은 이런 고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정상적인 일이 아닐까?

그리고 사회가 정한 정상적이라는 환상을 버리고 우리 자신을 좀 더 아끼며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남들의 다른 점을 인정하고 또 나의 다른 점을 당당히 보여줄 수 있는 자신감도 있으면 좋겠다. 때로는 비정상적이어야 정상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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