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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24. 2022

실의 끝을 찾아서

01. 죽음에 대한 첫 기억

“죽음을 떠올린 건 언제부터였나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퍽 쉽지 않다. 그냥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감정처럼. 뇌파검사 결과지를 보던 교수님은 내 유년시절에 대해 물었다. 보통은 죽을 뻔했던 기억이 있거나 엄청난 트라우마가 있는 이들에게서 발현되는 예민함의 수치가 보인다고 했다. 글쎄요. 저는 전혀 모르겠는데요. 사실이 그랬다. 나는 유년기에 죽을 뻔한 적도,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적도 없었다.      


처음 신경정신과에 엄마 손을 붙잡고 방문했던 것은 10살 때였다. 하지만 그 훨씬 전부터 나는 온갖 것이 두려운 아이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엄마는 물론 우리 가족 모두가 수없이 많은 추측을 내놓았다. 네 살 무렵에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기억이 나에게 너무 강렬했을 거라는 주장이 가장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정작 나는 외할머니에 대한 즐거운 기억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너무 희미해서 지어낸 기억으로 오해받지만)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산소에 갈 때마다 엄마가 너무 울어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은 생각을 했던 것 같기는 하다.     


만약 이 감정과 공포가 나의 기억과 무관하게 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던 것이라면 짐작 가는 사건이 하나 있기는 하다. 아마 시간적 배경은 93년 가을 즈음일 것이다.      



12년 만에 늦둥이를 가진 (그게 나다!) 우리 엄마는 몸이 본래 허약한 체질이었다(고 한다.) 그뿐인가? 혈액형도 RH- 여서 이미 첫째인 나의 언니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신생아에게 수혈할 피를 구하러 백방으로 뛰어다닌 전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30대 후반에 아이를 낳는 일이 흔하다지만 30여 년 전에는 모두가 만류하는 일이었고 의사와 아빠는 물론 외할머니도 태아 산모 모두가 위험할 수 있다고 엄마에게 으름장을 놓았더랬다. 그렇게 모두의 걱정 속에서 굳세게 임신을 유지하던 어느 날, 일이 생긴 것이다.     


임신 초기 임산부에게 복통이 이어졌고 외할머니는 엄마를 끌고 응급실로 향했다. 딸의 안전을 위해 지우라고 했던 손주였지만 포기할 수 없으셨던 우리 할머니. 지나가는 아무 의사나 붙들고 진찰을 받았는데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할머니, 이 산모는 이미 유산됐어요.”     


이야기가 거기서 끝난다면 아마 나는 세상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할머니는 그럴 수 없다며 지나가는 아무 의료진이나 붙들고 아기가 위험하다고 뭐라도 해달라고 하셨다. 그제야 간호사가 와서 애를 올려붙여주는 주사라며 약을 하나 놔줬다고 했다.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애 떨어진다는 말의 반대말 같은 건가? 엄마도 할머니도 침통한 표정으로 행여나 내가 잘못될까 꼼짝을 않고 있는데 아까 진찰을 했던 의사가 지나가더니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저 산모 주사 바늘 빼요! 이미 떨어진 애라니까?”     


아이고 의사 양반, 오진일세.라고 말해주고 싶다. 실제로 그 주사를 끝까지 맞았는지 아니면 귀가 조치를 당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의사 입에서 두 번이나 사망 선고를 받았던 나는 약 8개월 후 생각보다 건강하게 태어났다.



이 이야기는 사실 그저 ‘얘가 그렇게 태어난 애예요’라는 엄마 인생의 무용담으로 존재했었다. 그런데, 요 근래에 상담을 받던 중 나는 이 이야기를 불현듯 떠올렸다. 아마 내가 기억하든 못하든 내 삶에서 죽음에 대한 첫 경험이었을 테다. 그것은 꽤나 중요한 사실이 되었다. (나의 신경정신과 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가끔 아이들이 뱃속에 있었을 적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가 더러 발표된다. 그게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살면서 사라질뿐더러, 나의 경험은 아마 너무나 세포 시절의 일이라 내가 그 기억을 갖고 죽음을 간직한 채 태어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태어나기 전 나는 이미 죽을 뻔 한 경험을 가졌다는 것이다.

    

“죽음을 떠올린 건 언제부터였나요?”라는 질문의 답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건만, 어쩐지 해답지도 없는 그 문제를 풀어 보고 싶어졌다. 정말 그때부터였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책임을 나에게 오진을 내린 의사에게 돌리고 싶다. 


너 때문에 여태 죽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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