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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Nov 24. 2022

우스운 게 딱! 좋아!

03. 우스운 죽음 이야기

90년대생이라면 모두 알 법한 만화 시리즈가 있다. 학교 도서관이며 당시 병원 대기실, 미용실 할 것 없이 아이들이 가는 곳에는 어디든 있는 책이었는데, 바로 ‘딱! 좋아!’ 시리즈다.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책은 『무서운 게 딱! 좋아!』부터 『우스운 게 딱! 좋아!』 『쇼킹한 게 딱! 좋아!』 등등등 무한한 콘텐츠로 당시 초등학생들을 끌어당겼다.      


일찍이 스스로의 쫄보 근성을 너무나 잘 알았던 나는 몹쓸 호기심으로도 무서운 시리즈는 절대 읽지 않았다. 온갖 귀신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죽는 이야기가 줄줄이 나오는 책이었으니까. 그래서 항상 『우스운 게 딱! 좋아!』 같은 책은 내 차지였는데, 거기서 본 이야기 하나는 훗날의 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야기는 이렇다. (내 기억에 의존한 이야기다)     



평생을 티격태격 싸우며 살던 노부부가 있었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할아버지에게 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죽으면! 무덤에서도 나와서 당신을 괴롭힐 거유! 두고 보시게나!’     


물론 할아버지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지만 어찌 됐건 정말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다. 상을 치르고 자식들이 눈물을 닦으면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는 이제 큰일 났어. 어머니가 맨날 죽어서도 무덤에서 기어 나와 아버지 괴롭힐 거라고 했잖아. 이제 어떡할래?’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에 아버지에게 던지는 농담이었을 터. 역시나 할아버지는 자신 있다는 듯이 ‘괜찮아!’하고 말하는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할아버지의 한 마디가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다. ‘내가 관을 뒤집어서 묻었거든!’     


자식들은 정말 못 말린다는 듯 혀를 깨물며 고개를 젓고 할아버지는 뿌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다음 컷에는 정말 관에서 나온 할머니가 땅을 파고 있다. (애초에 관 뚜껑을 열었다는 게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런데 땅을 팔수록 더 깊은 땅 속으로 향하는 그림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정녕 이게 우스운 얘기라고? (사실 어느 시리즈였는지 모르겠으나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세상에! 대체 이거보다 무서운 일이 어딨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무서운 이야기가 틀림없다.   

  

1) 일단 죽었던 할머니가 의지대로 살아났다. (으악)
2) 관을 뒤집어 묻어서 땅을 아무리 파도 무덤 밖으로 나올 수 없다. (기절)


할머니 입장에서 이것은 호러 서스펜스 스릴러인 셈이다. 사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지만, 대부분의 무서운 이야기가 그러하듯 공포감은 생각보다 상식과 논리로 쉽게 잦아들지 않는다. ‘에이 흙으로 다지고 꽝꽝 닫혀있는데 관 뚜껑을 여는 게 말이 돼?’ 아니 그보다 전에 ‘염 할 때 얼마나 꽁꽁 사람을 수의로 싸매는데 어떻게 좁은 관에서 움직여?’ 이런 질문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오히려 반대였다.      


이후 장례를 치를 때마다, 

입관식에선 ‘관이 너무 좁은 거 아냐?’ ‘손을 저렇게 묶으면 관 뚜껑 못 열 텐데’라고 혼자 상상하고 하관식에선 ‘그래도 뭔가 뚜껑을 열 수 있을 만큼의 공간은 주고 흙으로 채워야 하지 않나?’ ‘곡괭이라도 넣어 드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등등의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생각을 하곤 했다.     


사실, 누가 들으면 내 어깨를 찰싹찰싹 치면서 웃어넘길 이야기겠지만 나는 제법 진지하다. 우리 모두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죽음 체험이라고 관에 들어가 보는 경험은 있을 수 있어도 정말 온몸이 묶인 채 관에 담겨 땅에 묻혀본 적은 없으니까.


사람은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나는 여전히 그 우스운 이야기가 준 공포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했다. 살면서 나만 웃지 못하는 웃픈 상황들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이게 나만 웃기지 않은 걸까? 아니 애초에 우스운 죽음 이야기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있는 걸까?


나는 여전히 우스운 게 딱!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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