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검사
공황장애를 겪는 많은 환자들은 본인의 건강을 의심한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머리도 아프고 어지럽기도 하고… 아무튼 온갖 통증을 다 겪는다. 그 무렵 의료 쇼핑이 시작되는 것이다. 나 또한 이 분야에서는 남들에게 뒤지지 않는 화려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원인 모를 증상의 시작은 열 살 때 발현된 어지럼증이다. 다른 증상은 아무것도 없이 그냥 어지러움을 계속 느껴야 했다. 나의 부모님은 내 증상이 일반 병원에 갈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대학병원 소아과를 찾아 결국 입원을 했다. (그게 나의 의료쇼핑의 시작...) 원인 불명의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를 보면서 의사 선생님은 당연하게도 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바로 MRI였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검사 비용이 훨씬 비쌌고 당연히 보험 처리도 되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그때의 나는 앉아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는데.
뭣도 모르고 검사 당일 베드에 누워 검사실로 옮겨진 나는 처음으로 거대한 MRI 기계와 마주한다. 두둥. 지금도 그렇지만 검사실은 왜 그렇게 썰렁하고 추운 걸까? 엄마와 떨어져 시키는 대로 얌전히 누워 있는데 선생님이 내 머리가 움직이면 안 된다며 머리에 뭘 씌우는 것이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갔다. 그러니까 텅 빈 썰렁한 방에, 이 거대한 원통 기계, 나 혼자, 보호자 없음. OMG.
검사가 시작되니 더 가관이었다. 좁은 원통에 날 넣더니 이상한 기계음이 계속 들린다. 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나만 이곳에 두고 선생님이 퇴근하면 어떡하지? 내 마음대로 이 공간을 나갈 수는 있는 건가? 문이 잠겨있으면? 만약 며칠간 이렇게 있어야 한다면? 죽는....건 아닌가?’
꼼지락 움직였던 이유는 움직일 때마다 선생님이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마이크에 대고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아, 거기 누군가 있군요. 아직 가지 않았군요. 그걸 확인하기 위해 나는 움직였고 당연히 검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어떻게 되었냐고? 결국 나는 검사를 받지 못했다. 수면제를 먹여 볼 생각까지 했으나 의사 선생님은 나를 좀 지켜보기로 결정했고 나는 퇴원 후 며칠을 그렇게 더 누워서 지내다가 곧 앉았고 이내 서서 잘만 뛰어다녔다. (맹세코 꾀병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MRI는 무섭다. 이젠 저 선생님들도 퇴근 시간 전에는 나를 두고 집에 갈 수 없고, 내 뒤에는 검사 예약자도 줄을 섰으며, 며칠간 원통에 갇힐 일 따위는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좁고 답답한 기계는 한순간에 나를 죽음의 공포까지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최근 나는 그 모든 공포를 이겨내고 MRI 촬영에 성공했다. 수면제를 미리 먹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었고, ‘선생님… 혹시 개방형 MRI 기계는 없나요?’라고 물어보는 연습을 연거푸 했지만 내뱉지 못하고 원통에 몸을 맡겼다. 결과는 정상. 그래도 나는 아직까지 자주 어지럽고 두통약을 달고 산다. 죽을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아마 당분간은 아니겠지. 죽지 않으려고 하는 검사가 이토록 죽을 것 같아서야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