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더 짙은 어둠 속으로 자꾸만 빠져든다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었다. 나에게 이 글 쓰는 행위는 그러니까 일종의... 무료 상담 치료 같은 느낌인데, 퍽 괜찮은 상태로 위장해서 한동안 잘 살아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위장에 불과해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들킬 수밖에 없다. 약도 진료도 상담도 뭐든 꾸준해야 효과를 본다는 말은 그저 광고 문구가 아니다. 아무튼 나의 상태가 썩 좋은 모습이 아닌 이 시점에서 보다 깊숙하게 내장기관 어디쯤 숨어있을 감정의 씨앗까지 파헤쳐보려 한다.
나는 어둠에 약하다.
어릴 적부터 불을 끄면 쉽게 잠들지 못했고 온갖 이상한 상상을 하며 울고불고 엄마를 깨우기 일쑤였다. 어떤 생각이었냐고? 이 방 전체가 나의 관이 된 것 같고 눈을 떠도 어둠 밖에는 남아있지 않은 이 시간이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았다. 우주에 엄마도 아빠도 없이 버려진 것 같은 공허함과 이게 나의 마지막일 것 같은 아득함. 10살도 되지 않은 꼬맹이의 생각이라는 걸 감안하면 퍽 우습지만 2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주 어두운 곳에 혼자 갇혀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시간이 무한하게 흘러가겠지. 남들은 공감할 수 없을지라도 내게는 그게 죽음이다. 혹자는 이미 죽어버린 너의 정신과 몸뚱이는 그런 것조차 인지하지 못할 텐데 대체 무슨 소용이냐고 한다. 그렇겠지. 그런데도 나는 사후에 내 몸이 그렇게 남겨질 순간들이 숨 막히게 고통스럽다. 죽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나도 결국 나니까.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한 사람.
그렇다. 좀 더 들어가 보면 나는 결국 한 사람으로서, 생명체로서의 '나' 자신이 그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는 것이 두렵다. 환생이니 윤회니 그런 것은 접어두고 숨 쉬는 생명체로 이 지구별에 태어나 나의 부모님과 나의 친구들과 관계 맺고 살아가며 때로는 지랄 맞게 또 어떨 땐 약해 빠진 모습을 보였던 '나'는 유일무이하다. 그런 내 생명이 다하면, 그렇게 끝. 죽은 이들도 산 사람들의 기억 속을 살아간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것도 너무나 짧은 생이다. 그렇게 무(無)로 돌아가면 영원히 이 세계 전체에 나는 영영.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쓰는 활자도 영영.
또 다른 어둠에는 우주가 있다. (여지없이 어릴 때부터 블랙홀을 떠올리기만 해도 소름 끼치게 싫어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의 광활함을 알아갈수록 내 존재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지 깨닫고 겸허해진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흔히 들었던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존재가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너무 일찍 생각하며 살았고 그렇기에 겸허해지거나 허무함을 느끼기보다는 그저... 끔찍했다. 나는 팔다리 눈코입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은데 언젠가 먼지가 되어야 한다니. 심지어 지구의 먼지도 너무나 미세한데 우주의 먼지? 먼지가 된 엄마나 먼지가 된 아빠 먼지가 된 귤군이나 너굴을 찾을 수나 있을까? (물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마지막은 바다. 밤바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무렵 친구들과 놀러 가려고 계획을 짜는데 내가 바다 옆 숙소를 고르고 싶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 말했다. '밤바다는 너무 위험해. 잘못하면 들어가고 싶어 져' 우리 모두는 그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무슨 소리냐 하고 말았지만 나는 좀 궁금해졌다. 결국 우리는 바다 옆은 아니지만 걸어서 바다를 갈 수 있는 숙소를 골랐고 저녁으로는 바닷가 근처에서 회를 먹었다. 그러다 맥주가 떨어져 맥주를 사러 길을 걸었다. 밤바다 옆을.
'아....'
밤바다는 정말 위험했다. 죽으러 들어가고 싶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한 번 몸을 맡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다. 물론 그 정도로 사리분별이 안 되는 상황도 아니었고 그저 '왜 그렇게들 말하는지 알겠네'라는 생각 정도에서 그쳤지만, 밤바다의 어둠은 내가 늘 두려워하고 끔찍해하던 짙은 어둠 그 자체면서도 완전히 달랐다. 바다도 하늘도 온통 까매서 수평선이 어디쯤인지 알 수 없고 그냥 검은색 도화지를 발라 놓은 것 같았다.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듯 일정하고 잔잔하게 찰랑이는 도화지. 쏴아아아 탈싹, 쏴아아아 탈싹, 예쁜 소리까지 내는 검은 도화지.
잠깐 모래사장에 앉아 그 광경을 바라보며 어둠을 온전히 느껴 보았다. 생각보다 평온했다.
사실 죽음도 이토록 평온한 쉼일까.
하지만 가 볼 수 없고 가보지 않은 길을 상상하는 것은 너무나 아득해서 그 막막함은 여태까지 나를 짓누른다. '아직 어리잖아'하는 말들과 '인생은 찰나야'라는 상투적인 표현들이 내 안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부딪힌다. 먼 일이라고 생각하며 간신히 가라앉히기엔 자꾸만 가까워지는 것. 피할 수 없이 나를 자꾸만 때리는 일종의 폭력.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요령껏 맞으며 맷집을 조금씩 키워가는 것밖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