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동천 계곡에서 만난 조상과 음악, 그리고 명상
음악에 대한 열정은 때로 예상치 못한 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첼로를 배우며 서양 음악에 몰두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앙상블 합주 이후, 그 열정이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레퍼토리, 반복되는 연습, 더 이상 새롭지 않은 감동. 무언가 새로운 음악적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거문고였다.
여섯 줄에 열여섯 개의 괘(棵)를 가진 이 악기는 첼로와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서양의 활로 줄을 그어내는 첼로와 달리, 거문고는 오른손에 쥔 얇은 대나무 '술대'로 줄을 퉁기고 긁어내린다. 왼손으로 줄을 누르는 방식은 비슷해 보였지만, 그 소리의 질감은 완전히 달랐다.
실제 멜로디는 단 두줄로 연주하고, 나머지는 배경음인 사실, 실질적으로는 타악기이면서 동시에 선율악기인 거문고의 이중성. 꽤나 매력적인 악기였다.
거문고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기영 선생님을 만나 거문고의 세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늦깎이로 시작한 거문고 수련은 생각보다 훨씬 험난했다.
첫 번째 장벽은 물리적 거리였다. 거문고를 배우러 가는 곳이 집에서 너무 멀었다. 두 번째는 신체적 고통이었다. 거문고는 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악기를 얹고 연주해야 한다. 현대인의 몸에 익숙하지 않은 이 자세는 곧 무릎에 통증을 불러왔다. 술대를 쥔 오른손가락 사이의 통증은 참을 만했지만, 무릎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참았다. 하지만 결국 시간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거문고를 놓아야 했다.
하지만 거문고와의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그때부터 더 깊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거문고에 대해 찾아보던 중 탁영금(濯纓琴)이라는 이름을 발견했다.
탁영 김일손(金馹孫, 1464~1498)이 만든 이 거문고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거문고다. 놀랍게도 김일손은 땔감이 될 뻔한 남의 집 오래된 문짝을 얻어와 거문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거문고를 만드는 재료인 오동나무는 원래 5년 이상 눈과 비, 이슬을 맞히며 자연 상태에서 나무의 진액을 모두 빼내고 건조시킨 강한 나무로 만든다. 그런데 이 탁영금은 이미 문짝으로 쓰이면서 그 모든 과정을 겪은 나무였다. 그래서인지 이 거문고는 지금까지 500년 세월을 굳건히 버티고 있다(아직 아랫부분에는 문으로 쓰이던 때의 못구멍이 남아 있다고 한다).
탁영금은 현재 대구 국립박물관에 기탁되어 있으나, 마땅히 전시될 곳이 없어 보존 처리 중이라고 한다. 보물 제957호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재임에도 일반인들이 볼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탁영금을 만든 김일손은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희생된 사관(史官) 김일손과 동일인이라는 사실은 나를 소름 돋게 했다. 그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난(癸酉靖難)에 대해 비판의식을 담은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사초(史草)에 적어놓았다가 참형을 당했다.
김일손은 김해 김씨 삼현파(三賢派)의 삼현(三賢) 중 한 사람이다. 삼현파는 조선 초기 사림파의 영수였던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을 파조(派祖)로 하여, 그의 학통과 문파를 계승한 후손들이 형성한 파계다. 삼현은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인 한훤당 김굉필(金宏弼, 1454~1504), 탁영 김일손(金馹孫, 1464~1498) 세 사람을 일컫는다.
김종직은 의성군파(義城君派)의 대표 인물이자 사림파 창시자로, 조선 성리학의 도통을 이었다. 그의 제자 김굉필은 조광조의 스승이 되었고, 김일손은 사림 정신의 상징으로 후대에 존숭되었다. 세 사람 모두 사화(士禍)로 희생되었지만, 그들의 학문과 정신은 삼현파를 통해 면면히 이어졌다.
나는 바로 그 김해김씨 72대손 삼현파, 따라서 김일손 선생의 후손이다.
김수로왕(金首露王)에서 시작된 김해김씨의 혈통은 중시조 김유신(金庾信)을 거쳐 의성군 김자정(金自貞)으로 이어졌고, 그 후손 중 김종직이 사림파의 학맥을 세우며 삼현파를 형성했다. 사실 내가 구상하고 있는 역사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이 바로 김일손인데 이런 우연의 일치가...
500년 전, 나의 선조가 만든 거문고. 땔감이 될 뻔한 문짝에서 다시 태어나 500년을 버텨온 악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잃은 선비가 남긴 음악의 혼.
거문고와 나의 인연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거문고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모든 악기 중 어른(丈)이라는 뜻으로 백악지장(百樂之丈)이라 일컬어진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이 진나라에서 온 칠현금을 개량하여 거문고를 만들고 100여 곡을 지어 연주했는데,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어 현학금(玄鶴琴), 현금(玄琴), 거문고라 불렀다고 한다.
5세기경 무용총 고분벽화에 거문고 연주 모습이 그려져 있어 그 오랜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 옥보고(玉寶高)가 지리산에서 50년간 수련하여 30곡을 지었고, 헌강왕은 금도(琴道)가 끊길까 두려워 국가적 차원에서 거문고 전승에 힘썼다.
조선시대에는 공자의 "악(樂)에서 완성된다"는 가르침을 좇아 선비들이 거문고를 통해 자기 수양에 매진했으며, 성현(成俔)이 창안한 합자보(合字譜) 덕분에 '스승 없이도 연주할 수 있는' 혁신적 악보 체계가 만들어져 수많은 거문고 악보가 현세까지 전해졌다. 병와 이형상(李衡祥)은 제주목사 재임을 마치고 돌아올 때 책과 한라산 고사목으로 만든 거문고 병와금(甁窩琴)만 가져갔다는 일화로 유명하며, 이는 거문고가 조선 선비에게 단순한 악기가 아닌 정신적 수양의 도구였음을 보여준다.
'출강(出鋼)'은 1995년 북한의 거문고 연주자 김용실이 작곡한 곡이다.
김용실은 흥남제련소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용광로에서 쏟아지는 쇳물과 노동자들의 리듬을 거문고로 표현했다. 제련소의 노동과 에너지, 현장감, 리듬을 담아낸 이 곡은 현대 거문고 곡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90년대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 우리에게 전해진 이 곡은, 거문고의 타악적 특성과 선율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거문고를 배우던 시절, '출강'은 내 아침을 깨우는 부스터였다.
분주한 시작, 점점 고조되는 에너지, 그리고 마지막 클라이맥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에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면... 거의 트랜스 상태에 가까운 경험을 하게 된다.
용광로에서 쇳물이 흘러나오듯, 거문고 소리가 흘러나온다. 노동자들의 리듬처럼, 거문고의 타격이 울려 퍼진다.
서울 북악산 자락에 백석동천(白石洞天)이라는 곳이 있다.
문자 그대로 '흰 돌의 동굴 천국'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수십 년간 청와대 경호구역에 숨겨져 있다가, 2004년에야 일반인에게 개방되었다.
백석동천 백사실계곡은 조선 후기 홍우길의 집터가 있던 곳으로, 역사적으로 선비들의 은둔처이자 명상의 공간이었다. 2009년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총 132,876㎡의 면적이 보호받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아름답다.
계곡물소리가 바위를 타고 흐른다.
이곳에서 직접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이 물소리가 명상 트랙의 기반이 되었다.
거문고(동양)와 콘트라베이스(서양).
이기영 선생님의 거문고 연주와 제임스 리 님의 콘트라베이스를 출강 합주 영상에 백사실계곡 물소리를 합쳤다. 두 분 모두 흔쾌히 음원 사용에 동의해 주셨다.
거문고의 날카로운 타격음과 콘트라베이스의 깊은 울림. 동양의 숨결과 서양의 심장박동.
서로 다른 두 악기가 만나 새로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백사실계곡의 물소리(남한)와 흥남제련소의 쇳물소리(북한).
남한의 자연과 북한의 음악이 만난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음악은 경계를 넘는다.
김용실 작곡가가 흥남제련소에서 느꼈던 에너지와 리듬. 백석동천 계곡물이 바위를 타고 흐르며 만드는 자연의 리듬.
서로 다른 두 리듬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조선 후기 홍우길 집터(과거)와 현대 생태보전구역(현재).
500년 전 김일손이 만든 탁영금의 정신. 이기영 선생님께 배운 거문고의 전통. 21세기 명상 음악으로 재탄생한 거문고 소리.
과거와 현재가 만나 미래로 흘러간다.
쇳물은 식으며 형태를 잡는다.
이 트랙은 YouTube와 Insight Timer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YouTube
- [한국어]
- [영어]
- [No Voice]
InsightTimer
- [영어]
- [한국어]
- [No Voice]
세 가지 버전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타악기이자 선율악기인 거문고의 이중성. 백석동천의 고요한 물소리와 '출강'의 역동적 에너지.
이 대비되는 두 요소가 만나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낸다.
거문고는 나에게 단순한 악기가 아니다.
500년 전 선조 김일손이 만든 탁영금. 땔감이 될 뻔한 문짝에서 다시 태어난 악기. 무오사화의 비극 속에서도 살아남은 음악의 혼. 김종직-김굉필-김일손으로 이어진 삼현파의 정신.
이 모든 것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지금 여기, 백석동천의 물소리와 만난다.
첼로에 대한 열정이 식었을 때, 나는 거문고를 만났다. 거문고를 놓아야 했을 때, 나는 탁영금을 발견했다. 탁영금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나의 뿌리를 다시 확인했다.
그리고 지금, 백석동천의 물소리에 거문고 '출강'을 합쳐 명상 트랙을 만들었다.
물은 인내로 돌을 깎고,
쇳물은 식으며 형태를 잡는다.
분단의 현실 속에서도, 시간의 경계를 넘어서도, 음악은 흐른다. 거문고 소리는 500년을 건너, 백석동천 물소리와 함께, 오늘도 울려 퍼진다.
통일의 그날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