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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피성 Jul 13. 2022

(에스더) 자기 사랑에 넘어져요. 하만

@ 성경, 구약 17번째 책, 역사서 


하만의 이야기(각색한 이야기)


나의 아버지는 함므다다라는 이름을 가진 아각 출신이다. 최근 나는 왕실에 등용되었고, 등용되자마다 상당히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덕분에 내가 대궐 문을 출입할 때마다 나에게 엎드려 절까지 했다. 알고 보니, 왕이 나를 배려하여 절을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대궐에 올 때마다 모두가 나를 우러러보며 절하는 모습을 본다. 


최근 대궐에 들어설 때, 어느 한 녀석이 나를 빤히 쳐다보며 절을 하지 않는 것을 봤다. 괘씸하다. 한두 번이 아니다. 내일은 대궐 문에서 근무하는 신하를 불러 녀석이 누구인지 알아봐야겠다.


그 신하가 그 녀석이 모르드개라는 유다 출신 사람이라고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들으니 더 화가 났다. 기껏 포로로 잡혀온 민족 주제에 감히 나 같은 사람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다니! 본 때를 보여주어야겠다. 그래, 유다 민족 사람 전부를 없애버리자. 


왕에게 허락을 받았다. 내가 은화 만 달란트를 왕에게 바치는 대신, 자기들끼리 끼리끼리 뭉치려고 하는 위험한 민족 하나를 없애기로! 집에서 사람들과 함께 제비를 뽑아서 날까지 정했다. 그날까지 조금 어수선하겠지만, 왕이 보낸 공문에 유다 민족을 없애고 재산을 뺐는 것까지 허락했으니 그날이 지나면 곧 잠잠해질 것이다.


와! 왕비께서 나를 잔치에 초대했다. 그런데 잔치에 가보니 왕비가 왕과 나만을 위해 여는 잔치였다. 나는 왕뿐만 아니라 왕비에게까지 신임을 얻었단 말인가! 우리 집안은 더 유력가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 내일 잔치를 하루 더 열게 될 텐데 내일도 나보고 와달라는 부탁을 왕비가 직접 나에게 했다. 너무 영광스러운 하루다. 


그런데 잔치가 끝나고 나오는데, 그 녀석을 또 마주쳤다. 그전까지 기분이 최고였는데, 녀석을 보니 기분이 갑자기 더 나빠졌다. 집에 도착한 후, 이 일을 아내와 친구들에게 했더니 그 녀석을 매달아 죽일 나무를 세우고 내일 잔치에 가서 왕에게 일러바치라고 했다. 좋아! 그 정도의  부탁은 왕도 허락해 줄 것이라 믿는다. 내일 아침 당장 가서 말씀드려야겠다. 


다음날, 마침 대궐에 도착하자마자 왕이 나를 찾았다. 그리고 나에게 '충성된 자에게 영예로운 대접을 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을까' 하고 물으셨다. 하하, 아니 왕께서는 어찌 그런 걸 당사자에게 직접 물으실까 민망하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왕의 옷을 입히고, 왕관을 씌운 후, 왕의 말에 태워 거리를 행진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아니! 그런데, 그 대접을 받을 사람이 내가 아니다. 이럴 수가. 그 충성된 사람이 모르드개란다. 내 손으로 그에게 옷을 입히고, 왕관을 씌우고, 행진시켜야 하다니.. 녀석을 죽이려고 왕에게 말하려고 갔다가 녀석을 행진시키게 되다니.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겠다고 조금만 더 빨리 말씀드렸으면 큰 일 날 뻔했다. 너무 억울하다. 하지만 가만 두지 않겠다. 유다 민족이 없어질 때, 모르드개도 없어질 것이니 조금만 참자.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친구들에게 계획이 틀어졌다고 설명했다. 아내는 모르드개가 유다 사람이니 몸조심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왕이 내린 공문이 있고, 며칠 남지 않았을뿐더러 번복될 수 없으니 조금만 참자. 조금만 기다리면 자동적으로 유다 민족은 전부 몰살될 거니까. 왕비가 다시 초청한 잔치에 늦을 거 같으니 서둘러 대궐로 다시 가자. 


왕은 왕비가 그렇게 어여쁘고 예쁜지 어제 잔치 때부터 자꾸 소원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나라의 절반도 줄 수 있다고 하는 걸 보니, 정말 왕비를 사랑하나 보다. 왕비는 어제는 소원을 말하지 않더니 오늘은 말하겠다고 하는 걸 보니 무언가 대단히 큰 것을 원하는 가 보다. 혹시 정말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뭐, 그렇다고 해도 왕비가 나를 잔치에 초청할 만큼 가까운 사이니 내 입지에는 영향이 없겠지. 그렇고 말고.


어?! 왕비가 자기의 민족을 자기에게 주라고 말한다. 이 큰 나라에 수십수백 민족이 있는데 그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민족이 곧 죽고 진멸을 당하기 일보직전이라고 하는 걸 보니, 그 민족을 핍박하는 원수가 있나 보다. 궁금하다. 마침 왕이 왕비에게 묻는다. 그 원수가 누구며, 어디에 사는지. 


'그런 일을 하는 자는 바로 이 악한 하만입니다', 뭐? 나라고? 서서서.. 설마... 왕비도 유대 민족이란 말인가?!  


'저 자를 자기가 세운 나무에 나무에 매달아라!!'


Esther denouncing Haman By Ernest Normand

[이미지 출처: Esther denouncing Haman By Ernest Normand - photo of an original painting,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4549646]



짧은 이야기 속에 넘치는 자기 사랑


위 이야기는 에스더서의 내용을 하만을 중심으로 각색해 본 이야기다. 왕비인 에스더를 중심으로 서술된 에스더서를 하만을 중심으로 서술해 보니, 새롭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유명한 성경 구절을 남긴 에스더의 용감한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고, 그녀에게 '네가 왕비가 된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라고 권면했던 삼촌 모르드개는 그다음으로 유명하다. 반면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사건의 배후에 있었던 하만이라는 인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평범했지만 자기 사랑이 너무 지나쳤던 인물 하만. 부유한 가문 출신 덕분에 빠른 시간에 왕의 신임을 얻고 요직에 올랐던 인물, 왕이 자신에게 개인적인 의견을 구할 만큼 총애를 받았던 하만. 왕이 모두에게 하만을 보면 예를 갖추고 절하게 할 만큼 존귀하게 여기도록 명령할 만큼 높은 사람이 되었던 하만. 하지만, 그는 자신만 사랑하다가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이 짧은 이야기 속에 자기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이 나를 치켜세울 때, 내가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내가 비교우위일 때, 너무 잘 나갈 때. 그때가 바로 무언가를 놓치고 있지 않은지를 확인해야 할 때다. 더 겸손해야 할 때이면서, 주변을 돌아보며 나를 점검할 때다.


모두가 아는 말이지만, 모두가 실천하기 힘든 말이다. 높을수록 크게 잃는다. 


Unknown artist of Rembrandt’s school, Esther’s Feast, 1640s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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