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에서 보이는 저 편안해 보이는 자세와 얼굴, 그리고 팔에 새겨진 '8'자 비슷한 무늬. 무슨 의미일까. '다행히도 죽지 않았다!'라는 도발적인 제목과는 다소 괴리되어 보이는 일러스트는 내용을 더 궁금하게 한다.
역시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극단적 선택을 앞둔 청년의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제목에서 힌트를 주어서일까, 극단적 선택의 실행은 하지 않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죽는 건 너무 무서웠기에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김예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성안당, p.25
이 책은 사회 공포증이라는 질병(이 책을 읽고 나니 ~증 symptom이라고 표현하기보다 ~병 diseased으로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을 지닌 청년이 그 공포증을 이겨내고 사회에서 두 발을 딛고 곧게 서게 되는 내면의 성장 과정의 경험담을 담담히 풀어내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공포증은 뫼비우스 띠처럼 끝없이 드러났다 숨겨졌다를 반복하며 자신을 깊숙한 동굴로 파고들어 가게 만들었고, 뫼비우스 띠 위를 끊임없이 걷다가, 힘들어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 앞에까지 섰었다.
근본이 무엇인지 파악되지 않은 채,
안일하게 불안한 상황들만 회피하니 말이다.
"하지만 왜 불안한지 알 수 없어서, 고치지도 못하겠어."
김예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성안당,
저자는 사회 공포증이라는 극단적인 질병을 겪은 경험을 자기 고백했지만,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뫼비우스 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것이 저자의 경우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것 때문에 스스로 위축되거나, 소심해지거나, 자신이 없어지거나, 극단적이 되거나 하게 되는 것 같다.
저자의 결단처럼 그것을 어느 시기에, 어느 지점에서 끊어 내느냐에 따라 그 이후의 삶에 당연히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물론 저자의 경우처럼 해피엔딩일 수 있지만, 새드엔딩을 반복하는 무수한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 보인다.
저자의 용기가 돋보이는 것은 바로 자기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자기 고백이 정말 힘들지만, 저자는 자신 앞에 용기 있게 섰고, 자신을 더 알아가고, 스스로 극복해 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점이 독자에게 더 감동을 준다. 아마,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타인의 이야기였다면 이 만큼의 공감을 얻지 못했으리라.
그리고 첫 번째 책에 이어, 두 번째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은, 바로 돕는 자의 역할과 태도인 것 같다. 너무 몰입해서인지, 저자의 입장에 서다 보니 내 편은 엄마 한 명 밖에 없다는 공감만이 남았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엄마의 역할은 특별한 게 없다.
언제나 동의하는 엄마, 좋은 말만 해주는 엄마, 격려의 손길만 주는 엄마. 들어주는 엄마.
돕는 자의 역할은 묵묵한 동의와 바라봄의 격려가 아닐까 싶다. 우리 삶의 무수히 뫼비우스 띠 위에 서 있는 가족, 친구, 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여하튼 내가 어떤지 알고 치료하기까지 너무나 길고 힘들었다.
당연히 그 방법 중에는 수많은 실패가 존재하고 좌절도 할 것이다.
..
당신도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나올 것이다.
그러니 죽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김예지, 다행히도 죽지 않았습니다, 성안당,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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